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이 뭐야, 이 질문 안받아 축복" 베이조스 굿바이 편지
아마존을 창업한 제프 베이조스가 2일(현지시간)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내려오겠다고 깜짝 선언했다. 3596자로 구성된 사퇴 e메일을 통해서다. 57세인 그의 CEO 사임은 다소 의외로 받아들여졌는데, 베이조스는 임직원에게 보내는 이 편지에 이유를 소상히 적었다. 그가 ‘아마조니언(Amazonian)’이라고 동료들을 칭하며 시작한 이 편지는 아마존 임직원들에게 e메일로 전송됐고, 아마존의 홈페이지에도 게재됐다.
딱딱한 ‘사퇴의 변(辯)’ 대신 임직원에게 보내는 캐주얼한 e메일로 사퇴의 뜻을 전하는 건 미국 재계의 전통이다. 베이조스뿐 아니라 애플의 스티브 잡스(1955~2011), 구글의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역시 e메일로 CEO직을 내려놓겠다는 뜻을 전했다. CEO 각자의 스타일이 드러나는 점은 흥미롭다. 애플의 잡스는 ‘단순함’을 주요 무기로 내걸었던 만큼, 굿바이 레터 역시 심플 그 자체였다. 길이도 800자로, 베이조스의 3596자보다 짧은 건 물론이고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쓴 2224자의 약 3분의 1이다.
미국 CEO들, 특히 아마존ㆍ애플과 같은 일명 ‘빅테크’ 기업의 리더들이 쓰는 굿바이 레터엔 일종의 공식이 있다. 심플하되, 임직원에게 공을 돌리고, 또한 자신의 후계자를 추어올리는 식이다. 잡스 역시 짧지만 핵심을 다 담았다(기사 끝 전문 번역 참조). 끝엔 자신들의 성(姓)이 아닌 이름만 적는다. 친근함을 드러내는 장치다.
미국 사회의 주요 가치 중 하나인 유머 감각도 주요 양념이다. 베이조스는 편지에서 “사람들이 내게 가장 많이 했던 질문은 ‘대체 인터넷이라는 게 뭔데?’였다”고 썼고, 뉴욕타임스(NYT)는 베이조스의 사퇴 소식을 전하며 이를 기사의 서두에 올리며 집중 조명했다.
미국의 이력서 및 자기소개서 쓰는 법을 알려주는 웹사이트엔 아예 “CEO 사퇴 e메일 쓰는 법” 코너까지 있을 정도다. ‘그레이트 샘플 레주메’라는 이 웹사이트는 해당 코너에 “사퇴의 이유가 뭐가 됐건 화를 내거나 서운함을 드러내면 안 된다”며 “임직원뿐 아니라 모두에게 공개될 것을 고려하고 사려깊게 써야 한다”고 적었다.
후계자에 대한 전폭적 신뢰는 기본이다. 베이조스는 자신의 후임인 앤디 재시를 소개하면서 “나와 비슷한 기간 아마존에서 일했다”며 “뛰어난 리더가 될 것이고 나는 그를 전폭 신뢰한다”고 강조했다. 잡스 역시 자신의 후임 팀 쿡을 천거하며 “애플의 가장 밝고, 가장 혁신적인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적었다. 구글의 페이지와 브린 역시 후임 순다 피차이에 대해 “구글의 미래를 이끌기에 더 훌륭한 사람은 없다”고 신임을 보냈다.
베이조스는 e메일을 경영에 적극 활용하기도 했다. 그가 때마다 보낸 ‘리뷰 e메일’만 모아 그의 경영 철학을 분석한 책 『베이조스의 레터』도 나와있다. 저자인 스티브 앤더슨은 “아마존을 최고의 기업으로 키워낸 혁신의 기술이 그의 e메일에 녹아있다”고 썼다.
다음은 각각 베조스와 잡스, 페이지와 브린의 CEO 사임 e메일 전문 번역.
■ ①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
「 아마존 동료들에게.
