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법정서 한 "예" 한마디에 발목.. 재심서 징역 4년
1980년대 ‘재일동포 간첩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았던 재일동포가 재심에서도 징역 4년을 선고 받았다.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가 불법 구금해 조사한 사실이 인정돼 재심이 결정됐지만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완전히 벗지는 못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9부(부장판사 김창형)는 지난달 29일 국가보안법 위반 및 반공법 위반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고 수감생활을 했던 김모(사망 당시 84세)씨에 대한 재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했다. 간첩·특수잠입 등 42개 공소사실 중 특수탈출 혐의와 관련해서만 유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김씨가 1980년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북한 대사관 요원숙소에 들어가 북한 공작원과 접선했고, 1981년 북한의 지령을 받기 위해 입북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봤다. 재판부는 “1984년 열렸던 당시 재판에서 ‘유럽여행과 북한여행 등 미끼에 걸려 함정에 빠져든 것이냐’는 변호인 질문에 피고인은 ‘예’라고 답하는 등 공소사실을 인정하는 취지로 답했다”고 밝혔다. 재심 대상 사건의 원심 공판조서를 증거로 인정한 셈이다.
김씨가 당시 해외여행을 갔다 왔다며 주변에 핸드백을 선물한 사실도 정황증거가 될 수 있다고 봤다. 1981년 4월 3일 파리행 비행기에 탑승한 내역도 보강증거로 인정됐다. 다만 나머지 혐의에 대해서는 검찰이 제시한 다른 증거 상당수가 불법구금에 의해 수집된 만큼 증거능력이 없다고 보고 무죄를 선고했다.
김씨는 1980년대 재일 북한 공작원으로서 국군 장교를 포섭하려 하고 간첩활동을 한 혐의 등으로 1984년 사형을 선고받았고 1998년 형 집행정지로 출소할 때까지 14년 가량을 복역했다. 2009년 11월에 사망했으나 일본에 있는 아들이 아버지의 누명을 벗겨주고 싶다며 2016년 재심을 청구했다. 재심을 맡았던 서중희 변호사는 “80년대 당시 재판에서의 진술과 간접증거 외에 김씨가 북한의 지령을 받았다는 내용을 증명할 증거가 없다”고 강조했다.
1984년, 그 날 무슨 일이
1984년 4월 20일, 재일동포 김모(당시 59세)씨가 법정에 섰다. 국가보안법 및 반공법을 위반한 혐의로 열린 재판의 3번째 공판기일이었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인사가 피고인에게 접근해 피고인이 가보고 싶던 유럽여행과 이북여행을 미끼로 던져주니 함정에 빠져든 것 인가요.”
변호인이 묻자 김씨는 “예”라고 답했다. “공작에 말려들어 갔던 걸 후회하고 있냐”(당시 변호인)는 질문에도 그는 “네, 무의식적으로 그런 짓을 한 것이 후회스럽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같은 해 5월 15일 법원은 김씨에 대한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해 사형을 선고했다. 그는 1998년 형 집행정지로 풀려날 때까지 14년간 옥살이를 해야 했다.
2021년 1월, 37년 만에 열린 재심에서 그의 발목은 잡은 건 그 때 법정에서 했던 “예”라는 대답이었다. 안기부에 불법 구금된 상태에서 했던 진술은 모두 증거능력을 잃었지만, 재판에서 변호인의 질문에 한 대답은 증거로 인정됐다. 재판부는 이를 근거로 김씨가 북측 지령을 받기 위해 오스트리아의 북한 대사관과 북한에 간 것이 사실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김씨 측 변호인은 “비엔나 소재 북한대사관 숙소에 들어갔다는 건 입증할 증거가 없고, 북한에 간 건 북송된 누나와 조카를 만나러 갔던 것”이라고 변론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심을 맡은 서 변호사는 “과거 재판이 잘못돼 재심이 열린 건데 당시 재판 기록을 증거 삼아 유죄로 판단할 수 있냐는 의문이 남는다”며 “피고인이 살아있다면 재심에 출석해서 상황을 설명했겠지만 그게 불가능한 상황에서 문구만으로 해석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재심에서 무죄 선고받은 공범
1984년 그와 함께 재판에 넘겨진 공범은 이미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2009년 진실화해를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김씨와 함께 간첩으로 기소됐던 고창표씨 사건을 진상규명대상으로 결정했고, 2012년 대법원은 고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고씨는 과거사위 조사과정에서 “당시 조사관들이 만들어 놓은 내용대로 작성하는 걸 거부하면 구타를 당했다”고 회고했다. 본인의 재심 과정에서 “안기부 조사관들이 김씨의 출국기록을 근거로 공소사실을 거의 다 그 날짜로 만들어 놨다”는 취지의 진술도 했다.
김씨 측은 재판부 논리에 의문을 표했다. 김씨가 지령을 받기 위해 비엔나와 북한에 간 사실이 인정된다면 나머지 공소사실까지 모두 인정돼야 하는 게 아니냐는 반문이다. 1984년 당시 검찰의 공소장에는 김씨가 1980년 비엔나에서 공작원과 접선했고 이후 한국에서 군사기밀을 수집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서 변호사는 “김씨가 조총련계 인사에 포섭돼서 지령을 받기 위해 북한과 비엔나에 갔다면 이후 한국에 들어온 자체가 모두 지령에 의한 것이 아니냐”며 “이러한 논리 대로라면 잠입과 간첩 혐의까지도 유죄인 셈”이라고 말했다.
김씨 측은 지난 1일 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항소심에서는 재심대상심급 공판조서의 증거능력에 대해 다툴 계획이다.
임주언 기자 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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