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 경상도 말투 분명 들었는데..삼례 사람들이 옥살이"
"당시 협박했던 목소리 생생히 기억
진범 자백 영상 확인때 동일인 확신"
경찰 "진범 따로 있다" 여론 무시
“범인은 경상도 목소리라고 했는데, 왜 삼례 사람들이 붙잡혔는지 의아했어요.”
22년 전 발생한 전북 완주군 ‘삼례 나라수퍼 강도치사 사건’의 피해자 최성자(56·여)씨가 2016년 재심 때 법정에서 한 말이다. 최근 법원에서 이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옥살이를 했던 이른바 ‘삼례 3인조’에게 “국가가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하면서 과거 피해자 진술 등이 재조명되고 있다.
당시 증인으로 나간 최씨는 “오늘 범인이 나를 못 죽이면 나중에라도 꼭 잡으리라 생각했다”며 “그래서 경찰서에서 사소한 것까지 다 얘기했는데 이것을 가지고 가짜 범인을 만들어냈다”고 했다.
‘삼례 나라수퍼 사건’의 범인으로 몰렸던 최대열(42)·임명선(42)·강인구(41)씨 등 3명은 2016년 전주지법에서 열린 재심을 통해 누명을 벗었다. 사건 발생 후 17년 만에 진범 3명 중 1명인 이모(53)씨가 자신이 진범이라고 자백하면서다. 어쩌다가 시골 청년 3명은 강도 누명을 썼을까.
이 사건은 1999년 2월 6일 오전 4시쯤 3인조 강도가 삼례읍 나라수퍼에 침입해 잠을 자던 유모(당시 76) 할머니를 살해하고, 유 할머니의 조카며느리인 최씨의 현금과 패물 254만 원어치를 빼앗아 달아난 사건이다. 경찰은 당시 인근에 살던 최씨 등 동네 선·후배 3명을 강도치사 혐의로 구속했다. 최씨와 임씨 등 2명은 지적장애인이었고, 강씨는 말과 행동이 어눌했다. 최씨 등은 당시 “진범이 따로 있다”는 여론을 무시한 경찰의 판단에 의해 3~6년간 복역하고 출소했다.
이들의 형이 확정된 후인 1999년 12월 부산지검은 이씨 등 진범 3명을 검거한 뒤 자백까지 받아내 전주지검으로 넘겼지만,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다. 최씨 등은 2015년 3월 “경찰의 강압 수사 때문에 허위 자백을 했다”며 전주지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재심 과정에서 경찰과 검찰의 부실·강압 수사 정황이 속속 드러났다. 피해자 최씨는 2016년 6월 1일 전주지법에서 “그날 목에 ‘차갑고 긴 금속’을 들이대며 ‘소리를 지르면 네 새끼와 네 서방을 죽여버린다’고 협박했던 범인 목소리를 생생히 기억한다. 경상도 억양과 말씨를 썼다”고 했다. 그는 1999년 11월 부산지검에서 진범이라고 잡은 3명의 동영상을 틀어줬을 때 “목소리가 99% 범인이 맞다고 확신했다”고 했지만, 검찰은 “용의자의 자백이 신빙성이 없다”며 이들을 풀어줬다.
재심을 청구한 최씨에 대한 증인 심문도 이어졌다. 최씨 측 변론을 맡은 박준영 변호사가 최씨가 경찰 조사 때 그린 나라수퍼 내부 구조도를 보여주자 최씨는 “형사가 그려준 것을 그대로 본뜬 것”이라고 했다. 그는 “사건 당일 매형을 따라 일을 다녔다고 했는데도 경찰이 허위 자백을 시켰다”고 말했다.
진범 이씨는 앞서 2016년 1월 유 할머니 묘소를 찾아 사죄했다. 재심 선고 전날에는 피해자 최씨를 만나 사과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7부는 지난달 28일 최씨 등 3명이 국가와 당시 수사 검사인 최모 변호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국가가 1인당 3억2000만~4억7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함께 소송을 낸 가족들에게도 “국가가 1인당 1000만~1억30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했다. 전체 배상금의 20%는 당시 검사였던 최 변호사가 부담하도록 했다.
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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