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가 안 터져도 괜찮다, 이 설경을 볼 수 있다면
[홍성식 기자]
▲ '슬로시티 영양군'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밤하늘의 별들. |
ⓒ 경북매일 자료사진 |
그러나 100가지 나쁜 점 속에서도 굳이 찾아내자면 그 가운데 한두 가지 좋은 점은 반드시 있는 법. 코로나19는 우리에게 조용히 사색하는 시간을 제공하고 있다.
한 해에 수백만 명이 해외여행을 떠나고, 그보다 몇 배 더 많은 숫자가 국내관광을 하는 한국. 하지만, 지난해부턴 외국은 물론이고 이웃 동네로 가는 것조차 조심스럽다.
2020년 봄에는 전국 대부분의 사람들이 '코로나19 감염자'가 다수 발생한 대구·경북 거주민들을 꺼렸고, 이후 여름엔 서울, 이어서 올 겨울엔 수도권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타 지역의 친척과 친지들을 방문하려면 눈치를 봐야 했다.
관광산업의 흐름도 크게 바뀌었다. 버스를 대절해 봄엔 꽃놀이, 여름엔 물놀이, 가을엔 단풍놀이를 다니던 패턴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혼자 또는 연인이나 가족이 단출하게 떠나는 여행이 증가하고 있다.
변화한 그 흐름에서 새롭게 주목받는 경북의 '언택트 관광지'도 늘고 있다. 영양군과 영천시도 그런 도시다. 두 지역이 가진 공통적인 매력은 차가운 겨울밤 하늘에서 꿈처럼 빛나는 수많은 별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
▲ 별과 자작나무의 고장 경북 영양은 깨끗한 환경 속에서 마음의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공간이다. |
ⓒ 홍성식 |
영양, 밤하늘과 자작나무가 선물하는 치유의 시간
2년 전이다. 영양을 여행하며 산나물로 차려진 늦은 저녁을 먹고 홀로 숲길을 걸은 적이 있다. 약간의 과장을 보탠다면 올려다본 하늘에서 주먹만한 별들이 당장 눈앞으로 쏟아질 것 같았다.
그보다 몇 해 전. 이란의 중부 사막도시 야즈드(Yazd)의 숙소 옥상에서도 큼지막한 별들의 군무(群舞)에 기가 질린 기억이 있다. 영양이나, 지금은 여행하기가 더욱 어려워진 이란의 야즈드나 별이 전해주는 낭만은 유사했다.
우리가 어느 별에서 만났기에
이토록 서로 그리워하느냐
우리 어느 별에서 그리워하였기에
이토록 서로 사랑하고 있느냐
사랑이 가난한 사람들이
등불을 들고 거리에 나가
풀은 시들고 꽃은 지는데
우리가 어느 별에서 헤어졌기에
이토록 서로 별빛마다 빛나느냐
우리가 어느 별에서 잠들었기에
이토록 새벽을 흔들어 깨우느냐
▲ 영양군 죽파리 자작나무숲을 조용히 산책하는 여행자. |
ⓒ 경북매일 자료사진 |
'슬로시티 영양'에서 옛 추억을 불러내보면 어떨까
'슬로시티(Slowcity) 운동'이란 게 있다. 1999년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청정한 자연을 친구 삼아 전통적인 문화를 보호함으로써 공해와 오염에 찌든 현대인들을 치유하자는 뜻에서 출발했다.
"영양에서 가장 깨끗한 하늘을 만날 수 있는 곳. 국제 밤하늘 보호공원은 수비면 수하계곡 왕피천 유역 자연경관보존지구 지역을 포함하고 있다. 반딧불이 생태공원 일대 390만㎡가 국제밤하늘협회(IDA)로부터 2015년 아시아 최초로 국제 밤하늘 보호공원으로 지정받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꼭 이 공원에서만 별들이 보이는 건 아니다. 영양 어디에서도 소년·소녀시절의 애틋하고 아름다웠던 기억을 소급하는 낭만적인 별과 만날 수 있다. 이는 영양군에 가봐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하나 더. 영양 관광의 '새로운 별'로 떠오르고 있는 자작나무숲을 빼 놓으면 섭섭하다. 큰길에서 한참 떨어진 한적한 지역에 북유럽 동화 속에 등장할 듯한 풍경으로 존재하는 숲.
찾아가는 것부터가 '작은 모험'에 가까운 영양군 죽파리 자작나무숲을 걷노라면 겨울 찬바람에 손과 발이 시릴 수 있지만, 그것조차도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여행의 즐거움으로 받아들여진다. 가보면 이 말이 사실임을 알게 된다.
영양군청 관계자 하나가 자부심 가득한 눈빛으로 죽파리 자작나무숲에 관해 이야기한다. 들어보자.
▲ 한 번 보면 결코 잊을 수 없는 영천 보현산의 설경. |
ⓒ 경북매일 자료사진 |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영천 보현산의 별과 설경
한때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가졌던 영국은 자신들 나라의 문화·예술적 자존심을 이렇게 표현하곤 했다.
"가장 큰 식민지 인도도 셰익스피어(영국 극작가)와 바꾸지 않겠다."
영천시 보현산에서 눈 쌓인 겨울밤 별을 올려다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약간의 오만함마저 묻어나는 영국 사람들의 말을 이렇게 바꿔볼 용기가 생길 것 같다.
"영천 보현산의 설경과 그 위에서 빛나는 별들이 만들어낸 경치는 영국과도 바꾸지 않겠다."
"경북 영천시 화북면과 청송군 현서면에 걸쳐 있는 산이다. 높이는 1124m. 모자산(母子山)이라고도 불린다. 중앙산맥 중앙부에 자리했고, 이 산이 하나의 맥을 이루기에 그 자체를 보현산맥이라 칭한다. '화산지(花山誌)'엔 '중턱엔 중복에 생겨 말복에 없어진다는 빙혈(氷穴)이 있다'고 기록돼 있다. 산삼을 캐내 남편의 병을 고친 아내가 평생 모은 재산으로 산삼을 캤던 자리에 지었다는 법룡사도 보현산에 위치했다."
이처럼 건조하고 짤막한 문장만으론 보현산의 겨울 풍경이 여행자들에게 전하는 위로와 위안을 설명하기엔 턱없이 모자란다. 여러 차례 직접 가본 기자이기에 서슴없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영천은 해마다 여러 차례 폭설이 쏟아지는 강원도나 경기도 북부에 비해 눈이 자주 내리지는 않는다. 그래서다. 보현산의 설경은 더욱 귀하게 관광객들에게 다가선다. 흔하게 볼 수 없는 풍광이기 때문이다.
하얀 눈이 만들어낸 동양화 화폭 속에서 천천히 산길을 오르며 초롱초롱한 별과 향기를 뿜어내는 갖가지 나무와 만난다는 건 재론의 여지 없이 행복한 일이다.
보현산에서라면 프랑스 시인 로트레아몽(1846~1870)의 "나무는 자신의 위대함을 모른다"는 문장이 어떤 의미인지를 해석할 수도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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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북매일>에 게재된 것을 일부 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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