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노조 코로나19 1년 노동자 번아웃 대책촉구
코로나19 1년을 맞아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위원장 나순자, 이하 보건의료노조)가 공공병원 정원 확대, 적정인력기준 가이드라인 마련, 형평성 있는 지원체계 마련, 공공의료 강화의 근본적인 대책 수립을 요구하며 코로나19 전담병원 노동자들의 전면 투쟁을 선포했다.
우리나라 전체 병상 중 10%도 되지 않는 공공병원이 90%의 코로나19 환자를 치료하고 있는 가운데, 3차 대유행으로 코로나19 전담병원이 겪고 있는 인력 문제의 심각성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여 년간 코로나19가 지속되며 감염병 대응 인력 수요는 갈수록 늘어가지만, 공공병원의 인력은 늘어나지 않고 있어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인력 부족과 그로 인한 업무 과중에 시달리던 공공병원 노동자들은 감염병 사태가 지속될수록 소진에 탈진을 거듭했고, 많은 노동자들이 이직과 사직으로 병원을 떠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2일 보건의료노조에 따르면 지난 1년간 정부의 인력 지원정책은 말 그대로 탁상행정에 불과했다. 코로나19 대응 인력을 확보하는 정책은 근본적인 대책이 아닌 그야말로 “땜질”식 처방이었다.
코로나19 대유행의 초기부터 전담병원의 부족한 인력문제를 근본적으로 개선할 정책은 뒷전에 둔 채, 부족한 인력을 메우기 위해 이른바 민간파견인력을 코로나19 전담병원들에 배치하는 임시방편 대책만 되풀이해 왔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노조는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현장으로 달려온 많은 파견 보건의료노동자들의 용기는 크게 감사한 일”이라면서도 “이들의 헌신을 폄훼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파견인력은 오랫동안 현장을 떠나있던 이들이거나 신규가 대다수이기에 업무 숙련도에서 의료기관 근무 경험의 차이, 게다가 교육훈련 부족을 포함하여 어쩔 수 없이 생기는 민간파견인력의 제한성으로 현장에서는 정규 인력 한 명이 하는 일을 파견인력 서너 명이 동원되어야 하는 등 업무의 효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기에 민간 파견인력을 통한 해결방식은 말 그대로 임시방편에 불과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부족한 인력 탓에 약간의 손이라도 필요한 상황인 만큼 이들 파견인력을 지원받게 되면 인력을 늘려줬으니 환자를 더 받으라고 밀어붙여 왔다는 것이다.
노조는 “정부의 태도는 전담병원 기존 노동자들에게 업무를 가중시키고 특히 대유행 시마다 중증도나 질환군에 따른 환자 분류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현장의 혼란을 더 야기시켰다”며 “그런 혼란 상황에서 중증도가 높은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적절한 인력 운용의 기준을 요구하는 것은 사치스러운 일로 치부된 것도 문제”라고 비판했다.
지난 1년간 대유행 때마다 코로나19 환자를 대거 맡겨만 놓은 채 알아서 하라는 식의 주먹구구식 대처가 반복됐지만 코로나19 전담병원의 노동자들은 사명감과 책임감으로 버티며 맡은 역할을 다해왔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엉뚱한데서 터졌다. 묵묵히 현장을 지키던 보건의료노동자들이 결정적으로 분노했던 사실은 파견 인력에게 기존 인력 임금의 3~4배에 이르는 보상이 이루어진다는 점이었다.
노조는 “위험을 감내하며 현장으로 달려온 민간파견인력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문제 삼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면서도 “지난 1년 동안 헌신 분투했던 전담병원 노동자들이 의료기관의 손실보상조차 제대로 되지 않아 임금 체불을 걱정해야 했던 현실과 함께 ‘덕분에’라고 칭송하는 듯했지만, 현장을 지킨 결과에 대한 보상이라는 게 고작 지난 5월쯤 추경예산으로 단 한 차례 격려금을 그나마 차등으로 지원했던 정부의 형평성 없고 불공정한 조치에 너무나 큰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고 따졌다.
