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판사 전성시대

박진석 2021. 2. 3.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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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석 사회에디터

‘워터게이트’사태를 파헤친 전설적 기자 봅 우드워드의 『Brethren: Inside the Supreme Court』(1979)는 물 건너온 뒤 이명(異名)을 몇 개 얻었다. 월간지에 연재될 때는 『형제대법관들: 연방대법원 비사』라는, 비교적 원제에 가까운 제목이 붙었다. 우드워드는 9명의 미국 연방대법관이 판결문에서 서로를 형제(Brother)라고 지칭하던 전통에 착안해 종교단체의 남자 신도들을 일컫는 ‘Brethren’을 제목으로 사용했다.

2008년에 나온 개정판 단행본은 제목을 『지혜의 아홉 기둥』으로 바꿨다. 9명의 현자(賢者), 즉 대법관들을 상징한 듯 보였지만 T.E.로렌스의 자서전 『지혜의 일곱 기둥』과 겹치면서 다소 민망한 결과를 낳았다. 격동의 시기, 중요 판결들의 도출 과정과 뒷얘기를 생생하게 풀어낸 이 책의 가치를 제대로 담기에는 부족한 제목이었다.

오히려 1995년에 발간된 첫 번역본의 제목이 훨씬 생생했다. 문재인 정부 첫 법무부 장관이 될 뻔했던 역자(譯者)는 당시 원작의 절반을 먼저 번역해 출간하면서 『판사가 나라를 잡는다』라는 제목을 붙였다. 판사의 막강한 권한과 막중한 책임을 고려했다는 설명과 함께였다.

무소부재(無所不在)의 존재가 되고 있는 듯한 판사들, 보다 정확하게는 전직 판사들을 보면서 이 제목이 떠올랐다. 최근의 법무부 장관 2명과 차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처장과 차장은 모두 판사 출신이다. 국회로 직행한 전직 판사들도 ‘국정농단 판사’ 탄핵을 주도하면서 위력을 과시했다.

하지만 양질전환(量質轉換)을 담보하긴 일러 보인다. 두 법무부 장관을 둘러싼 구설과 차관이 촉발한 폭행 논란은 민망할 지경이며, 두 공수처 수뇌부의 수사 지휘 능력에 대한 우려도 작지 않다. 초선 ‘판사 의원’ 상당수가 국정농단 사태와 이해관계가 얽힌 인물이라는 점도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긴다.

엄밀히 말해 이 중 상당수는 겸연쩍게 이웃집 안방을 차지한 초보다. ‘미꾸라지 효과’만 강조하기보다는 일단 존중과 배움의 자세로 접근하는 것이 온당한 태도일 것이다. 세상만사는 동전의 양면이다. 역자가 1996년에 원작의 나머지 절반을 출간하면서 붙인 제목은 『판사가 나라를 살린다』였다. 잡는 이가 될지, 살리는 이가 될지는 그들 자신에게 달려있다.

박진석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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