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는 왜 '전관 피고인' 유해용에게 유독 친절했나

이근우 2021. 2. 3.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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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에 나온 판결-판결비평 사법농단 특집④] 피고인의 심리까지 고려한 재판부의 '배려'

[이근우]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법 '안'에 있는 사람과 법 '밖'에 있는 사람도 과연 평등할까요?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 사태는 법 '안'에 있는 사람들이 저지른 헌법 위반 사태였습니다. 사법농단이 세상에 알려진 지 벌써 4년이 다 되어가지만, 법관탄핵과 법원개혁은 전혀 진척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무사퇴임하는 판사들이 늘면서 탄핵대상자도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사법농단에 깊이 관여한 전·현직 법관들의 형사재판은 장기화되면서, 기소된 지 2년이 다 되도록 1심조차 완료되지 못했고, 그나마 선고된 사건조차 번번이 무죄판결이 내려지고 있습니다. 법관이 법관에 대해 내린 이 무죄판결은 과연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참여연대는 '광장에 나온 판결 - 사법농단 특집' 연재를 통해 법원 무죄판결 법리의 문제점을 짚어보려 합니다. 

네 번째 판결비평으로는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이었던 유해용 변호사에 대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 절도 혐의 등이 1심 무죄 선고받은 판결을 다루었습니다. 친절해도 너무 친절한 재판 과정, 피고인의 심리상태까지 고려하는 재판부의 '배려'로 가득했던 1심 무죄 판결에 대해 이근우 가천대학교 법학과 교수가 집필했습니다.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혐의, 공무상비밀누설혐의 등 유해용 1심 무죄 판결
서울중앙지방법원 제28형사부 2019고합186 박남천(재판장), 심판, 이원식 판사

청와대와 대법원은 민원실
 
▲ '증거인멸' 논란 유해용 전 판사 소환 압수수색영장 기각 후 자료를 파기해 증거인멸 논란을 일으킨 유해용 변호사(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가 2018년 9월 12일 오전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해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소환되고 있다.
ⓒ 권우성
 
이 사건은 소위 사법농단 사건의 일부로서 대통령과 깊은 친분을 맺은 의료기기 운영자가 자신의 회사에 제기된 특허무효소송에 대하여 대통령에게 재판상의 민원을 제시하자, 대통령이 소속 수석비서관에게 관련 문건을 주며 잘 챙겨보라고 여러 차례 지시하였고, 수석비서관 등은 이를 대법원에 전달하였다. 

피고인(유해용 변호사)은 재판연구관을 지휘할 권한이 있는 자이다. 그는 청와대 관심 사안이니 챙겨봐 달라는 청와대 요청사항을 상관을 통해 전달받고, 소속 재판연구관에게 청와대의 관심 사안인 위 특허등록무효소송에 대해 해당 재판의 진행경과, 처리계획 등을 파악하여 보고하도록 하는 위법, 부당한 지시하는 등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였다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재판에 회부되었다. 

또한 대법관이 직접 검토하는지, 재판연구관이 보고를 완료하였는지와 그 시점, 특허조사관이 작성한 기술검토서 등 당해 소송의 일방 당사자나 관련자에게 알려지면 특정인에게 재판상 유리할 수 있는 자료 등 중대한 직무상 비밀이라고 할 수 있다. 

피고인은 이를 '사안요약'으로 정리하여 청와대 측에 전달하였다는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를 주위적 공소사실로 하고, 같은 혐의이지만 대통령의 요청사항을 대법원에 전달하고, 위 보고서를 수령한 자를 '성명불성자'로 하는 예비적 공소사실로 기소되었다. 

예비적 공소사실에는 재판연구관의 위 사건 검토보고서 및 의견서가 소송당사자들의 개인정보가 담긴 공공기록물이고, 대법원의 업무 목적 출력물 등임에도, 피고인이 이 전자파일 및 출력물을 퇴임 시에 반출하여 자신의 변호사 사무실에 보관, 비치하여 변호사 영업에 활용한 것을 절도, 공공기록물관리법,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하는 것과 피고인이 재직 당시 연구관으로서 관여하였던 사건을 수임하였다는 점에 대한 변호사법 위반 혐의가 포함되어 있다.

전관 피고인에게만 친절하게 적용된 증거능력 인정? 

