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김선택 교수 2년전 논문서 "사법농단 법관 탄핵 불가피" 주장
[아시아경제 최석진 기자]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에 대한 범여권의 탄핵소추안 발의를 두고 ‘사법개혁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입장과 ‘사법부 길들이기’라는 상반된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가운데 ‘사법농단’ 연루 법관들에 대한 탄핵 가능성을 상세하게 검토한 연구 논문이 있어 주목된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법재판 분야의 권위자인 김선택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윤정인 고려대 법학연구원 연구교수와 함께 사법농단 문제가 공론화됐던 2019년 2월 ‘법관 탄핵의 요건과 절차-사법농단 사태와 관련하여’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우리나라 2번의 법관 탄핵소추 불발… 미국은 2009년까지 15건 중 8명 탄핵해당 논문에서 김 교수는 우리나라와 외국의 법관 탄핵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경우 우리 역사에서 법관에 대한 탄핵은 두 번 시도됐는데 모두 탄핵인용에 이르지는 못 했다”며 “첫 번째 사례는 1985년 유태흥 대법원장에 대한 것이고 두 번째는 2009년 신영철 대법관에 대한 것”이라고 소개했다.
유 대법원장은 법관인사제도에 관한 비판적 의견을 기고한 판사를 무리하게 전보조치하거나 정권의 의사에 반하는 판결을 한 판사들에 대해 불리한 전보조치를 하는 식으로 인사권을 남용해 사법권의 독립을 침해하였다는 사유로, 1985년 10월 야당 의원 102명의 발의로 탄핵소추안이 국회에 제출됐지만 국회 표결에서 부결돼 탄핵을 면하고 다음 해 대법원장 임기를 마쳤다.
신 대법관은 서울중앙지방법원장으로 근무하던 2008년 촛불집회 관련 시국사건에 대해 특정 재판부에 ‘몰아주기 배당’을 하고, 이메일이나 전화를 통해 담당 법관들의 재판에 개입하고, 대법원장의 의사를 간접적으로 전하거나 담당 법관들에게 압력을 행사한 것이 문제가 돼 2009년 11월 야당의원 105명의 발의로 탄핵소추안이 국회에 제출됐지만 여당의 반대로 국회법상 처리시한을 넘겨 폐기됐고, 결국 신 대법관은 2015년 임기를 다 마치고 퇴임했다.
김 교수는 이들 사례를 소개한 뒤 “상황이 이러하다면, 이번 사법농단 사건에 연루된 법관들에 대하여 어떠한 법적 책임이 주어지는 것이 합당할지에 대한 검토는, 당면한 문제의 적정한 해결의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향후 유사한 상황이 재발할 가능성을 대비하는 차원에서도 긴요하다고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비교법적으로 볼 때, 탄핵의 대상이 되는 공직자의 범위는 각 나라의 헌정사, 권력구조, 입법배경 등에 따라 다소간 차이를 보인다”며 “예컨대 미국과 같이 ‘대통령, 부통령 및 모든 미국의 공무원’이라고 포괄적으로 규정하는 입법례가 있는가 하면, 독일처럼 ‘연방대통령과 법관’에만 한정하는 예도 있고, 일본처럼 재판관만을 탄핵대상자로 규정한 예도 있다”고 소개했다.
이어 “이같이 탄핵대상의 범위에 관한 다양한 입법례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범위의 법관은 공통적으로 탄핵대상에 속한다”고 밝혔다.
또 김 교수는 ‘헌법질서의 수호’와 ‘공직에 대한 공적 신뢰의 보호’라는 탄핵제도의 취지는 사법부를 구성하는 법관들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며 ”따라서, 어떤 법관이 그 직무와 관련해 헌법과 법률을 위배함으로써 그 직을 유지하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함이 입증되거나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완전히 잃은 경우, 그리하여 그가 법관직을 유지하는 경우에 그가 내린 판결과 사법부의 결정을 국민이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에 이른 경우에는, 탄핵에 의한 파면이 가능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대통령, 부통령 및 모든 미국의 공무원’을 탄핵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 연방 차원에서 이뤄진 19번의 탄핵 중에 2건만이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었고, 15건은 연방법관에 대한 탄핵으로 그 중 8명이 탄핵결정 돼 파면됐다“고 소개했다.
