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부 업무보고, 자화자찬 자제 왜?..노동시장 백약이 무효

김기찬 2021. 2. 3.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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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공공 일자리 등 돈 뿌린 이력 중심의 성과
공약인 최저임금 1만원은 성과에서 제외
올해 노동 대책도 돈 씀씀이 용처가 주류
여전한 세금 투입형 공공 일자리 만들기
민간 일자리 활력 제고 방안은 깜깜
노조법 통과는 됐는데..시행 혼란 걱정
'정치상황'을 올해 노사관계 변수로 적시
정치에 휘둘리는 노동시장 우려 읽혀
중앙포토

노동시장에 불어닥친 한파가 언제 수그러들지 끝이 안 보인다. 청년들은 아예 취업을 포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창 일할 나이에 경제활동인구에서 제외됐다. 취약계층은 정부가 만든 단기 공공 일자리로 연명한다. 기업의 취업 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고 있다. 경기 불황에 따른 구조조정으로 직장에서 밀려나는 사람이 급증하고 있다. 전국 고용센터에는 실업급여라도 받을 요량으로 몰린 실직자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올해 내놓을 정부의 고용대책에 관심이 쏠렸다. 고용노동부가 3일 업무계획을 발표했다. 한데 눈길을 사로잡는 대책이 보이지 않는다.

고용부는 업무보고 서두에 현 정부 출범 이후 4년간의 추진성과를 얘기했다. 내용은 이렇다. 추경 등을 통한 공공 일자리 대응, 국민취업지원제도(실업부조제), 고용유지지원금 확대, 노동시간단축, 노조법 개정, 정규직 전환 관행 정착 등이다. 고용 대책이라야 돈을 퍼부어 공공 일자리를 만들고, 고용유지지원금을 많이 줬다는 정도다.

그나마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었던 최저임금 1만원은 현 정부 성과 항목에서 빠졌다. 주휴수당을 포함한 실질 최저임금이 1만원을 넘겼지만, 명목 최저임금을 달성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등에 따른 노동시장 교란 현상이 심각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 여진은 아직도 가라앉지 않고 있다.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의 공기업 경영 압박, 노노 갈등과 같은 부작용에 대해선 언급도 없었다.

성과라고 얘기한 건 이 정도 선에서 그쳤다. 자화자찬을 자제하는 듯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시쳇말로 죽을 쑤고 있는 노동시장에 대한 현실 인식이 깔려 있어서"(경제단체 관계자)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직자로 꽉 들어찬 실업급여 설명회장. 뉴스1

문제는 고용 현실을 심각하게 본다면 제대로 된 노동시장 대책이라도 내놔야 하는 데, 눈에 확 들어오는 게 없다.

고용부가 내놓은 올해 고용대책은 이렇다. 정부가 1분기에만 돈을 들여 직접 83만개의 일자리를 만든다. 고용시장의 활력보다 세금 투입을 통한 연명에 방점을 둔 정책이다. 고용유지지원금을 40만명에게 지급하며, 집합금지업종에 휴업수당을 90%로 올려 지급하기로 했다. 이런 식으로 상반기에 일자리 예산 20조4000억원을 집행하겠다는 돈 씀씀이 용처를 내놨다. 청년을 위한 맞춤형 훈련기회와 일 경험 확대 정도가 청년 대책이었다. 물론 조만간 부처 합동으로 청년 대책을 내놓는다고 한다. 업무보고에 나타난 청년 대책이 이 수준이면 추후 나올 대책에 획기적인 내용이 담길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가사근로자법을 제정하고, 산재 사망사고 예방을 위해 본사에 대한 감독을 진행하겠다는 내용도 있다. 손에 딱 잡히는 일자리 대책은 별로 없는 셈이다. 대신 문 대통령의 공약인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등이 강조됐다.

마땅한 일자리 대책이 없다고 타박만 할 건 아니다. 일자리 주무부처로서의 고민이 녹아있는 것 같아서다. 현실이 녹록지 않다는 의미이고, 백약이 무효인 상황에 몰렸다는 상황 인식이 깔린 듯 보인다.

고용부는 올해 업무추진 여건을 설명하면서 노조법을 둘러싼 갈등을 우려했다. 심지어 정치 상황까지 노사관계의 변수로 언급했다. 노사관계에 정치가 끼어들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정치권에 대한 불만 표출로 비칠 수 있다. 어느새 정치가 자율이 존중되어야 할 노사 판을 흔든다는 우려가 읽혀서다. 정치권발 노조법, 중대재해법 등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며, 고용부는 그동안 끌려가는 모양새였다. 문제 조항에 대한 반대의견을 냈지만 묵살되기 일쑤였다. 오히려 정부가 나서 조항을 삭제하는 어이없는 일까지 연출했다. "고용 시장을 독려할 대책은 뒷전이고, 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른 법과 제도 도입에만 몰두한다"(고용부 관계자)는 불만이 나오는 이유다.

이재갑 고용부 장관은 취임과 함께 "일자리는 민간에서 만들어져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했다. "민간 활력이 최우선"이라고 입버릇처럼 되뇌었다. 하지만 정치권을 거친 각종 법이나 제도는 기업 활력과 관련된 걸 찾기 어렵다. 공정경제라는 이름으로 기업을 틀어쥐는 것만 돌출한다. 돈을 퍼붓는 공공부문 일자리 얘기밖에 못 하는 까닭이 아닐까.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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