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전 차갑던 아웅산 수지..인권으로 일어나 인권에 몰렸다
"관여해야 하나 지금은 그럴 상황 아니다"
민주화 투사 입장 기대했던 청중 당혹
#2013년 2월1일 서울대의 한 강당. 당시 미얀마 야당 지도자인 아웅산 수지 여사가 명예박사학위를 수여받은 뒤 질의응답에 나섰다. 참석자 한 명이 손을 들고 미얀마 소수민족 탄압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그는 “갈등 해결을 위해선 정식으로 관여해야 하지만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다”라고만 답했다. 민주화 투사이자 인권 운동가인 그에게 소수민족 탄압은 있어선 안 된다는 답을 기대했던 청중은 머쓱해졌다.
수지가 2015년 정권을 잡은 뒤인 2019년. 이슬람교를 믿는 소수민족인 로힝야족(族)이 미얀마 정부의 탄압으로 국제사회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그가 2013년 보였던 태도는 2019년 로힝야족 사태의 예고편이었던 셈이다. 로힝야족 사태는 국제사회에서 그에 대한 평판을 뒤집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15년 가택연금을 견디며 미얀마의 민주화에 기여한 공로로 받은 노벨평화상을 취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었다. 2013년 그가 방한해 받았던 광주인권상은 실제로 취소됐다. 그는 그러나 아랑곳하지 않았다. 로힝야족에 대한 탄압을 이유로 이슬람국가들이 미얀마 정부를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했는데, 미얀바 정부를 직접 변호하겠다고 나서기까지 했다.
그런 수지가 지난달 말 다시 군부에 의해 감금됐다. 미얀마 군부가 일으킨 쿠데타 과정에서다. 이를 놓곤 수지가 국내 지지 기반을 다지지 못해 군부와 위험한 동거를 했으며, 그때문에 이번 쿠데타를 자초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1일(현지시간) “아웅산 수지의 집권 뒤 행적을 보면 그는 민주화 투사도, 군부의 희생양도 아니다”라며 “타락천사이자 ‘파우스트’를 떠올리게 하는 인물로 전락했다”고 묘사했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원하는 것을 얻은 파우스트처럼 수지 역시 군부와 손잡고 권력을 누렸다는 비판적 언급이다. 국제정치 평론가인 이언 브레머 유라시아그룹 대표 역시 2일 공개한 유튜브에서 “수지 여사의 정부는 시작부터 불안정했다”며 “군부에 의회 의석 25%를 주는 등 군부와 손잡는 선택을 한 게 수지 여사 본인”이라고 지적했다.
수지는 집권 후 국내 정치 권력과 국제적 이미지 사이에서 전자를 선택했다. 로힝야족 문제에서 미얀마 정부를 옹호하고 나선 것은 선거 지형과 관계가 깊다. 그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DL)은 2015년 11월 선거에선 승리했지만 2018년 보궐선거에선 13개 의석 중 절반도 안 되는 6석을 얻었다. 이듬해 선거를 앞두고 수지는 무슬림 로힝야족에 반발감을 느끼는 불교 민심을 잡기로 결심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얀마는 국민의 88% 이상이 불교를 믿는다. 그의 계산은 적중했고, 2020년 선거에서 NDL은 압승한다. 그러나 여전히 의회 의석의 4분의 1은 군부 몫이었다.
수지의 권력욕 역시 도마에 올랐다. 그는 영국인과 결혼해 아들을 둘 뒀는데, 군부는 그의 집권을 막기 위해 “외국인과 결혼한 인물은 대통령이 될 수 없다”고 법제화했다. 이때문에 NDL 압승 후에도 대통령이 될 수 없던 그는 외교장관직을 택한다. 이후 그는 대통령은 꼭두각시로 만들고 각종 국제행사에도 대통령을 대신해 직접 국가 원수급으로 등장했다.
NYT는 수지의 이번 감금에 대해 “그가 집권하면 군부와의 균형을 이루리라고 모두가 기대했다”며 “그러나 그 임무를 해내지 못했고, 이번 감금은 그의 무능력이 자초한 것”이라고 박한 평가를 내렸다. 수지에 상대적으로 관대한 평가를 내려온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1일 “미얀마의 군부 쿠데타는 민주주의가 얼마나 지켜내기 어려운 것임을 보여준다”고 평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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