이어 “국민들로부터 강력한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은 독임제 헌법기관인 대통령에 비해, 법관에 대한 탄핵은 상대적으로 일상적인 절차로서의 의미를 가지고 있고, 비록 지난 1803년 이래 단 8명만이 탄핵됐지만 탄핵인정사유 또한 대통령의 경우보다 경미한 경우에도 인정됐다”고 덧붙였다.
“사법권 독립은 공정한 재판 위한 것”… “법관 탄핵 사법권 독립 침해 아냐”김 교수는 법관에 대한 탄핵이 사법권의 독립을 침해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그는 “사법부의 독립을 다른 국가기관으로부터의 어떠한 감시나 견제도 받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로 왜곡해 이해한 나머지, 법원에서 이뤄지는 모든 결정, 즉 재판작용 외에 사법행정에 이르기까지 외부로부터의 비판이나 견제로부터 절대적으로 자유로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권력분립의 원리가 권력기관 간의 분리에 그치지 않고 권력기관들 간의 상호통제(견제와 균형)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볼 때, 사법부에 대한 견제 통제는 마땅히 필요한 것이며, 그것과 조화를 이루는 선에서 사법권의 독립을 이해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김 교수는 “사법권의 독립과 그 한 내용인 법관의 신분보장은 공정한 재판을 위한 수단”이라며 “법관의 신분보장 역시 주권자인 국민이 위임한 사법기능의 올바른 행사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방식으로 제도화돼야 하는 것이지, 여하한 경우에도 법관의 신분이 보장되도록 제도화되거나 그렇게 운영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헌법이 탄핵제도를 마련해 둔 이유도 밝혔다.
그는 “통상 공무원들에게는 조직내부규칙을 통한 징계처분이나 법정사유에 따른 파면이 가능한데, 그 중 징계절차를 통해 책임을 논하기 어렵거나 강화된 신분보장으로 인해 그 직으로부터 파면할 수 없는 고위공직자의 경우 헌법은 탄핵제도를 마련해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법관의 경우 헌법 제106조에 따라 탄핵 또는 금고이상의 형의 선고에 의해서만 파면될 수 있고, 징계처분에 의해서는 정직, 감봉 기타 불리한 처분만이 가능할 뿐이고, 법관징계법상 법관에게 가해지는 최고 수위의 징계는 정직 1년으로 규정돼 있기 때문에 직무상 비위행위가 심각한 법관을 합법적으로 그 직으로부터 파면할 수 있는 절차는 형의 선고에 의한 공직 박탈을 제외하면 탄핵심판 뿐”이라고 밝혔다.
김 교수는 “때문에 그러한 부적격자를 법관직으로부터 배제하는 제재는, 사법부가 수행하는 기능의 중요성과 그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고려할 때, 사법부의 독립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진정한 사법부의 독립을 확립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어, 바람직할 뿐 아니라 필수적이라고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김명수 대법원장의 지시로 구성된 자체 진상조사단의 조사 뒤 대법원 징계위원회에 넘겨진 사법농단 연루 판사 13명 중 2명이 정직 6개월, 1명이 정직 3개월 징계 처분을 받았고 4명이 감봉, 1명이 견책 처분을 받았다. 나머지 5명 중 2명은 불문, 3명은 무혐의가 의결됐다. 김 교수는 “법원 내부 징계절차의 한계를 보임으로써 ‘외부에 의한 징계’에 해당하는 탄핵의 불가피성을 보여준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김 교수는 대법원 사법정책연구원이 2015년 발간한 연구총서에 실린 ‘각국 법관 징계제도에 관한 연구’에도 “탄핵 등 부적격자를 법관직으로부터 배제하는 제재는 사법부의 독립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진정한 사법부의 독립을 확립하는 계기가 될 수 있어, 바람직할 뿐 아니라 필수적”이라는 취지로 서술돼 있다고 밝혔다.