이번 3분기에 아마존 이사회 의장으로 자리를 옮기고 앤디 재시가 CEO가 될 것이라는 점을 밝히게 되어 신나는군요. 이사회 의장으로서 나는 내 에너지와 관심을 신제품과 초기 프로젝트에 쏟으려고 합니다. 앤디에 대해선 다들 잘 알고 있으시죠. 앤디는 나와 비슷한 기간 아마존에서 일했습니다. 뛰어난 리더가 될 것이고, 나는 그를 전폭 신뢰합니다.
이 여정은 27년 전 시작됐습니다. 아마존은 그저 아이디어였을 뿐, 제대로 된 이름도 없었죠. 당시 사람들이 내게 가장 많이 했던 질문은 이거였어요. “대체 인터넷이라는 게 뭔데?” 이제 그런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건 축복이죠.
오늘날 우리는 130만명의 재능있고 헌신적인 임직원을 고용하고 있고, 수억명의 고객과 회원사를 위해 일하고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기업 중 하나로 널리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독창성 덕이죠. 독창성이야말로 우리 성공의 근간입니다. 우린 함께 남들이 보면 미친 짓을 했고, 그리고 그걸 정상으로 만들어냈죠. 우리는 고객 평가라는 것을 선도했고 (중략) 미친 듯 빠른 배송을 시작했습니다. (중략) 뭔가를 제대로 해내면 그게 처음에는 놀라운 발명이라고 해도 수년 후엔 평범한 게 되어버리죠. 사람들은 하품을 하겠고요. 그리고 이 경우, 하품은 그 독창성을 발휘한 사람이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찬사랍니다.
아마존처럼 훌륭한 창의력 실적을 보유한 기업을 저는 모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가 가장 독창적이라고 생각해요. 우리의 이런 창의력을 나처럼 자랑스러워하길 바랍니다. 당연히 그래 마땅하거든요.
아마존이 덩치를 키워가면서 우리는 우리의 규모와 폭을 중요한 사회적 이슈를 이끌어가는 데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영향력이 컸던 두 가지 대표적 사례를 들어볼까요. 최저임금을 15달러로 책정한 것과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우리의 약속입니다. 이 두 가지를 위해 우리는 우리의 리더십 지위를 활용했고 다른 이들에게 우리를 따라올 것을 요청했죠. 다 효과가 있었습니다. 다른 대기업들도 우리의 길을 따라 걷고 있어요. 이 역시 자랑스러워하길 바랍니다.
난 내 일이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어요. 나는 가장 똑똑하고 가장 재능이 있으며 가장 천재적인 동료들과 일을 합니다. 운이 좋을 땐 겸허히 일을 했습니다. 어려운 시절엔 강력히 대처하며 서로를 지지했고, 서로를 웃게 만들었죠. 이 팀에서 일하는 건 기쁨입니다.
난 여전히 출근할 때 탭댄스를 출 정도로 신이 나지만, 이번 변화에 대해서도 역시 신이 난답니다. 우리의 서비스를 기다리는 고객이 수백만 명이 있고, 우리 기업에 생계를 의지하는 임직원이 백만여명 정도 있죠. 아마존의 CEO라는 직업은 깊은 책임감을 요하며, 굉장히 피곤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런 책임을 져야 할 땐 다른 어떤 것에도 신경을 쓰기가 어려워요. 이사회 의장으로서 나는 아마존의 주요 프로젝트엔 여전히 관여하되 데이1 펀드와 베조스 지구 펀드, 블루 오리진, 워싱턴포스트(WP), 그리고 내가 열정을 가진 다른 일에도 시간과 에너지를 들일 수 있을 겁니다. 지금 나는 어느 때보다 더 에너지로 넘친답니다. 은퇴가 아니거든요. 새로운 일이 낼 수 있는 영향력에 대해 나는 엄청난 열정을 갖고 있어요.
아마존은 미래에 가장 적합하게 포지셔닝된 회사입니다. 세계가 우리에게 기대하듯 우리는 모든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죠. 세상을 계속 놀라게 할 일을 준비하고 있고요. 우리는 개인 고객과 기업고객 모두를 위해 일하고, 두 가지의 완벽한 업계를 선도했으며 새로운 기기의 세계를 열었죠. 우리는 머신러닝에서부터 배송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리더이며, 아마존 동료의 아이디어가 다른 기술을 요한다면, 그 기술을 습득할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유연함과 인내심 역시 갖추고 있습니다.
