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영욕 지켜본 브란덴부르크門.. 통독을 증언하다
첩보 액션영화 ‘베를린’에는 미국대사관으로 망명하려는 독일주재 북한대사를 쫓는 국가정보원 요원(한석규)이 브란덴부르크문 앞 광장에서 추격전을 벌이는 긴박한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의 무대가 바로 독일 수도 베를린의 파리저 광장이다.
코로나19가 유럽에 확산되기 전인 지난해 2월 9일 찾아간 파리저 광장에는 일요일을 맞아 시민과 관광객들로 가득했다. 파리저 광장은 브란덴부르크문 정면 광장이다. 프로이센군의 파리 점령을 기념해 이름 지어졌다. 지금은 차가 다니지 않아 천천히 거닐며 한가하게 사진을 찍는 보행 공간으로 각광받고 있다. 독일 분단 당시 서독 편에 섰던 영국 미국 프랑스 등 연합군 국가들이 통독 후 동독 지역인 파리저 광장 인근에 대사관을 마련한 것은 통일된 독일의 미래를 내다본 결과일까.
브란덴부르크문은 독일의 영광과 좌절, 분단과 통일을 상징한다. 이 문은 1788년 프로이센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의 명령으로 세워졌다. 그리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로 들어가는 입구인 ‘프로필라에’를 본떠 만들었으며 높이 15m의 웅장한 도리스식 열주들이 문을 떠받치고 있는 초기 고전 건축 양식을 띠고 있다.
당시 베를린에 존재했던 15개 관문 중 하나에 불과했던 브란덴부르크문에 역사적 의미를 부여한 인물은 바로 프랑스 나폴레옹 황제다. 그는 1806년 대군을 이끌고 이 문을 통해 베를린에 입성했다. 그리고 프로이센을 떠날 때는 문 꼭대기의 쿼드리거(네 마리 말이 끄는 이륜전차)를 파리로 가져가 버렸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1814년 나폴레옹을 물리치고 프랑스 파리를 점령했던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가 브란덴부르크문을 통해 베를린에 돌아왔을 때 쿼드리거도 귀환해 제자리를 찾았다.
제2차 세계대전 패배로 독일이 동서로 분단될 당시 브란덴부르크문은 서베를린과 동베를린을 오가는 관문이었다. 쿼드리거가 바라보고 있는 방향이 과거 동베를린이다. 문을 지나는 길은 2m 정도로 짧은데 한때 사람들이 지나가고 싶어도 갈 수 없었던, 독일 현대사의 상처가 남은 곳이다. 독일이 통일된 후 동·서독 관문 중 파괴되지 않고 남은 곳은 브란덴부르크문뿐이다. 그래서 독일 통일의 상징으로 통한다.
남북 분단의 현실을 체험하며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브란덴부르크문 옆으로 이어졌던 베를린 장벽의 흔적이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파리저 광장에서 베를린궁으로 가는 길목 중앙에 조성된 가로수길 ‘운터 덴 린덴’에서 세 블록 떨어진 곳에 ‘눈물의 궁전’이 있다. 분단 시절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을 오갈 수 없었던 이산가족이 모처럼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묻고 프리드리히슈트라세역에서 다시 생이별을 해야 했다. 그래서 기차역 검문소는 늘 눈물바다였다고 한다. 독일 통일 후 검문소 자리에 박물관을 지어 눈물의 궁전이라고 명명했다. 지금은 분단과 월경(越境)의 역사를 전시해 분단 당시의 비극을 증언하고 있다.
‘철의 재상’ 비스마르크 주도로 프로이센은 1864년 덴마크, 1866년 오스트리아, 1870년 프랑스를 잇따라 격파하며 마침내 독일제국을 만들었다. 1871년 프랑스군을 물리치고 다시 한번 파리를 점령한 뒤 브란덴부르크문을 통해 개선했다. 브란덴부르크문이 독일제국의 상징이 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두 번의 세계대전 패배로 독일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이처럼 베를린 중심에서 독일 제국의 융성과 쇠퇴를 묵묵히 지켜본 브란덴부르크문은 이제 분단의 아픔을 딛고 통일을 이룬 뒤 유럽연합을 주도하고 있는 독일의 미래를 내다보며 우뚝 서 있다.
브란덴부르크문에서 과거 서베를린 방향으로 직진하면 전승기념탑이 우뚝 선 로터리가 나온다. 1864년 프로이센이 덴마크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뒤 이를 자축하며 만들기 시작했다. 프로이센은 오스트리아와 프랑스도 잇따라 이기면서 유럽 맹주로 군림하게 되자 전승기념탑의 설계를 변경해 더 크고 웅장하게 완성했다. 높이 8.3m에 달하는 빅토리아 여신상도 이때 추가됐다. 285개의 계단을 돌아 오르면 여신상 발밑 전망대에 닿는다. 2004년 개봉됐던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에서 천사가 전승기념탑 여신상에 걸터앉아 세상을 바라보는 장면이 백미로 꼽힌다.
브란덴부르크문에서 동베를린 방향으로 베를린궁까지 ‘운터 덴 린덴’이라는 황제 가로수길이 길게 뻗어 있다. 직역하면 ‘보리수 나무 아래’라는 뜻이다. 1647년 라임나무, 밤나무 등을 심고 말이나 사람들이 다니는 거리로 조성됐다. 2차 세계대전 후 파괴된 나무와 가로를 보수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길 양편으로는 프로이센의 과거 영광을 간직한 웅장한 건물과 훔볼트대학교, 역사박물관, 국립오페라극장 등 역사·문화적 건축물이 있고 울창한 가로수가 시원하게 뻗어 있다. 특히 프로이센 프리드리히 대왕의 위풍당당한 기마상이 눈길을 끈다. 가운데 길게 조성된 공간은 카페와 스넥바가 있어 시민들이 휴식을 취하기에 좋은 곳이다.
독일은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 동독과 서독이 통합된 1990년 10월 3일을 ‘독일 통일의 날’(국경일)로 정하고 매년 이곳에서 행사를 진행한다.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가로 일부를 활용해 ‘Berlin on ice(베를린 온 아이스)’ 등 정기적인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2005년부터는 매년 10월 한 달간 조명 예술작품을 설치하는 ‘라이트 페스티벌’이 펼쳐지고 매년 ‘6월 11일 차도’에서는 환경 페스티벌이 열린다.
우리나라의 광장도 계절별로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각종 이벤트가 열린다. 광화문광장과 서울광장이 대표적이다. 특히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대형 트리와 십자가가 내걸린다. 남북 분단과 통일의 상징은 판문점이 될 것이다. 지금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내 군사분계선이 지나는 지점에서 남북 군인들이 서로 대치하고 있다. 하지만 2018년 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서로 그 분계선을 넘어 오갔듯 언젠가는 브란덴부르크문처럼 JSA가 통일 한국의 상징적인 장소가 되고, 판문점 남측 평화의집 앞 광장은 축제의 장이 될 것이다.
베를린=글·사진 김재중 선임기자 j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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