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北원전 문건, 2007년 김정일에 건넨 盧발언 데자뷔

강태화 2021. 2. 3.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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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우리는 경수로 꼭 지어야 합니다…이미 합의가 있는 거니까 지켜갈 수 있습니다.”
②“1안(경수로)이 소요시간과 사업비, 남한내 에너지전환 정책의 일관성 측면에서 설득력이 있음”
①은 2007년 10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만나 했던 말이고, ②는 2018년 5월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이 ‘북한지역원전건설추진방안’이라는 문건에서 제시했던 방안이다.

2007년 10월 2일 평양 4·25 문화회관 광장에 도착한 노무현 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악수하고 있다. 두 사람은 당시 정상회담에서 원자력 발전소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를 나눴다.


11년의 시차가 있지만, 둘 다 북한 금호지구에 경수로 발전소 건설을 재개하자는 내용이다. 산업부 북한 원전 문건이 논란을 일으키면서 2007년 노 전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에게 전달했던 메시지가 재조명 되고 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김정일 위원장과의 정상회담에서 북한 발전 지원 문제를 심도있게 논의했다. 2013년 공개된 당시 회담록엔 원전과 관련된 발언이 다수 등장한다.

노 전 대통령은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추진했던 경수로 건설을 가장 현실성 있는 지원 방안으로 생각했다. 그는 “지금 경수로 하나 하는 것도 정치적 상황 때문에 그렇지만 94년에 합의돼서 98년에 첫 삽을 뜨고 2003년 초에 중단됐다”며 “중단될 때까지 35% 공정밖에 안됐다. 투자한 돈 13억 달러를 안고 있다. 우리는 경수로를 꼭 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삭제된 산업부 검토자료와 비슷한 결론이다.

노 전 대통령은 추가 원전 건설의 필요성도 언급했다.

그는 “지금 단천에 광업개발을 하고 있는데 많은 전력이 필요하다”며 “수력 개발을 위원장님께서 지시했지만, 수력은 아무리 많이 해도 400만kWe를 넘어갈 수 없는데 지금 남측이 쓰는 게 6000만kWe를 쓰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결국 전력을 해야하는데, 우선 답사를 해나가고 점차 점차 원전으로 바꾸어 나가는 이런 과정을 통해 전력문제를 해결해 나가는…”이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이 이어 “단천에서 광물을 공동개발해 나가게 되면 경공업 원자재들을, 일부됐지만 차관인데 나중에…”라고 하자, 김 위원장은 말을 끊고 “네, 그게 8000만불 정도”라고 확인했다. 원전 건설 비용에 관한 논의로 해석할 수 있는 대화다. 단천에는 마그네사이트와 연ㆍ아연 광산이 있다.

노 전 대통령은 발전소 문제와 관련 “기왕이면 크게 짓고 수리하고 키우고 해서 주변 문제, (북한의) 전력문제까지 해결하는 것이지, 결코 특구 가지고 그것만 파먹고 도망가는 그런 방식으로 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1일 공개한 '북한 원전 건설 문건'에는 과거 KEDO 사업으로 진행됐던 함경남도 금호지구에 원전을 짓는 방안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고 제시하고 있다. 연합뉴스


당시 회담에서는 한국에서 발전한 전기의 송전 문제도 언급됐다.

노 전 대통령은 “개성에서 지금 10만㎾ 쓰고 있는데, 40만㎾까지 송전이 가능하다. 해주까지 뻗어서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구상은 ▶비무장지대(DMZ)에 신규 원전 건설 ▶신한울 3ㆍ4호기 건설 후 송전을 각각 ‘2안’과 ‘3안’으로 제시한 산업부 문건과 유사하다.

그러나 김정일은 노 전 대통령이 송전 방식을 제안하자 “그거 오후에 하지요 뭐…”라며 대화를 중단시켰다. 그 이후에 송전 관련 논의는 추가로 이뤄지지 않았다.

당시 회담에 관여했던 전직 고위 당직자는 3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이미 2005년 정동영 당시 통일부 장관이 송전을 핵심으로 한 ‘중대 제안’을 했지만 북한은 전혀 동의하지 않았다”며 “송전의 경우 남북 관계 상황에 따라 언제든 중단될 수 있다는 인식 때문”이라고 전했다.

산업부가 삭제한 보고서도 송전방식의 대북 전력 지원은 현실성이 낮다고 봤다.

노 전 대통령은 미국·일본 등 주변국 동의 없이 한국이 독자적으로 북한 원전을 건설하는 방안도 검토했지만 여의치 않았다고 양해를 구했다.

2007 남북정상회담 2일째인 3일 오전 백화원영빈관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다. 회담을 마치고 김정일국방위원장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나오고 있다. 평양=청와대 사진기자단


노 전 대통령은 “이종석(당시 NSC 상임위원장)이 보고 ‘우리가 경수로 짓자, 미국 제끼고’라고 몇 번 말로 하니까 ‘안 된다’고 해서 ‘그럼 안 되는 이유를 보고서를 써내라’고 했다”며 “(보고서가) 한 번 올라왔는데 자세하지 않아서 한 번 더 ‘이거, 이거, 이거’ 다시 내보라 지적해 다시 받았는데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어 “고립을 자초하는 자주는 할 수 없는 것”이라며 “선진강국이 되자면 미국하고 적대관계를 풀어야 하고, 일본과도 아니꼬와도 문제를 풀고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 (남북협력을) 세게 하면 고립이 되지만 자리를 잡고 난 뒤에 세게 하면 자주가 된다. 고립이 아닌 진짜 자주가 될 수 있도록 그렇게…”라고 했다. 이에 대해 김정일 역시 “옳다. 노 대통령님의 견해를 충분히 알았다”고 답했다.

산업부 보고서에서도 이와 관련 “미국 등 주요 이해관계자와 협의 등을 통해 사용후핵연료에 대한 처리방안 마련이 필요하다”며 “의사결정 기구는 미ㆍ일 등 외국과 공동 구서하고 사업추진조직은 남한의 관련부처가 참여하는 TF로 구성한다”고 적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비밀리에 북한에 원전을 지어주려했다. 이는 이적행위'라고 주장한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성명과 관련해 1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구시대의 유물같은 정치"라고 비판했다. 뉴스1


KEDO 사업처장ㆍ원자력건설처장을 지냈던 이중재 전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은 지난 2일 본지 인터뷰에서 “산업부 문건은 원자력 발전소 건설에 대한 식견을 가진 공무원이 작성했다는 느낌이 든다”며 “아이디어치고는 내용이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해왔기 때문에 북에 원전을 지어주는 문제를 공개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최재성 청와대 정무수석은 이날 한 방송에 출연해 “(삭제 문건은) 앞으로 진행될 남북 문제의 진전 등이 됐을 때 개인적인 상상 차원에서 할 수 있다고 본다”며 “이는 정부의 정책과 배치하고 산업부에서 이것을 논의해 공식 안건으로 올리고 그럴 수가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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