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파일, 낑겨 삭제됐다"는 靑..하지만 삭제 시간 달랐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삭제됐던 ‘북한지역 원전건설 추진 방안’ 문건을 공개한 뒤에도 논란은 이어졌다. 2일 정부·여당은 “산업부 내부 검토 자료일 뿐”이라며 의미를 한정했지만, 야당은 “켕기는 게 없다면 왜 삭제했냐”(오세훈 전 서울시장)고 의문을 표했다. 내부 검토 자료인데 왜 삭제까지 했느냐로 ‘북한 원전’ 논란의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산업부 공무원이 문서를 삭제한 구체적인 상황은 감사원이 지난해 10월 발표한 ‘월성 원전 1호기 조기폐쇄 결정의 타당성 점검’ 감사 보고서에 나타나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산업부 김모 서기관은 2019년 12월 1일 오후 11시 24분부터 다음날 새벽 1시 16분까지 세종정부청사 사무실의 컴퓨터에서 월성 1호기 관련 자료 등을 삭제했다.
김 서기관은 우선 월성 1호기 폐쇄와 관련해 민감하다고 생각하는 자료부터 삭제하기 시작했다. 그는 문서를 열어 기존 내용을 지우고 다른 내용을 적어 저장한 뒤 삭제했다. 파일을 복구한다 하더라도 기존 내용을 확인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파일명으로 내용을 유추할 수 없도록 파일명도 바꾼 뒤 삭제한 흔적도 있다. ‘청와대 기보고 사항이므로 조기폐쇄 결정 이후 즉시가동중단이 필요하다’는 내용을 담은 문서 파일명이 아무 의미 없는 숫자인 ‘4234.BAK’인 이유다.
하지만 삭제해야 할 문서가 너무 많았다. 김 서기관의 감사원 진술에 따르면, 처음엔 파일명과 문서 내용을 수정한 뒤 삭제했지만, 이후엔 파일명은 그대로 두고 내용만 수정해 삭제했다. 마지막엔 “삭제하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이후 삭제한 파일은 파일명 또는 파일 내용의 수정 없이 그냥 폴더째로 삭제했다”고 김 서기관은 감사원에 진술했다.
북한 원전 건설 관련 파일은 폴더째 삭제된 것으로 보인다. 검찰 공소장에 첨부된 삭제 파일 목록을 보면, 12월 2일 오전 1시 16분 30초에 ‘180515_북한지역 원전건설 추진방안_v1.2.hwp’ 등 북한 원전 관련 파일 17개가 한 번에 삭제됐다. 삭제된 530개 파일 중 맨 마지막에 지워졌으며, 모두 ‘60 Pohjois’(핀란드어로 북쪽)라는 이름의 폴더에 들어있었다. 파일을 하나하나 따로 삭제한 게 아니라, 폴더 자체를 삭제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이유다.
여권도 이 부분에 주목했다. 최재성 청와대 정무수석은 2일 MBC 라디오에 출연해 “(김 서기관이) 폴더 전체를 삭제한 것으로 본다”며 “이것은 아무 문제가 안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 수석은 “(북한 원전 관련 파일은) 폴더 전체를 삭제하는 과정에 낑겨 들어간 게 아닌가 싶다”라고도 말했다. 김 서기관이 북한 원전 관련 파일들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의도적으로 삭제한 게 아니라, 폴더를 삭제하는 과정에서 함께 삭제됐을 뿐이라는 추정이다.
하지만 파일 삭제 과정을 분석해 보면 “(북한 원전 파일이) 낑겨 들어간 것”이라는 추정은 틀렸을 가능성이 높다. “낑겨 들어간 것”이 되려면 ‘60 Pohjois’ 폴더의 상위 폴더를 삭제하며 ‘60 Pohjois’ 안의 파일도 우연히 삭제된 것이어야 하는데, 1시 16분 30초에 삭제된 건 ‘60 Pohjois’ 폴더 안에 있는 파일밖에 없다. 김 서기관이 ‘북쪽’을 뜻하는 ‘Pohjois’ 폴더명을 확인한 뒤 삭제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특히 삭제 시간을 보더라도, 바로 직전 삭제된 ‘신고리.hwp’의 삭제 시간과 ‘60 Pohjois’ 폴더 내 파일의 삭제 시간 사이에는 24초의 시차도 있다.
윤성민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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