재판부는 변호인들이 이 사건에서 공소장일본주의 위반의 점을 지적하였으나, 일부 사건과 관련 없는 사실이 장황하게 기재되었지만, 이를 공소장일본주의 위반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또한 피고인을 비공식 소환하여 사실상 피의자 조사를 하면서 자료 제출을 종용하고, 이를 거부하는 피고인에게 과잉, 별건, 표적 수사를 하고 피의사실을 공표하고 공개소환하고, 변호권을 침해하는 등 총체적 수사절차위반을 이유로 한 공소기각 주장한 데 대하여, 대부분의 주장을 배척하였다. 

그러나 검사가 피고인에 대한 압수수색영장 집행에 있어서 영장이 명시하고 있는 전자정보 수색 방법의 제한을 위반하여 수사 중인 혐의 사실과 관계없는 새로운 별건 사실에 대한 증거를 수집한 사실을 인정하였지만, 이것이 곧바로 형사소송법 제327조 제2호에 규정된 '공소제기의 절차가 법률의 규정에 의하여 무효인 때'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어서 공고기각의 판결을 할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아 변호인들의 공소기각 주장을 배척하였다.

다음으로 재판부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의 증거능력도 개별적으로 판단하였다. 먼저 컴퓨터 모니터 화면을 촬영한 사진 및 관련 증거들에 대해서는 법관이 발부한 영장 별지에 전자정보의 수색으로 특정 검색어 2개를 적시하였는데, 위 검색어로는 검색되지 않자, 검사는 자신이 임의의 검색어를 입력하여 대상문건을 포함한 목록이 나타난 화면 등을 촬영하였다.

검사는 이것을 피고인에게 압수물 목록으로 교부하지도 않았으나, 후에 이를 증거로 제출하였고, 이후 수사에서도 이 사진을 근거로 다른 참고인조사를 진행하는 등 이를 활용하였다.

이는 압수수색 방법의 제한을 어기면서, 영장에 기재된 혐의사실인 공무상비밀누설과 관계없는 새로운 별건 자료를 발견하는 것으로서, 검사의 포괄적인 영장청구가 여러 차례 기각된 점에 비추어 검사는 이러한 위법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피고인의 컴퓨터 모니터를 촬영한 사진 및 그에 의한 2차 증거 역시 모두 증거능력을 부정하였다. 

피고인의 심리상태까지 고려하는 재판부의 '배려'

다음으로 수사협조의뢰에 대한 회신의 증거능력에 대해서는 검사가 형사소송법 제199조 제2항에 따라 변호사협회에 요구하여 송부받은 수입자료 등과 이에 기초한 2차 증거, 피고인이 관련 서류들을 폐기하는 것과 관련된 회신자료 등은 증거능력을 인정하였다. 

또 피고인의 제1회 피의자신문조서 가운데 이 사건 사안요약 문건 작성 및 전달에 관한 진술이 형사소송법 제312조 제1항에서 말하는 특신상태의 요건을 갖추었는가에 대해서는 피고인인 위축된 상태였을 것으로 여겨지고, 조사시간에 비하여 조서의 분량이 적다는 점 등을 들어 조서에 기재되지는 않았지만, 검사의 집요한 추궁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보면서 증거능력을 부정하였다.

공소사실 중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와 공무상 비밀누설의 점에 관하여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이 사건 사안요약 문건이 피고인의 지시로 작성되어 임아무개 법원행정처 차장을 통하여 청와대 비서관이나 성명불상자에게 전달되었다는 점에 대한 증명은 부족하다고 보았다. 

주요 사건에 대한 사안요약은 수시로 이루어지는 것으로서 관련자들의 진술이 검사의 질문에 대하여 추측성으로 답변한 것에 지나지 않고, 광범위한 관련자 이메일 압수에서도 전송내역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 결정적인 점으로 보인다. 

예비적 공소사실인 공공기록물관리법위반, 개인정보보호법위반 및 절도에 대해서는 피고인의 저장장치에서 발견된 기초보고 파일에 대해서는 이를 증명하는 모니터 화면 사진 등이 위법수집증거이고, 그에 기초한 2차 증거 역시 마찬가지여서 증거능력이 없다고 보았다.

증거능력이 인정되는 나머지 증거만으로는 이를 인정하기 부족하며, 설사 그 파일 등이 피고인의 변호사 사무실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투명하고 책임있는 행정구현이나 국민에 대한 공개가 요구되는 '국가적으로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인정하는 기록정보 자료 등 공공기록물'로 볼 수도 없다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업무 중 개인정보저장매체에 함께 저장하여 활용하는 것을 고려하면, 이 사건 외장하드를 퇴직 시에 가져나온 것에 공공기록물에 대한 인식이나 무단유출의 범의, 개인정보유출의 범의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보았다. 

