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이지 않는 시내버스 끼임 사고, 이것이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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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장식 기자]
▲ 시내버스의 중문이 닫히고 있다. |
ⓒ 박장식 |
지난 19일 저녁 8시경 경기도 파주시 법원읍에서 20대 승객이 버스에서 내리다 팔이 문에 낀 상태에서 버스가 출발해 사망한 사건이 벌어졌다. 사망한 승객의 안타까운 사연이 알려지면서 재발 방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점점 힘을 얻고 있다.
버스 승강문이 '위험지대'로 떠오른 것은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다. 한국소비자원의 과거 자료에 따르면, 2005년부터 2009년까지 3년 9개월간 접수된 시내버스 차내 안전사고 297건 가운데 4% 남짓한 12건이 내리는 문에 몸이나 옷 등이 끼이는 '출입문 끼임' 사고였다고 한다. 1년에 서너 명은 버스에 끼어 다치는 셈이다.
특히 대중교통 이용 승객이라면 한 번씩 버스 승강문에 끼일 뻔한 아찔한 순간이 있기 마련이다. 더욱이 버스 승객이 승강문에 끼어 숨지거나 크게 다치는 사고는 2012년과 2016년, 2017년에도 이미 있었다. 그렇다면 이런 끼임 사고가 왜 지속해서 발생하는 것일까.
긴급 상황에 취약한 시내버스 중문
시내버스에는 두 개의 문이 달려 있다. 통상적으로 앞과 중간에 승하차를 위한 문이 있어 이를 전중문형(前中門型) 시내버스라 부른다. 기사의 원활한 요금 수납, 빠른 승하차 등을 이유로 승차 문을 전문에, 하차 문을 중문에 배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현재 생산되는 고상버스의 경우 전문은 유지 보수가 쉽고 공간을 적게 차지하는 경첩 형태의 폴딩 도어를 사용하고, 중문은 승객들의 빠른 하차를 위한 공간 확보를 위해 문이 레일을 따라 밀리는 슬라이딩 도어를 사용한다. 이런 방식은 자동문이 장착된 전중문형 시내버스가 처음 출시된 1982년부터 이어져 왔다.
하지만 슬라이딩 도어는 문이 미닫이 형태로 닫히고, 재질 역시 금속재인 탓에 폴딩 도어나 글라이딩 도어(안쪽으로 회전하며 열리는 문)처럼 비상시에 몸의 무게로 문을 밀어내거나 당길 수 없다. 문을 여닫는 과정이 비교적 복잡해 도어 개폐에 3초 가량 소모되는 글라이딩 도어나 폴딩 도어에 비해 문이 여닫히는 속도가 1초 남짓으로 세 배나 빨라 안전사고의 위험도 높다.
물론 장점도 적지 않다. 문의 너비에 비해 공간을 확보하기 쉽다. 특히 차내에 있는 승객의 경우 저상버스에 장착된 글라이딩 도어에 비해 문에 의한 안전사고 우려가 없다는 점도 장점으로 들 수 있다. 새로 설치되는 글라이딩 도어에 비해 유지 보수가 비교적 간단하다는 점도 있다. 위험성을 감안하고도 일반 시내버스에 슬라이딩 도어가 계속 쓰이는 것은 이런 이유다.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슬라이딩 도어에는 센서가 장착되어 출고된다. 신체나 물건 등이 끼어 문이 완벽하게 닫히지 않는다면 곧바로 문이 다시 열리고 버스가 출발하지 못한다. 출입문 인근에는 적외선 센서도 마련되어 있다. 하지만 센서가 100% 완벽할 수는 없다. 이번 사고의 경우 승객의 팔이 끼었음에도 안전 센서가 작동되지 않았다.
이러한 슬라이딩 도어가 시내버스에 쓰이는 국가는 한국과 일본, 단 둘뿐이다. 과거 아시아자동차, 현대차 등이 미쓰비시, 히노 등 일본 회사와 기술제휴를 하거나 섀시를 수입하는 등 일본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일본의 경우 한국과 비슷하게 고상버스 중문에 슬라이딩 도어를 장착하고 있다.
▲ 시내버스의 중문으로 쓰이는 글라이딩 도어(왼쪽)과 슬라이딩 도어(오른쪽). 19일 사고가 발생했던 버스는 오른쪽과 같은 슬라이딩 도어였다. |
ⓒ 박장식 |
시내버스 기사들의 운전 습관, 이른바 루틴 역시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문 레버를 동작했을 때 즉각적으로 여닫는 것이 가능한 전문과는 달리, 중문은 안전을 위해 스위치를 동작해도 센서가 안전을 확인해야 비로소 문이 닫힌다. 하지만 안전을 위한 센서를 과신하는 경우가 현장에서는 적지 않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실제로 시내버스에서 승객들이 하차하는 중에 긴 버저음이 들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기사가 미리 폐문 레버를 당기는 경우다. 승차 승객이 많지 않아 전문을 닫을 때 중문 스위치를 함께 미리 작동시키는 것이다. 아예 정류장에 도착해 문이 열리자마자 폐문 방향으로 레버를 당기는 경우도 많다.