법관 탄핵 사유… 재판상의 독립을 해치거나 다른 법관에 대해 신분상의 불리한 처분 초래한 경우한편 김 교수는 헌법 제65조 제1항과 헌법재판소법 제48조가 규정한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위반)한 때”의 의미도 설명했다.
그는 “법관 탄핵의 경우에는 우선적으로 헌법 제103조와 제106조를 고려할 수 있다”고 전제했다.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는 법관의 재판상 독립을 규정한 조항이고, 제106조는 1항에서 ‘법관은 탄핵또는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파면되지 아니하며, 징계처분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정직 감봉 기타 불리한 처분을 받지 아니한다’고 하여, 법관에 대한 엄격한 신분보장을 규정한 조항이다.
김 교수는 “법관이 그 직무집행상(직무와 관련이 있는 행위로) 다른 법관의 재판에 개입하거나 압력을 행사하는 식으로 재판상의 독립을 해치는 경우 헌법 제103조 위반이 문제될 것이고, 사법행정권을 남용하거나 그에 방조하는 방식으로 헌법에 정해지지 않은 수단을 통해 다른 법관에 대해 신분상의 불리한 처분을 초래했을 경우에는 헌법 제106조 위반도 문제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그는 “물론 형사범죄가 성립할 경우 당연히 탄핵사유인 법률위반행위에 포섭되겠지만, 탄핵사유로서의 법률위반행위가 반드시 형사구성요건과 일치할 필요는 없다”며 “결국 법관의 탄핵사유로서의 법률위반행위는 법관징계사유보다는 제한적이고 무겁되, 형사범죄 성립까지는 요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파악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법관 탄핵은 사법을 정상화하는 방안”논문 말미에서 김 교수는 2018년 5월 작성된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관련 특별조사단 조사보고서’에서 “법관들의 기본권을 침해할 만한 행위를 한 점”이라고 지적한 것과 2018년 11월 전국법관대표회의 2차 정기회의에서 114명의 전국법관대표가 ‘법관 탄핵이 필요한 사안’이라고 지적한 점 등을 근거로 “사법농단 사건에서 밝혀진 여러 불법사실 내지 비위사실에 대해서는 법원의 자체 진상조사단의 조사결과를 통해 확인된 사항들만으로도 탄핵소추에 충분한 정도에 이른다고 보는 것이 상식에 부합될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당시 법관대표들은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저질러진 사법농단에 대해 “우리는 법원행정처 관계자가 특정 재판에 대해 정부관계자와 재판진행방향을 논의하고 의견서 작성 등 자문을 해준 행위나 일선 재판부에 연락해 특정한 내용과 방향의 판결을 요구하고 재판절차 진행에 관해 의견을 제시한 행위가 징계절차 외에 탄핵소추절차까지 함께 검토돼야 할 중대한 헌법위반 행위라는데 대해 인식을 같이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마지막으로 김 교수는 “법관 탄핵이 사법부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길게 보면 사법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사법부의 인테그리티(온전함. Integrity)를 지켜 사법을 정상화하는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임 부장판사는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였던 2015년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장과 공모해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행적'에 관한 기사를 쓴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의 명예훼손 혐의에 대한 재판 등에 부당하게 개입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 재판부는 당시 문제가 된 행위들이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의 일반적 직무권한에 속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 등으로 임 부장판사의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지만 판결 이유에서 "이 사건 각 재판 관여 행위는 피고인의 지위 내지 개인적 친분관계를 이용해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는 위헌적 행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위헌성을 지적했다.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비롯해 민주당·정의당·열린민주당·기본소득당 국회의원 161명은 전날 임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야당은 임 부장판사의 재판 개입 행위가 부적절해 탄핵 사유가 될 수 있는지 문제와는 별개로 지금 여당이 법관에 대한 탄핵소추를 추진하는 것은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 관련 사건이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에 대한 실형 선고,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에 대한 징역형 선고 등 일련의 판결에 대한 보복 차원의 ‘사법부 길들이기’라고 주장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최석진 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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