노조는 “이미 많은 보건의료노동자가 인력 부족에 따른 과도한 노동강도로 지치고 탈진됐다”며 “지금까지 반복된 임시방편식 인력 정책의 한계가 극복되지 않을 경우 의료체계 붕괴를 막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노조는 중증도별·질환군별(요양·치매 환자, 정신질환자, 거동불가 환자 등) 코로나19 대응 인력기준 가이드라인을 마련하여 시행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코로나19 발생 1년이 지났는데도 아직까지도 중증도·질환군별 코로나19 대응 인력 기준 가이드라인이 없다는 것이다.
노조는 또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공공의료기관 정원을 확대하고 추가확보 인력의 인건비를 전액 지원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국회에 제출된 민간파견인력의 인건비 소요비용 현황에 따르면 파견인력 규모는 지난해 12월 한 달간 1270명가량으로 이들 파견인력을 운영하는 데에 월 약 100억원 이상의 재원이 소요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는 것이다.
코로나19 대응에서 10명의 파견인력보다 정규 직원 2~3명이 훨씬 효율적인 현장의 경험을 상기해 보면, 3배에 가까운 비용을 들이면서도 효과는 3분의1밖에 되지 않는 비효율의 극치가 현장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 노조의 설명이다.
이와 함께 노조는 코로나19와 싸우고 있는 모든 보건의료노동자에게 ‘생명안전수당’을 지급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지난 1년 코로나19 최전선에서 복무한 전담병원 보건의료인력이 지원받은 것이라곤 지난해 2월부터 5월까지 3개월간 위로금 명목의 수당이 전부인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중환자 치료 간호수당 추가, 코로나19 환자에 대한 야간간호관리료 인상 등 지원방안이 나왔지만, 대상이 선별적이고 제한적이어서 한계가 뚜렷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병상 부족으로 일반병동에 있는 중환자를 담당하는 간호사는 정부의 추가 수당을 받지 못한다는 상황이다. 낮 시간에 코로나19 병동에서 일하는 노동자도 야간에 일하지 않으면 수당을 받지 못한다. 전담병원 현장에선 벌써 형평성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정부의 인력지원 대책이 오히려 박탈감과 갈등을 부추기는 부작용도 나오고 있다.
간호사 외에도 간호조무사, 의료기사 등 수많은 인력이 전담병원에서 코로나19 환자를 직·간접적으로 접촉하며 대응하고 있기 때문에 코로나19에 대응하는 전체 보건의료인력에 대한 합리적이고 형평성 있는 지원방안이 필요하다는 것이 의료계의 판단이다.
노조는 또 코로나19 방역 및 보조인력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담병원의 정원 확대는 고사하고 의료기관 출입 통제를 위한 인력을 지원해주던 사업마저 최근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중단됐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전담병원 경상비 지원을 제도화에 대한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참여한 지방의료원별 개산급 지원 현황을 살펴보면 총 36곳 3165억원(올 1월 기준)이 지급되고 있지만, 매달 전담병원을 운영할 수 있는 최소한의 필요경비 및 인건비 소요액에 훨씬 못 미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전담병원 운영을 위한 필수경비를 충분하고도 신속하게 지속적으로 지원해야 장기화되고 있는 시스템을 유지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조는 “정부가 이미 약속한 공공병상의 확대와 함께 모든 지방의료원, 적십자병원의 병상을 최소 300∼500병상 규모로 확대하기 위한 지원계획을 반드시 연내 실천으로 옮겨야 한다”면서 “지난달 28일 정부는 코로나19 1년 만에 구체적인 백신 도입 계획을 발표했지만 소위 집단 면역이 형성되고, 코로나19가 종식될 때가 언제인지 정확히 가늠할 수 없는데도 근본적 대책 마련은 뒷전”이라고 질타했다.
정창교 기자 jcgy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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