센서는 완벽하지 않다. 센서에 100% 안전을 위임해 버리기에는 앞선 사고처럼 센서 자체의 결함도 있을 수 있다. 승객들도 버저음이 문이 닫힐 것이라는 신호임을 알고 있기 때문에, 하차 과정에서의 안전사고 발생 비율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기사들도 할 이야기는 많다. 시내버스 중문이 닫히는 시간이 너무 길다는 점이다. 기사가 레버를 작동했을 때 센서가 먼저 작동하고 그 후 문이 완전히 닫힌 뒤에야 출발할 수 있다는 것. 특히 창원시와 같은 일부 지자체는 시내버스 문이 닫히는 시간을 3초 이상으로 제한하는 지침을 내놓아 출발 시간이 더욱 지체된다고 한다.
기사들은 승객의 하차 시간을 줄여야 하는 이유로 운행 시간 확보를 꼽았다. 실제로 경기도와 같이 민영제로 시내버스가 운행되는 지역은 특히 운행 시간이 빡빡하게 짜여져 있다. 신호 대기 시간 등을 줄일 수 없으니, 승하차 시간이라도 절약해야 한다는 마음에서 레버를 미리 당기는 습관이 자리 잡게 된다는 것이다.
승하차 시간을 보장하면서 안전하게 운행하면 버스의 운행 시간이 길어지고, 운행 시간이 길어지면 필수적인 휴식 시간을 보장받지 못하는 현재의 시스템으로는 변화를 끌어내기 어렵다. 승객의 안전을 지키는 방향으로 개선되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된다.
▲ 2017년 이후 출시되는 현대자동차의 시내버스에는 이렇듯 비상 레버가 장착되어 있다. |
ⓒ 박장식 |
자동차 제조사에서도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2017년부터 출시된 뉴 슈퍼 에어로시티의 전문과 중문 바깥에 출입문 끼임, 안전사고 발생시 문을 열 수 있는 밸브 형태의 비상 스위치를 장착하고 있다. 문 왼쪽에 있는 밸브를 당기면 누구라도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비상 밸브는 출입문 끼임, 하차 도중 폐문 등의 상황이 벌어졌을 때 사고를 막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관련 사고가 끊이지 않아 부족한 점도 많다. 이러한 비상 스위치를 설치하는 규정이 법령에 마련되어 있지 않은 데다 현대자동차의 비상 밸브도 실제 사고에 바로 대응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다.
실제 버스 앞문과 중문에 설치된 비상 스위치를 살펴보면 아크릴로 덮여 있는 데다 잡고 돌려야 하는 형태의 밸브다. 문이 닫힌 비상 상황에서 버스가 출발하는데 아크릴을 깨고 밸브를 돌려야 한다. 신체 일부분이나 의복이 끼인 상황에서 단시간 내에 취하기는 어려운 행동이다.
더욱이 2016년 이전에 출시된 모든 시내버스에는 이러한 밸브마저도 없다. 이번에 사고가 발생한 차량도 비상 밸브가 장착되지 않았다. 또한, 현재 생산하는 버스 중문에 비상 스위치가 설치되지 않은 제조사도 허다하다.
따라서 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시내버스 중문에 비상 스위치를 장착하는 법안 등이 마련되어야 한다. 더욱 빠르게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도록 비상 스위치를 버튼이나 간단한 손잡이 형태로 간소화하는 등, '최후의 수단'으로의 접근성을 더욱 높일 필요도 있다.
또한 이층 버스, 마을버스 등의 사례와 같이 뒷문에 기사들이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CCTV 설치를 의무화하고 비용을 지원하는 등의 변화도 필요하다. 최근 해외 메이커를 중심으로 후문이 추가로 달린 버스 차량이 출시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러한 설비는 더욱 안전한 버스 운행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운전자 한 명만 처벌받는 것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과 달리, 이번에는 외양간을 고치려는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유가족은 '비슷한 사고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라'며 절규하고 있다.
정치권과 관계 기관에서 먼저 나서야 한다. 시내버스 중문에 의무적으로 비상 스위치를 마련하고 시내버스 승하차 과정에 문제가 없는지 전면적으로 살펴야 한다. 한발 더 나가 승객들이 안전에 위협받는 다른 요소는 더 없는지도 꼼꼼히 점검해야 한다.
기사가 3초만 기다렸어도, 센서가 제대로 작동했어도, 해당 차량에 비상 밸브가 있어 당길 수만 있었어도 사람이 죽지 않았다. 이번에는 꼭 바뀌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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