절도의 점에 대해서도 대법원 내부의 관행상 업무상 출력 이후의 폐기 등은 각자의 판단에 맡겨져 있으므로 검토보고서 자체나 출력용지에 대한 절도의 범의를 인정할 수 없다고 보았다. 

변호사법 위반의 점에 대해서도 이 사건 조항은 징계처분을 넘어 형사처벌까지 규정된 것으로서 여기서의 '취급'은 일반적, 추상적 관여 가능성만으로 수임제한을 인정할 수는 없고, 직무상 직접적, 실질적으로 처리하거나 처리할 수 있게 된 사건(사건장악력이 인정되는 사건)으로 제한하여 한다고 보아 단지 재판연구관 등을 통할하는 지위에 있었다고 해서 이 사건을 '취급'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고 보았다.

재판부의 권한 남용 문제, 어떻게 볼 것인가
 
▲ '사법농단' 기소, 유해용 1심 무죄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기소된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이 2020년 1월 1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선고 공판을 마친 뒤 귀가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8부는 이날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유 전 수석에게 무죄를 선고했다.유 전 수석은 대법원에서 근무하던 2016년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공모해 휘하 연구관에게 특정 재판의 경과 등을 파악하는 문건을 작성하도록 한 혐의로 기소됐다.
ⓒ 연합뉴스
 
결국 피고인에 대한 공소사실 전부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하였다.

결국 본래 이 사건에서 가장 문제가 되었던 청와대의 지시로 대법원이 '사안요약'의 형태로 수사기밀을 청와대에 전달하였다는 점에 대해서는 영장의 제한범위를 넘는 것이어서 위법수사로서 평가되어 증거능력을 상실한 증거를 배제하고 나면 피고인의 지시로 작성되었는지, 피고인이 이를 법원행정처장에게 전달하였는지 등 주요한 부분에 대한 입증이 없다고 보아 무죄가 된 것이다.

이러한 판결은 주로 수사과정에서 증거수집 과정의 적법성 문제로 무죄를 판단한 것인데, 이는 애초에 피고인에 대한 압수, 수색영장에서 압수 범위가 지나치게 좁게 설정되었던 것에서 기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대법원이 작성한 재판 관련 문서가 청와대에 관련 문건을 전달한 것으로 의심받던 상급자의 USB에서 발견된 과정을 수사함에 있어서 해당 문서의 생산, 전달에 관여한 것으로 의심되었던 피고인에 대한 영장청구가 여러 차례 기각되고 결국 발부된 영장도 수색범위를 특정 검색어 몇 개로 극히 제한했다.

극도로 제한된 이 검색어를 통해서는 희망하던 증거를 발견하지 못한 검사가 영장에서 제한한 검색어 범위를 넘는 디지털 포렌식을 실시하여 관련 혐의와 다른 혐의에 대한 증거자료를 발견하여 수사, 기소를 진행하였던 점을 위법수집으로 보아 증거능력을 부정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피고인에게 무죄가 선고된 것이다.

지금은 주로 경찰이 신청한 영장을 검사가 불청구하는 것과 관련된 문제가 수사방해를 초래하는 검찰권 남용의 문제로 논의되고 있는데, 이 문제는 그대로 검사가 청구한 영장을 법원이 기각하거나 그 범위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경우에도 재현된다. 

물론 수사상 강제처분이 대상자의 기본권 침해를 허용하는 것이므로 과도한 침해를 방지하기 위하여 적절한 통제가 필요한 것이지만, 이 권한을 남용하여 영장의 범위, 집행방법의 제한을 가하여 사실상 수사가 불가능하게 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이 문제는 장차 영장항고제도를 허용한다고 해도 개별 사안이 아니라 '법원 조직'에 관련된 수사의 경우에는 공수처검사가 법원관계자에 대한 영장을 청구하는 경우에도 그대로 재현될 수 있는 것이다. 영장 발부도 재판에 속하는 것이지만, 특정한 경우에는 외부 인사가 참여하는 영장심의회와 같은 심의, 평가절차가 필요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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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블로그와 인터넷언론 슬로우뉴스에 중복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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