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지펀드 박살낸 美 '불개미'..그들 읽는 키워드 'SURF'의 뜻
게임스톱 주식을 쓸어담으며 헤지펀드와 한판승을 벌이고 있는 미국 개인투자자들이 월스트리트의 역학 관계를 바꾸고 있다. 전문투자자들에게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던 시장을 평평하게 하기 위해 치열한 일전 중이다.
월스트리트의 새로운 문법을 쓰는 미국의 '불개미'들은 온라인 주식토론방에서 활동하는 밀레니얼들이다. 이들은 1981~2004년 사이에 태어나 아동·청소년기였던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겪었다. 저성장 시대에 태어나 학자금 빚 부담과 취업난에 시달렸고 양극화와 고용 불안을 몸소 체험했다. 주식거래 앱인 '로빈후드' 등 정보기술(IT) 기반의 모바일 트레이딩 플랫폼 등을 활용해 직접 투자에 나선다.
월가를 뒤흔든 젊은 개미들을 알파벳 4글자로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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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NS로 똘똘 뭉쳤다
미국 개미들의 아지트는 '월스트리트베츠(Wall street bets·WSB)'라고 불리는 온라인 주식 토론방이다. 특정 종목에 ‘좌표’를 찍고 집중 매수를 권유하는 글, 주식이 떨어질 때 팔지 말라고 당부하는 글이 모두 여기에 올라온다. 청소년기에 경험한 금융위기가 어떻게 자신의 삶을 바꿨는지를 설명하며 연대 의식을 다지는 장소도 이 온라인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온라인 커뮤니티 특유의 B급 정서가 가득한 '밈(meme·사진이나 동영상을 재밌게 합성해 만든 이미지)'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이들에게 밈을 통한 소통은 일종의 오락이다. 주식을 팔지 않고 버틴다는 의미의 ‘다이아몬드핸즈(diamond hands)’나 주가를 달까지 끌어올린다는 의미의 ‘투더문(to the moon)’ 등 수많은 유행어가 이곳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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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베이비부머와의 항쟁(uprising)
WSB의 밀레니얼들은 베이비부머 세대에 대한 적대감도 드러낸다. 지난달 28일 WSB에는 ‘멜빈 캐피털과 베이비부머에 보내는 공개서한’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금융위기 때 10대 초반이었고 월가가 우리 삶에 미친 충격을 생생히 기억한다”며 기성 권력을 응징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 글에 수천 명이 공감을 표시했다.
또 다른 밈에는 “당신(기성세대)들은 고교 시절 여름 동안 일해서 자동차를 사는 등 미국의 황금기를 누렸지만 우리는 아무것도 가질 수 없다”는 내용이 담겨 인기를 끌었다.
실제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미국 밀레니얼 세대가 보유한 자산은 전체의 4.6%에 불과했다. 1989년 당시 청년이던 베이비붐 세대가 보유했던 21%보다 한참 적은 수준이다. 노동으로 부를 일구기 어려운 시대에 태어난 밀레니얼들의 박탈감이 베이비부머에 대한 적대감으로 이어졌다는 분석도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30일 사설에서 “기성세대가 경제를 잘못 이끌었다고 생각하는 젊은 투자자들의 분노로 게임스톱 사태가 시작됐다"고 분석했다. 같은 날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낸 32세 청년 마이크의 말을 인용해 “이번 사태는 밀레니얼 세대와 빅보이의 싸움”이라며 “베이비붐 세대에는 학자금과 집 보증금으로 허덕이는 사람이 없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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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리스크? 받고 더블로
헤지펀드와 공매도 대첩에 나선 밀레니얼들은 게임스톱 주식뿐 아니라 파생상품인 콜옵션까지 쓸어담았다. 콜옵션은 자산 가격이 얼마나 오르던 미리 정해둔 싼 가격에 자산을 살 수 있는 권리다. 파생시장에는 주식 시장의 서킷브레이커와 같은 가격 변동 폭 제한 조치가 없다. 하루 만에 자산 가격이 몇배로 오르거나 내릴 수 있어 고위험 상품에 속한다.
콜옵션 구매자가 많아지면 옵션을 판매한 금융사들은 아무리 실현성이 낮은(주가가 뛸 가능성이 낮은) 콜옵션이라 하더라도 만일을 대비해 헤지 차원에서 주식을 사게 된다. 그 결과 주가가 서서히 오르고, 개미 투자자들이 사들인 콜옵션의 가격도 오른다. 예상과 달리 주가가 오르면 콜옵션 판매업자들도 한층 더 헤지 매수를 늘린다. 말 그대로 돈이 돈을 부른다. 밀레니얼들은 이런 고위험상품인 콜옵션을 대거 매수하며 주가를 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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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플래시몹처럼 모이고 흩어진다
일사불란하게 모이고 흩어지기를 반복하는 것도 밀레니얼들의 특징이다. WSB의 밀레니얼은 스티브 코언 등 헤지펀드 창립자 트위터에 ‘좌표’를 찍고 일시에 공격을 퍼붓는 일을 반복해왔다. 이런 게릴라 공격은 불특정 다수가 한날 한곳에 모여 함께 춤을 추는 등 약속된 행동을 하고 흩어지는 ‘플래시몹’을 연상케 한다.
개미 군단이 주식 거래 앱 로빈후드를 공격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지난달 28일 로빈후드가 개인투자자의 게임스톱 매수를 중단시키자 개인투자자들은 대응법을 일사불란하게 공유했다. 거래가 중단된 직후 WSB에는 게임스톱 주식 거래가 가능한 증권사 명단이 떴고, 미국 증권 규제 당국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민원을 넣는 방법도 올라왔다.
WSB에는 ‘로빈후드 집단소송’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대화방도 만들어져 개설 당일에만 2만명 넘는 이용자가 가입했다. 개인투자자들은 매수 중단 조치가 내려진 당일 뉴욕 지방법원에 로빈후드를 상대로 집단소송 소장을 제출하기도 했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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