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경영] 프랑스 금융가에 '은행'이 드문 이유

이현우 2021. 2. 2.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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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은행 이름들을 살펴보면 우리나라와 달리 정작 '은행(Bank)'이란 단어를 쓰는 곳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은행이라는 단어가 붙는 곳은 '프랑스중앙은행(Banque de France)'처럼 국책은행이 대부분이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은행이란 단어가 아예 '사기'라는 뜻으로 쓰일 정도로 신용이 없었기 때문인데, 프랑스 최초로 중앙은행을 설립한 재무총감 '존 로(John Law)'라는 미스터리한 인물의 일대기에 그 이유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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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로의 초상화. [이미지출처=대영박물관 홈페이지]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프랑스의 은행 이름들을 살펴보면 우리나라와 달리 정작 ‘은행(Bank)’이란 단어를 쓰는 곳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시에테제너럴, 크레디아그리콜처럼 사회라는 뜻의 ‘소시에테’나 신용이라는 뜻의 ‘크레디’를 쓰는 경우가 더 많다. 은행이라는 단어가 붙는 곳은 ‘프랑스중앙은행(Banque de France)’처럼 국책은행이 대부분이다.

민간은행들의 이런 관행은 지금부터 약 300년 전인 1720년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은행이란 단어가 아예 ‘사기’라는 뜻으로 쓰일 정도로 신용이 없었기 때문인데, 프랑스 최초로 중앙은행을 설립한 재무총감 ‘존 로(John Law)’라는 미스터리한 인물의 일대기에 그 이유가 담겨 있다.

로는 원래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젊은 시절 프랑스 파리 도박판에 들어가 천재 도박꾼으로 이름을 날렸다. 이후 1715년 프랑스 국왕 루이14세가 사망하자 그의 운명이 바뀌기 시작했다. 당시 프랑스의 차기 군주 루이15세는 고작 다섯 살인 어린아이로 실제 정치는 루이15세의 5촌 당숙인 오를레앙공이 맡게 됐다. 이 사람은 로가 도박판에서 자주 만난 친구였다.

국정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던 오를레앙공은 섭정이 되자 루이14세가 70년 넘게 벌인 주변국과의 전쟁으로 빚더미에 앉은 재무 상황을 해결해야 할 상황에 처했다. 그가 친구인 로에게 이 문제를 털어놓자 로는 자신을 재무총감직에 앉혀주면 해결할 수 있다 큰소리쳤고, 오를레앙공은 일개 도박꾼이던 그에게 일국의 재무를 맡겼다.

로는 이후 기상천외한 방식의 경기 부양책을 실시했다. 발권력을 가진 중앙은행에서 돈을 무제한 찍어내 정부 부채를 갚고 대신 지폐 가치를 한 공기업의 주식 가격과 연동시켜 가치를 유지하는 꼼수였다. 중앙은행인 방크제너럴과 미시시피주식회사란 공기업은 이런 목표 아래 설립됐다.

로는 미시시피주식회사가 아메리카 식민지 사업을 독점한다고 광고하고 식민지에서 금과 은, 보물을 발견했다는 등 장밋빛 가짜 뉴스를 시장에 흘려 주가를 폭등시켰다. 미시시피 주식과 연동된 화폐 가치도 덩달아 폭등하자 로는 지폐를 남발해 정부 부채를 일부 해소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사기극은 오래가지 못했다. 정작 미시시피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밝혀지자 주식 가격이 폭락했고 연동되던 화폐 가치도 급락해 물가가 폭등하고 파산한 빈민이 속출했다. 프랑스 정부는 이전보다 훨씬 큰 부채를 안게 됐다.

프랑스 왕실은 로에게 모든 책임을 물어 자산을 몰수하고 국외로 추방했지만, 애초 도박꾼에게 나라 곳간을 맡긴 왕실의 인맥 정치는 전혀 해소되지 못하고 프랑스 대혁명으로 이어졌다. 대중의 투기 심리를 악용한 거품 경기로 경제 문제를 눈가림하려는 꼼수는 결국 더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교훈을 남겼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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