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개미들 이번엔 은 매집..그런데 '헌트 형제 비극' 떠오른다

강남규 2021. 2. 2.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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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온라인 토론방 레딧에서
인플레 근거로 은 매집 주장 제기
은 값이 최근 8년 사이 최고까지 올라
헌트 형제는 은 매집하다 끝내 파산
은 현물

미국 개인 투자자들이 주로 모인 인터넷 토론방 레딧에서 지난주부터 “은을 사야 할 때”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리고 독일 동화 ‘피리 부는 사나이’에 나오는 장면과 비슷한 사건이 벌어졌다.

동화 속에서 한 남자가 피리를 불자 아이들이 무리 지어 뒤따른 것처럼 누군가 ‘은 매입’을 주장하자 가격이 최근 8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랐다.

은 선물(3월 인도분) 가격은 1일(현지시간) 뉴욕상품거래소(NYMEX)에서 온스당 9.3% 급등한 29.42달러에 마감했다. 2013년 2월 이후 8년 만의 최고치다. 금이나 은, 원유 가격이 뛰면 생산회사의 주가도 강세를 보이기 마련이다. 은 생산업체 쿠어 마이닝과 팬아메리카 실버 등의 주가가 급등했다.

국제 은시세(온스당 달러). 블룸버그


산업적인 수요가 급증한 탓이 아니다. 최근 글로벌 시장을 주도하는 개인 투자자들의 관심이 은에 쏠린 탓이 크다.

최근 레딧의 '월스트리트베츠(Wall Street Bets)' 토론방에서 “은을 사야 할 때”라는 주장하는 주장이 다수 제기됐다. 한 투자자는 “달러 공급 급증이 낳은 인플레이션 전망을 반영한 은값은 25달러가 아니라 1000달러는 돼야 한다”고 썼다.

게다가 최근 게임스탑 사례처럼 은 시장에서도 공매도 세력을 궁지에 몰는 작업(silver squeeze)을 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월가의 헤지펀드가 게임스탑 주식을 대거 공매도하자, 개미 투자자들이 무리지어 매수에 나서 공매도 세력에 막대한 손실을 안겼다.


헌트 형제의 비극
개미 투자자의 ‘은 매집’이 게임스탑에서처럼 성공할까. 역사 속 에피소드를 보면 성공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는다.

은 시세조종이 비극으로 끝난 1980년 미 의회에 청문회에 출석한 윌리엄(왼쪽)과 넬슨 헌트 형제. 게티이미지

40여년 전인 1979년 미국의 석유 부호인 넬슨과 윌리엄 헌트 형제가 은을 매집했다. 은값이 금 가격보다 낮아 어렵지 않게 시세 조종을 할 수 있다고 믿어서다.

헌트 형제는 사들인 은을 담보로 맡기고 증권사 등에서 돈을 빌려 다시 은을 사들였다. 값이 오를수록 은의 담보가치가 커져 더 많은 돈을 빌려 더 많이 사들일 수 있었다.

헌트 형제가 사들인 은은 무려 5600여t에 달했다. 80년 당시 세계 공급량의 절반 수준이었다. 그들의 매집에 은값은 온스당 48.7달러까지 치솟았다. 50달러를 조만간 넘을 듯했다.

그런데 '검은 백조(돌발사건)'가 출현했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가 은의 담보 비율을 낮춰 버렸다. 헌트 형제의 자금 동원에 족쇄가 채워진 셈이었다.

게다가 은값이 오르자 미국인들이 창고 등에 버려두다시피 한 은쟁반, 은촛대 등을 내다 팔기 시작했다. 헌트 형제가 예상치 못한 은 공급(매도 공세)이었다. 그 바람에 은 가격은 1980년 40달러 선에서 15달러 선으로 곤두박질했다. 그리고 헌트 형제도 몰락했다.


세상은 넓고 은은 많다!
헌트 형제 에피소드에서 드러난 것은 ‘은이 금보다 많다’는 평범한 팩트다. 은값이 오르면, 사람들이 잊고 지냈던 은반지, 은수저, 은쟁반, 은촛대 등을 시장에 내놓기 시작한다.

또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은에 대한 공매도 물량도 많지 않다. 대규모 공매도 세력도 존재하지 않는다.

톰슨로이터는 이날 전문가의 말을 빌려 “개인 투자자들이 집단으로 은을 매집해 가격을 어느 정도는 끌어올릴 수는 있다”며 “하지만 은 시장은 매도 물량이 어느 순간 쓰나미처럼 밀려들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또 매도 급증 가능성은 은 매집 주장의 핵심인 ‘은=인플레 헤지’이란 논리마저도 무색하게 한다. 물가가 급등하는 와중에 은값이 추락하는 일이 1980년에 실제 벌어졌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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