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아침에 미얀마 장악했다.."인종청소 악명" 흘라잉 누구
지난 1일 쿠데타를 공식 선언한 미얀마 군부가 아웅산 수지 국가 고문이 이끌던 문민정부의 장·차관을 대거 교체했다. 2일 영국 BBC에 따르면 군부는 장·차관 24명의 직을 박탈하고 군사 정부에서 일할 국방·외무부 11개 부처 장관을 새로 지명했다.
수지 고문이 겸임했던 외교장관에는 테인 세인 정부에서 일했던 운나 마웅 르윈 전 외교부 장관이 5년 만에 복귀했다고 AFP는 전했다. 코로나19 대응을 이끌던 민 트웨 보건체육부 장관은 쿠데타 직후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이와 함께 교육부 장관, 공보부 장관, 교통부 장관은 사흘 내로 관사를 비우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매체는 전했다.
수지 고문이 이끌던 민주주의민족동맹(NLD) 소속 의원 등을 포함해 수백 명도 군부에 의해 구금됐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이로써 쿠데타를 주도한 민 아웅 흘라잉(64) 최고사령관은 견제 세력이 없는 미얀마 내 최고 실권자가 됐다. 문민정부에서 부통령을 맡았던 민 쉐 대통령 대행은 비상사태 선포 이후 입법·사법·행정에 대한 전권을 넘겼다.
민 아웅 흘라잉은 2011년부터 미얀마군 최고 실력자로 자리매김을 해왔다. 미얀마는 동남아시아에서 군대 규모가 두 번째로 크다.
그가 국제사회에 널리 알려진 건 미얀마 내 무슬림 소수민족인 로힝야족 학살 사건 때다.
2017년 8월 로힝야족 반군인 아라칸 로힝야 구원군(ARSA)이 미얀마에 대해 항전을 선포하고 경찰 초소를 공격하자 미얀마 군은 ARSA를 테러 단체로 규정하고 토벌했다. 이 과정에서 로힝야족 마을은 초토화되고 수천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여파로 로힝야족 74만 명 이상이 국경을 넘어 현재 방글라데시 난민촌에 거주하고 있다.
유엔 인권이사회(UNHRC) 조사단은 2018년 "미얀마 군부가 인종 청소 의도로 대량학살과 집단 성폭행을 저질렀다"면서 처벌을 촉구했다. 미국 정부는 2019년 그를 포함해 군부 최고위급 인사들에게 미국 입국 금지 조치를 내리고 재무부 제재 명단에도 올렸다.
국제 사회의 지탄에도 불구하고, 그는 반세기 넘게 미얀마를 지배해온 군부와의 협력이 필요했던 아웅산 수지 문민 정부의 '비호' 아래 여전히 군부 최고 실력자로 군림했다.
문제는 흘라잉의 은퇴 이후였다. 그는 2016년 임기를 연장한 뒤 올해 7월 군복을 벗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그는 계속 현직에 머물기를 원했다. 흘라잉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종종 정치활동을 홍보하고, 인터뷰에서는 은퇴 후 선거에 나설 것이라는 의지도 드러냈다.
그러던 와중 지난해 선거에서 제1야당이 참패하며 위기감이 커졌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이번 쿠데타 선언도 아웅산 수지 정부 아래에서는 선거로 권력을 유지하기 힘들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양곤의 한 고위 외교관은 로이터 통신에 "흘라잉이 헌법적 수단을 통해 수지의 문민정부에서 지도자가 될 길은 없었다"고 쿠데타의 배경을 설명했다.
BBC는 "미얀마가 군부통치 복귀를 선언하며 흘라잉 최고사령관은 최소 1년, 잠재적으로는 더 오래 집권할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하지만 로힝야 학살 책임자라는 오명에 더해 '미얀마의 봄'을 짓밟은 당사자로 지목되면서 그를 향한 국제사회의 비판과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이런 서방세계의 압박을 피하기 위해 그가 향후 동남아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중국에 기대며 정치적 입지를 공고히 하려 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2일(현지시간) 오전 비공개로 긴급회의를 소집해 미얀마 쿠데타 사태에 관해 논의했다.
바버라 우드워드 주유엔 영국대사는 로이터통신에 "평화와 안보에 대한 위협에 대처하려고 한다"며 "미얀마의 아시아 이웃 국가들과도 긴밀히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영국은 미얀마 대사를 초치하는 등 외교적 압박 수위를 높였다. 노벨 위원회도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아웅산 수지 국가고문의 즉각적 석방을 촉구했다.
유엔은 로힝야족 학살의 책임자인 흘라잉 최고사령관이 정권을 잡은 이번 쿠데타가 로힝야족 인권 문제를 악화시킬 가능성을 우려했다. 마이니치 신문은 "미얀마 군부는 로힝야족에게 미얀마로 돌아오라고 하지만 이들 사이에서는 불안감이 퍼지고 있다"고 2일 보도했다.
방글라데시에 있는 난민 캠프에 사는 로힝야족 남성은 마이니치와의 전화통화에서 "쿠데타 이전부터 미얀마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하는 난민은 거의 없었던데다 쿠데타로 인해 고국에 돌아가는 것이 더욱 곤란해졌다"고 전했다.
미얀마와 방글라데시 정부는 2018년 난민들을 미얀마로 돌려보내기로 합의했지만, 난민들의 안전에 대한 불안감이 큰 탓에 귀환은 좀처럼 진행되지 않았다고 마이니치는 전했다.
서유진·이민정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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