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돌보다 뇌사, 3명 살리고 떠났다
노인 간병하다 화장실서 넘어져
"살아서도 죽어서도 다 주고 떠나"
“살아서도 죽어서도 누군가를 돕기 위해 다 주고 떠난 당신, 부디 모두에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랍니다.”
12년간 요양보호사로 일하며 거동 힘든 환자들을 돌보다 불의의 사고로 뇌사에 빠진 60대 여성이 다른 이들에게 생명을 전하고 세상을 떠났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은 2일 정연순(60)씨가 장기기증으로 3명에게 새 생명을 주고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요양보호사 정씨는 지난달 26일 거동이 불편한 노인 환자를 돌보다가 화장실에서 넘어져 뇌출혈 증세를 보였고 이후 병원으로 옮겼으나 뇌사 추정 상태에 빠졌다. 정씨는 평소 “만약 죽게 된다면 좋은 일을 하게 해달라”고 가족에게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한다. 뜻밖에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한 정씨의 가족은 가족회의 끝에 “기증을 하면 다른 이를 살리는 일이기도 하지만 그 장기가 살아있으니 우리 가족을 살리는 일이다”라며 기증을 결정했다.
지난달 30일 정씨는 경기도 고양시 명지병원에서 간과 신장(좌, 우), 조직 기증을 통해 3명에게 새 생명을 주고 숨을 거뒀다. 1960년 전라남도 고흥에서 7남매 중 넷째로 태어난 정씨는 젊어서 방직공장에서 일하다 결혼해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다. 정씨의 자녀는 “엄마가 항상 밝고 즐거운 성격으로 주변 사람을 많이 챙겼고, 우리에겐 누구보다 따뜻한 엄마였다”라며 울먹였다.
정씨는 어려서부터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을 좋아해 시골 이웃집이 농사일로 힘들어하면 하굣길에도 먼저 나서 일손을 거들었다고 한다. 특히 사람을 좋아하고 어르신을 돕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던 정씨는 10여 년 전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서 일하며 행복해했다고 한다.
정씨의 언니 정연진씨는 “쓰러지는 날까지 누군가를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간 네가 자랑스럽다. 이제는 생명을 살리는 기증을 통해 사랑을 나누고 가니, 부디 모두에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란다. 하늘나라에서도 새가 되어 훨훨 날아다니길 바란다”는 말로 동생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기증을 담당했던 오세민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중부지부 코디네이터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하신 정연순씨 같은 분의 존재가 우리 대한민국을 이끌어 나가는 힘이 아닐까 싶다”며 “고인과 가족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은 기증자 유가족이 겪는 심리적, 행정적 어려움의 해결을 위해 사회복지사로 이뤄진 가족지원팀이 포괄적 가족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이태윤 기자 lee.tae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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