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 배경을 해변사진으로.. 과밀학급 원격수업 이끈 소통의 힘
실시간쌍방향 원격수업에서 학생들이 얼굴 노출을 꺼리는 점은 사소해 보이지만 교사들이 가장 골머리를 앓는 부분 중 하나다. 학생 입장에선 얼굴뿐 아니라 가정환경까지 생중계된다는 점이 꺼리게 되는 요소로 보인다. 지난해 교육부가 전국 초·중·고 교사, 학생, 학부모 75만246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원격수업 관련 설문조사’에서도 이런 어려움이 잘 드러나 있다.
교사들에게 “학생들이 실시간쌍방향 수업에서 주로 제기하는 어려움은 무엇인가”라고 묻자 32.2%가 ‘화상수업에서 얼굴을 노출하기 싫어함’이라고 답했다. 2위 ‘가정 내 인터넷 환경이 좋지 않음’(20.7%)과 격차가 상당했다. 학생들도 실시간쌍방향 참여의 어려움에 대해서 ‘얼굴을 보여주기 싫다’ ‘가정환경 드러내기 싫다’라는 응답이 각각 32%, 14.9%로 1위와 3위를 차지했다.
청주의 솔밭중학교에서도 이 문제로 갈등을 겪었다. 학생들이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화상 카메라를 끄는 건 수업의 질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교사와 학생 갈등 차원을 넘어 교권 침해로 이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이 학교는 가뜩이나 한 반에 30명이 넘는 과밀학급이어서 원격수업을 하기에 악조건이었다.
김성은 교감은 “예를 들면 체육선생님은 아이들이 무서워한다. 체육시간에는 다들 화상 카메라 켜고 칼같이 출석한다. 학생들이 무섭게 생각하는 선생님이 아닐 경우 아이들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늦거나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당하는 교사 입장에서는 제자들에게 무시당하는 기분 때문에 자존심에 상처를 입게 되며, 꺼진 카메라 앞에서 “나 혼자 뭐하는 거지”란 무력감에 빠져 수업이 제대로 이뤄지기 힘들었다는 설명이다.
학교는 교사 개인이 대처하기 어렵다고 보고 학교 차원에서 대응하기로 했다. 학부모·학생과 소통해 이 학교만의 원격수업 규칙을 만들기로 했다. 실시간쌍방향 수업 시 화상 카메라는 교사가 끄라고 하기 전까진 무조건 켜고 얼굴을 보여주도록 했다. 화상 카메라가 없다면 학교가 대여해주기로 했다.
교사들은 실시간쌍방향에서 얼굴을 마주하는 게 왜 중요한지 학부모 설득에 나섰다. 학부모들도 “아이가 실시간쌍방향 수업에서 화상 카메라 끄고 누워 있다”며 학습 습관에 대한 우려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설득이 어렵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가정환경 노출을 꺼리는 점은 고려해 학생 화면의 뒤 배경을 해변 사진 등으로 바꿀 수 있도록 허용했다.
평소에 소통을 강화한 것이 도움이 됐다고 한다. 먼저 교사 간 소통이 중요하다고 보고 학기 초부터 ‘등교(원격)수업관리위원회’를 구성해 20여 차례 회의를 가졌다. 어떤 원격수업 도구를 활용할지 교사 연수는 어떻게 할지 속도감 있게 결정됐다고 한다. 또한 한 반에 30명이 넘는 학생이 원격수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학부모 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인식했다고 한다. 학생들은 집에, 교사는 학교에 있으니 거리 장벽이 발생할 수밖에 없으며, 아무리 정보통신기술(ICT)이 발달했어도 교실에서 직접 만나는 것에는 미치기 어렵다고 봤다.
등교와 원격수업이 병행되던 5월 19~21일에 1차, 8월 21~24일에 2차 학부모 의견수렴을 했다(표 참조). 1차에서는 주로 원격수업 자체에 대한 불만이 있었고, 2차에서는 실시간쌍방향 확대 및 수업의 질을 높여 달라는 요구가 많았다. 솔밭중은 8월 25일 실시간쌍방향 확대와 수업 내실화 내용을 담은 ‘원격수업 내실화 및 학력격차 해소 방안’이란 가정통신문을 발송했다. 교육부가 비슷한 내용으로 발표한 ‘원격수업 질 제고 및 교사-학생 간 소통 강화방안’(2020년 9월 15일 발표)보다 20일이나 앞선 것이었다.
3차 학부모 의견수렴은 10월에 있었는데 거리두기 단계 조정으로 ‘3분의 2 등교’와 ‘3분의 1 등교’를 결정하기 위해서였다. 학부모들은 의외로 3분의 1 등교의 손을 들어줬다. 많은 학생 수 때문에 방역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와 동시에 원격수업에 대한 신뢰가 작용했다고 학교 측은 설명했다. 김 교감은 “등교와 원격수업 병행이 성공하려면 신뢰에 기반한 소통이 무엇보다 필요한데 학부모에게는 수업과 학생지도에 대한 믿음, 학생들에겐 교사가 한 작은 약속이라도 꼭 지켜진다는 믿음이 중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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