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김정은에 USB 건넬때..北실무진엔 하드카피 전달했다"

정용수 2021. 2. 2.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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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에 USB 건네
실무진은 이를 인쇄한 책자 형태로 전달
대선 공약인 한반도 신경제 구상 담겨
북 자원개발과 화력발전소 현대화 연계도

정부가 지난 2018년 4ㆍ27 판문점 정상회담 당시 이동식 저장장치(USB) 외에도 이를 인쇄한 책자 형태의 문건을 북한에 전달했다고 복수의 소식통이 2일 전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연합뉴스]


판문점 정상회담 상황에 정통한 이들 소식통은 “문재인 대통령이 한반도 신경제 구상을 담은 USB를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직접 전달했고, 실무진 차원에선 USB 내용을 인쇄한 뒤 제본해 책자 형태로 북한 측 실무진에게 건넨 것으로 안다”며 “USB만 전달하는 건 모양새가 어색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 당국자는 그러나 인쇄물을 전달한 구체적인 통로는 밝히지 않았다.

한반도 신경제 구상(한반도 신경제 지도)은 문 대통령이 캠프 때부터 공약으로 하고, 정부 출범 이후엔 국정 과제로 확정한 남북 경협 정책이다. 동ㆍ서해 축과 DMZ(비무장지대) 축을 기준으로 한반도를 ‘H’자 형태로 연결한 뒤 중국 및 러시아로 진출하는 ‘북방경제’를 통해 미래의 먹거리를 만들겠다는 게 골자다.

다른 전직 공위 당국자는 “남북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신경제 구상을 설명하는 게 좋았겠지만 정상회담이 당일치기로 열리면서 시간이 부족했다"며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관련 내용을 정리해 USB에 담아서 (북측에) 전달하는 것으로 내부 결정을 했다”고 귀띔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2018년 4월 27일 오전 판문점 평화의집 2층 회담장에서 남북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단]


평양에서 2박 3일 동안 열린 1ㆍ2차 정상회담과 달리 판문점 정상회담은 하루만 진행하는 바람에 두 정상이 만난 자리에선 북한의 비핵화와 남북관계 복원, 군사적 긴장완화와 관련한 대화에 집중하느라 경협을 논의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는 설명이다. 당시 정상회담은 오전 100분, 오후 38분간 진행됐다. 판문점 도보다리에서 44분간 담소를 나누기도 했지만, 한반도 신경제 구상과 관련한 깊은 논의는 없었다는 게 당시 회담 관계자의 전언이다.

특히 오후 회담에선 공동선언문 등을 논의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고 한다. 경협이 양 정상의 대화 의제에서 후순위로 밀리다 보니 한반도 신경제 구상을 USB에 담아 김 위원장에 전달해 추후 검토하고 협의하자는 취지였다는 얘기다.

최근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작성한 문건이 공개되면서 정부가 북측에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하려 한 게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 정부는 이날도 부인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전날(1일)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설명한 것 처럼 USB 내용을 다시 검토한 결과 원자력의 ‘원’자도 포함돼 있지 않다”며 “남북 정상간 오간 내용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건 관례에 벗어나는 것이지만, 표현은 상당히 포괄적으로 담겨 있다는 정도는 확인해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USB에 담긴 에너지 관련 협력 내용은 A4용지 1장에 8~9줄 정도의 분량이라고 한다. 서해안에는 조력, 동해안은 풍력과 태양열 협력이 가능하다는 식이다.

또 북한 지역의 노후한 화력발전소를 현대화해 줄 수 있다는 계획도 담겼는데, “(북한 지역의) 자원개발과 연계될 경우 화력발전소를 개선(현대화)할 수 있다”는 조건부였다고 한다. 북한에서 채굴한 지하자원을 한국으로 가져오고, 그 대가로 북한의 화력발전소를 현대화하는 주고받기식 협력구상이라는 게 당국자의 설명이다.

USB 내용을 놓고 북한이 별로 반색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익명을 원한 고위 탈북자는 “북한은 2005년 정동영 통일부 장관(당시)이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직접 대북 송전을 제안했지만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며 “언제든지 남측이 전력을 끊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은 지속적인 에너지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기에 남측 정부의 통 큰 지원을 기대했다”며 “하지만 USB 안에는 주고받기식의 조건부 또는 추상적인 차원에서의 협력 내용이 담겨 ‘껍데기 뿐’이라는 평가를 하며 실망했던 것으로 들었다”고 주장했다.

정용수ㆍ정영교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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