계속 창의력을 발휘하세요 여러분. 그리고 새롭게 뭔가를 발명할 때 그 아이디어가 미친 일처럼 보여도 절망하지 마세요. 길을 잃어야 한다는 점을 기억하세요. 당신의 호기심이 당신의 나침반이 되도록 하세요. 우린 언제나 첫날입니다.
제프
」
■ ②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
「 항상 말했죠. 내가 애플의 CEO로서 내 책임을 더는 다하지 못하고,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날이 올 것이며, 그렇게 되면 제일 먼저 알려드리겠다고요. 불행히도, 그 날이 왔습니다. 나는 애플 CEO직을 이로써 사임합니다.
만약 이사회가 적합하다고 판단한다면 이사회 회장이자 애플의 직원으로 계속 일하고 싶습니다. 내 후계자 문제에 대해선 우리가 세웠던 후계 계획을 실행하여 팀 쿡을 애플의 CEO로 지명할 것을 강력히 추천합니다.
애플의 가장 밝고, 가장 혁신적인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는 새로운 역할에서 그 성공을 지켜보고 계속 기여할 수 있기를 고대합니다. 애플에서의 내 인생에서 몇몇 최고의 친구들을 만났고, 앞으로도 여러분들 곁에서 수년간 일할 수 있다는 점에, 여러분들에게 감사합니다.
스티브
」
■ ③ 구글 창업자 래리 페이지, 세르게이 브린
「 구글은 1998년 태어났습니다. 사람이라면 21세의 성인이 된 셈이니, 이제 보금자리를 떠날 때가 되었네요. 오랜 기간 매일의 경영업무에 깊이 관여하는 것은 엄청난 특권이었지만 이제 우리는 매일 잔소리하는 부모가 아니라 충고와 애정을 보여주는 자랑스러운 부모의 역할을 할 때가 됐다고 생각해요!
알파벳이 지금은 이렇게 잘 뿌리를 내렸고 구글과 다른 사업 부문역시 효율적이고 독립적으로 기능하고 있는 지금, 우리의 경영구조를 단순화할 시간이 자연스럽게 다가왔습니다. 우린 경영자로서의 역할에 집착을 해오지 않았어요. 회사를 경영할 더 좋은 방식이 있다고 여겨진다면 말이죠. 알파벳과 구글은 이젠 더 이상은 두 명의 CEO와 회장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전진하면서 순다가 구글과 알파벳 모두를 관할하는 CEO가 될 겁니다. 그는 구글을 이끌고 우리 포트폴리오에서 알파벳이 하는 투자를 관리하는 책임을 맡게 됩니다. 우리는 구글과 알파벳을 장기적 관점에서 보고 깊게 헌신할 것이고, 이사회 멤버이자 투자자 그리고 공동 창업자로서 활발히 관여를 계속할 겁니다. 또, 순다와 정기적으로 대화를 나눌 것이고요, 우리가 열정을 갖고 있는 여러 주제에 대해서 말이죠!
순다가 가진 기술에 대해 겸손함과 깊은 열정은 우리의 유저들과 파트너, 그리고 임직원들에게 매일매일 전해질 겁니다. 알파벳을 만들고, 구글의 CEO이자 알파벳 이사회 멤버로서 우리와 긴밀하게 일을 해온 게 벌써 15년이 다 돼가네요. 순다는 우리처럼 알파벳의 (기업)구조의 가치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고, 크나큰 과제를 기술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능력도 갖고 있습니다. 알파벳을 창립한 뒤 우리는 누구보다 순다에게 더 많이 의지를 해왔고, 구글과 알파벳을 미래로 향해 이끌어가기에 더 훌륭한 사람은 없답니다.
우리가 스탠포드대에 다닐 무렵 작은 연구과제로 시작했던 이 일이 지식과 힘을 기를 수 있는 수십억 달러의 원천이자 다양한 층위의 기술 관련 작업으로 성장해왔다는 점에 우리는 겸허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1998년의 당시 기숙사 방에서 차고로 우리의 서버를 옮기던 당시, 어떤 여정이 시작되고 있을지 우리는 상상도 할 수 없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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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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