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사고로 하반신 마비.. '까치'가 가져다준 기적
[김동근 기자]
▲ 영화 <펭귄 블룸> 포스터 |
ⓒ 넷플릭스 |
갑작스런 '사고'에 예외는 없다. 누구나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다친 부위를 치료할 수 있다면 정신적 트라우마를 말끔히 씻어낼 순 없겠지만, 그래도 일상생활은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그 사고가 육체적 장애를 안겨준다면, 아마 대부분 좌절에서 빠져나오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런 갑작스런 사고는 주변 가족들까지 아프게 한다.
호주에 살던 샘 블룸과 그 가족들은 2013년 태국으로 여행을 간다. 샘 블룸은 한 관광지 옥상에 올라가 난간에 기대었다가 바닥으로 추락하고 만다. 이 과정에서 그는 척추를 다쳐 하반신이 마비된다. 그는 심각한 트라우마를 겪었고, 그의 남편 캐머런 블룸과 세 아들도 비슷한 트라우마를 겪었다.
그를 비롯해 그의 가족들은 이런 거대한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이들이 변화에 적응하고 어려움을 극복해 가는 과정이 남편 캐머런 블룸의 책 포토 에세이 <펭귄 블룸>에 담겨 있다. 샘의 가족들이 한 사람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시간 속에는 우연히 만나 가족처럼 살게 된 펭귄이라는 이름의 까치가 함께 했다.
▲ 영화 <펭귄 블룸> 장면 |
ⓒ 넷플릭스 |
하반신 마비는 샘의 삶의 의지까지 빼앗아 간다. 그는 남편 캐머런(앤드류 링컨)이 찍은 과거의 사진 속 자신의 모습을 한참 동안 보는데, 사진들 속 샘은 모두 서있거나 걷고 있다. 과거의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한 샘이 그것을 긴 막대기로 전부 깨트리는 모습은 그가 얼마나 절망에 빠졌는지 보여준다.
그는 이제 자신이 가족들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미안함을 가지고 있었다. 아이들을 돌볼 수 없고, 대부분의 육아는 남편이 도맡아야 했다. 에세이 <펭귄 블룸> 속에서 샘의 사고 당시 주변 사람의 증언이 나오는데, 사고 후 의식이 돌아왔을 때 그는 자신 때문에 가족 휴가를 망쳐서 미안하다고 계속 사과를 했다고 한다. 그런 점들을 봤을 때, 매우 이타적인 샘에게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은 그를 더욱 움츠리게 만들었을 것이다.
영화의 제목에 펭귄이 들어간다. 하지만 가족의 구성원 중에는 펭귄 블룸이라는 인물은 없다. 펭귄은 블룸 가족 중 첫째 아들 노아가 발견한 까치의 이름이다. 펭귄처럼 까만 색과 하얀 색이 섞여 있는 까치의 모습을 보고 노아가 지어준 것이다. 아기 새였던 펭귄을 집으로 데려와 키우기로 한 노아는 자신이 학교에 간 사이 엄마 샘에게 펭귄을 돌봐달라고 부탁한다. 그것이 샘과 펭귄의 첫 만남이었다. 샘은 처음엔 작은 그 까치를 거부하고 방치하지만 이내 돌보기 시작한다.
▲ 영화 <펭귄 블룸> 장면 |
ⓒ 넷플릭스 |
극심한 트라우마 속에 있는 사람들은 때로는 다른 동물이나 아이를 돌보면서 정서적 치유를 경험하기도 한다. 말도 못 하는 작은 새에 불과했던 펭귄은 샘의 옆에서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희망을 준다. 신기하게도 이 작은 희망은 샘을 밖으로 이끈다. 남편 캐머런의 노력도 있었겠지만, 펭귄 덕붙에 샘은 카약이란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선다. 치유는 펭귄으로부터 시작됐지만, 그것을 완성시킨 건 카약 도전이었다. 상체 위주로 움직이면 되는 이 스포츠는 샘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샘은 실제로 긴 시간 노력한 끝에 호주의 국내 카약 대회에서 우승했다.
한편 영화 속에서 샘을 비롯한 모든 가족은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데,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은 바로 대화다. 샘과 남편 캐머런은 영화 내내 계속 대화를 한다. 때론 다투기도 하고 감정을 크게 드러내기도 하지만 이내 상대방에게 사과하고 다시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영화 속 캐머런의 대사 중 "아내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혼란스럽다"는 말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그는 아내를 더 동정해야 할지 아니면 아무렇지 않게 대해야 할지, 더 강하게 이야기할지 등 어떤 태도를 취해야 아내의 기분이 상하지 않을지 그 적정한 선을 늘 고민했다.
샘의 사고를 직접 목격한 큰 아들 노아도 비슷한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영화 초반 독백에서 알 수 있듯 노아는 그 사고가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샘이 떨어진 그 관광지의 옥상에 자신이 먼저 가자고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고 이후 노아는 엄마 샘에게 선뜻 다가가지 못한다. 그런 노아의 태도는 그 마음을 알지 못하는 샘에게도 영향을 주고 두 사람을 점점 멀어지게 만든다. 그 멀어진 간극을 다시 메우는 건 솔직한 대화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노아와 샘이 자신의 마음을 솔직히 털어놓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뭉클한 순간이다.
▲ 영화 <펭귄 블룸> 장면 |
ⓒ 넷플릭스 |
실제 샘 블룸은 그 사고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앞으로 걸어간다. 그를 그렇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만들어준 존재는 바로 까치 펭귄일 것이다. 샘은 그 작은 새와 시간을 보내면서 사진도 찍는 등 조금씩 자신을 치유할 수 있었다. 영화 속에서 펭귄이라는 새의 비중이 아주 크지는 않다. 하지만 영화의 제목에는 '펭귄'이라는 새의 이름과 함께 '블룸'이라는 가족 이름이 뭍어 있다. 블룸 가족에게 펭귄이라는 존재는 가족과 다름없다는 이야기다.
샘 블룸의 과거 인터뷰에 따르면 현재 블룸의 가족 옆에 펭귄은 없다. 2015년 어느 날, 어느 순간 밖으로 날아간 펭귄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한때 아이들의 생일에 갑자기 찾아오거나 한 적은 있지만 아마도 지금은 완전히 독립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펭귄이 독립한 것처럼 샘도 자기 자신의 트라우마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독립된 생활을 하고 있다. 어쩌면 그들은 어려운 상황에서 서로를 독립시킬 수 있는 힘을 준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영화에서 샘으로 출연한 나오미 왓츠는 과거 영화 <임파서블>에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를 찍은 적이 있는데 이번에도 실화 바탕의 작품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줬다. 그는 이 영화의 제작자 중 한 명으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남편 캐머런 역을 맡은 앤드류 링컨은 미드 <워킹 데드> 시리즈의 주인공으로 알려진 배우다. 이 영화에서는 힘을 뺀 채 부드럽고 인내심 있게 가족을 돌보는 아빠를 연기했다. 그리고 펭귄을 연기한 실제 까치도 나는 모습만 CG로 처리했을 뿐 집안 곳곳을 누비는 장면은 실제로 촬영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영화의 엔딩 타이틀이 올라갈 때, 실제 가족의 사진과 펭귄의 모습을 볼 수 있어 끝까지 영화를 관람하면 더욱 따뜻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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