"쓰레기 같은 자식" 美개미 의적→역적..로빈후드CEO 추락
미국 ‘개미(개인 투자자) 반란’의 상징이었던 게임스톱의 주가가 요동치면서, 주식 중개 앱 로빈후드의 CEO 블라디미르 테네브(35)가 궁지에 몰렸다. 최근 개미 투자자들을 상대로 게임스톱 등 일부 주식의 거래를 차단했다가 투자자들은 물론 정치권까지 문제를 삼고 나섰다.
테네브는 지난 2013년 부자의 돈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줬다는 영국의 의적(義賊) 로빈후드에서 이름을 따 앱을 만들었다. 주식 거래 절차를 간소화하고 수수료를 폐지해 젊은 층의 유입을 도왔다. 그가 특히 개미들의 영웅으로 추앙받게 된 건, 지난해 개미 투자자들이 공매도 세력인 ‘공룡(기관 투자자)’을 상대로 승전보를 울리면서였다.
지난해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여파로 비디오 체인 기업 게임스톱은 ‘한물간’ 업종으로 여겨졌고, 대형 헤지펀드들은 게임스톱의 주가가 내려갈 것에 배팅했다. 갖고 있지 않은 주식을 빌려서 우선 판 다음, 주가가 하락하면 싼값에 사들여 갚는 ‘공매도’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이에 맞선 불개미들이 똘똘 뭉쳐 주식을 매수했다. 지난달 27일 기준 게임스톱 주가는 지난해 말보다 17배 가까이 폭등했고,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은 헤지펀드들의 손해액을 135억달러(약 15조원)로 추산했다.
하지만 지난달 말 일부 주식 매입을 제한하면서 개미들의 분노를 일으켰다. 지난달 28일 로빈후드는 개인투자자가 게임스톱 주식을 20주 이상 보유한 경우, 추가 매수를 금지했다. 문제는 기관투자자들에게는 주식을 거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열어줬다는 것이다. 공매도로 큰 손실을 본 헤지펀드사를 일부러 도왔다는 의혹이 불거진 이유다.
화가 난 투자자들 일부는 로빈후드를 상대로 집단 소송까지 제기했다. 2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테네브를 지지해온 유명 데이트레이더(주가 움직임만을 보고 차익을 노리는 투자자) 데이브 포트노이가 트위터에 테네브의 사진과 “사기, 거짓말쟁이, 쓰레기 같은 자식”이란 글을 올렸다고 보도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정치권도 움직이고 있다. 2일(현지시간) 경제전문매체 CNBC에 따르면 ‘월가의 저승사자’라 불리는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은 테네브에게 “게임스톱 등의 거래 제한 조치를 해명하라”는 서한을 보냈다. 그는 서한에서 “로빈후드는 투자자들을 정직하고 공정하게 대우하고, 투명한 규정에 따라 시장 접근권을 제공할 책임이 있다”고 비판했다.
미 의회는 청문회까지 준비하고 있다. 지난 1일, 미국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는 ‘Game Stopped?(게임은 멈췄는가)’라는 의제로 오는 18일 청문회를 개최한다고 발표했다. 테네브가 증인으로 출석할 전망이다.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 소속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민주당 하원의원은 지난달 말 트위터에 “거래 제한을 용납할 수 없다”는 글을 남겼는데, 공화당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이 이 트윗을 공유하며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테네브는 게임스톱 사태와 관련해 “공매도 세력과 결탁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1일(현지시간) CNBC에 따르면, 테네브는 전날 소셜미디어 클럽하우스에서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와도 설전을 벌였다. “비밀을 다 털어놓으라”고 쏘아붙이는 머스크에게, 테네브는 “미국 증권정산소(NSCC)가 예치금으로 30억달러(약 3조 3300억원)를 추가로 요구하면서 매수 주문을 막을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실제로 로빈후드는 지난달 29일 주주들로부터 10억달러(약 1조 1100억원)의 투자를 유치한 데 이어, 이달 1일에 24억달러(약 2조 6700억원)를 추가로 수혈받았다.
불가리아계 미국인인 테네브는 불가리아에서 태어나 4살 때 미국으로 이주했다. 그의 부모는 모두 세계은행(World Bank)에서 일했다. 버지니아주 페어팩스에 있는 토마스 제퍼슨 과학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스탠퍼드대에서 수학을 전공했다. 이곳에서 로빈후드의 공동 창업자 바이주 바트(37)를 만나면서 결국 자퇴했다. 두 사람은 2010년 ‘셀레리스’라는 벤처기업을 세웠지만, 이듬해 접고 2013년 로빈후드를 설립했다.
김선미 기자 cal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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