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서 소외? 롯데 '숨은 진주'는 정밀화학·알미늄

김경민 2021. 2. 2.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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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빈자리가 이렇게 크다는 것을 깨닫는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신격호 명예회장 타계 1주기인 지난 1월 18일 유튜브에 공개한 추모 영상에서 밝힌 말이다.

신 회장 토로에서 알 수 있듯 롯데그룹은 절체절명 위기에 처했다. 삼성, 현대차, SK, LG 등 경쟁사들이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바이오 등 신성장 사업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올리는 사이 유통을 비롯한 주력 사업 부진에 시달려왔다. 2018년 84조원이었던 롯데그룹 매출은 2019년 74조5000억원으로 급감했고 지난해 감소폭은 더 클 전망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10대 그룹 시가총액은 42.2%가량 증가했지만 롯데는 유일하게 2.24% 감소했다. 올 들어 시가총액 30위 기업에도 롯데 계열사 이름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처럼 상황이 심각한데도 미래 먹거리조차 확보하지 못해 신 회장 고민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전남 여수에 위치한 롯데케미칼 신규 EOA 공장 전경. <롯데케미칼 제공>

▶롯데정밀화학 2900억원 출자

▷두산솔루스 인수 가능성도

물론 아예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세계 1위 제품 경쟁력을 높이고 전기차 배터리 등 신성장동력 사업에 적극 뛰어들면서 얼마나 성과를 낼지 관심이 쏠린다.

롯데정밀화학은 지난해 9월 사모펀드 스카이레이크프라이빗에쿼티가 두산솔루스 인수를 위해 설립하는 펀드에 2900억원을 출자하기로 했다. 앞서 스카이레이크는 두산솔루스 지분 52.9%를 6986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롯데정밀화학은 재무적투자자 형태로 두산솔루스 지분 인수에 참여한다.

이를 두고 재계 안팎 기대가 크다. 두산솔루스는 전기차 배터리 분리막 소재로 쓰이는 동박을 생산하는 기업으로 기술력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유동성 위기를 겪어온 두산그룹이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매각을 추진해왔다. 롯데는 당초 스카이레이크와 함께 두산솔루스 인수 유력 후보로 꼽혔다. 국내 5대 그룹 중 전기차 배터리 관련 사업이 가장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기 때문이다.

롯데 입장에서 두산솔루스는 ‘꼭 잡고 싶은’ 알짜 매물이었지만 정작 두산솔루스 매각 입찰에 참여하지 않았다. 롯데가 예상한 것보다 인수 금액이 높았기 때문이라는 후문이다. 하지만 놓치기 힘든 매물이라고 판단해 뒤늦게 인수 대신 투자를 선택한 셈이다. 재계 관계자는 “롯데로서는 전기차 배터리 사업을 신성장동력으로 키워야 하는 상황이라 향후 스카이레이크로부터 두산솔루스를 전격 인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귀띔했다.

재계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롯데 계열사들은 그동안 전기차 배터리 사업에 공을 들여왔다.

롯데알미늄은 지난해 2월부터 헝가리에 배터리 양극박 생산 공장을 건설하는 중이다. 투자금액은 1100억원 수준. 올 상반기 완공하면 국내 주요 배터리 업체에 소재를 공급할 예정이다. 롯데케미칼 역시 배터리 소재 분야 진출을 준비 중이다.

기술력이 부족하다 보니 전기차 배터리 관련 해외 기업 인수도 추진해왔다. 롯데케미칼은 2019년 배터리 소재인 양극재, 음극재 사업을 하는 일본 히타치케미칼 인수를 타진했다. 최종 성사되지는 않았지만 히타치케미칼을 인수한 일본 쇼와덴코 지분 4.69%를 매입해 이 시장에 발을 들여놨다. 배터리 소재 분야로 사업 영역을 넓히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올 들어서는 국내 기업과의 제휴도 속도를 낼 전망이다. 지난해 11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전격 면담을 하고 미래차 소재 분야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정 회장이 자동차 내외장재 신소재를 개발해온 경기도 의왕 롯데케미칼 첨단 소재 사업장을 직접 찾아 신 회장과 회동한 만큼 미래차 소재 분야에서 성과를 낼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현대차그룹 입장에서는 배터리 자체 생산 필요성이 큰 만큼 롯데그룹이 배터리 소재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세계 1위 제품 경쟁력 확보

▷PIA, EOA 생산 규모 늘린다

글로벌 시장 선두권을 다투는 1등 제품 경쟁력을 높이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전략이다. 롯데케미칼은 최근 여수 공장 내 연산 10만t 규모의 건축용 스페셜티 소재 EOA(산화에틸렌유도체) 생산시설을 증설하고 본격적인 상업 생산에 들어갔다. EOA는 고층 빌딩, 교량, 댐 등 대형 구조물 건설에 투입되는 콘크리트 감수제 원료. 콘크리트에 EOA를 원료로 한 감수제를 투입할 경우 기존 대비 물 사용량이 30% 줄어드는 데다 콘크리트 강도까지 높여준다. 또한 콘크리트 유동성을 유지해 장거리 운송을 가능하도록 하는 고부가가치 소재다. 롯데케미칼은 국내 1위, 세계 2위의 EOA 시장점유율을 보유했다. 이와 함께 울산 공장 PIA(고순도 이소프탈산) 설비 증설에 나섰다. PIA는 도료, 불포화 수지, PET 원료로 사용되는 고부가 화학 제품이다. 롯데케미칼은 PIA 연간 생산량 52만t으로 글로벌 1위를 달리는 중이다. 이와 함께 롯데케미칼은 ‘화학산업의 쌀’로 불리는 에틸렌을 연간 450만t 생산하는 독보적인 국내 1위 업체기도 하다.

ESG 시대에 대비한 친환경 소재 부문 성과도 눈길을 끈다. 롯데정밀화학의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은 전 분기 대비 15%가량 증가한 300억원 안팎으로 추산되는데 셀룰로스가 효자 역할을 톡톡히 했다. 목재, 면화에서 나온 펄프를 이용해 만든 천연고분자 소재인 셀룰로스는 천연성분이라 건축 소재뿐 아니라 알약 껍질, 글루텐, 면류 등 식용으로도 많이 활용된다. 셀룰로스 전망을 밝게 본 롯데정밀화학은 최근 셀룰로스 계열 제품에 1800억원 규모 투자를 결정했다. 박한샘 SK증권 애널리스트는 “롯데정밀화학은 2030년까지 셀룰로스를 비롯한 고부가가치 제품 비중을 70%로 늘리기로 했는데 미국, 유럽 건축 경기 회복으로 셀룰로스 이익률이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롯데그룹이 신성장동력 사업에 속도를 내지만 마냥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경쟁사에 비해 전기차 배터리 기술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제대로 된 인수합병(M&A) 성과조차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M&A 시장에 뒤늦게 발을 들여놨지만 대부분 인수 대신 소규모 지분 투자에 그치는 실정이다. 신사업 기술력을 높이려면 연구개발(R&D)을 더욱 강화할 필요도 있다. 롯데케미칼의 매출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은 2019년 기준 0.56%(846억원)에 그친다.

“롯데그룹이 신성장동력 성과를 내려면 유통업 구조조정을 통해 실탄을 마련한 후 과감한 M&A에 나설 필요가 있다. 전기차 배터리, 고부가 화학 소재 등 신사업 R&D 예산을 늘리고 핵심 인력을 확보하는 전략도 절실하다.” 재계 관계자 분석은 의미심장하다.

[김경민 기자 kmkim@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95호 (2021.02.03~2021.02.1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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