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훈의 이코노 아웃룩] 공매도전쟁 참전 美개미군단 '월가天下' 균열 낼까
미국의 게임스톱발 공매도 전쟁은 쓰나미로 발전할까, 아니면 찻잔 속 태풍에 그칠 것인가. 지난주 공매도 대결 여파에 3000선을 내주는 등 심하게 흔들렸던 코스피지수가 1일엔 다시 3000선 위로 올라섰다. 헤지펀드들이 게임스톱 증거금을 갚기 위해 다른 보유주식을 내다판 데 영향을 받기는 했지만 위험자산 선호라는 전체 시장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재료는 아닌 듯해 보인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개인투자자들이 소셜미디어 레딧을 발판으로 월가 점령 세력으로 부상할 수 있는 잠재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글로벌 금융역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할 장면으로 기록될 만하다.
게임 소매회사 게임스톱 주가는 레딧의 토론방 ‘wallstreetbets’로 몰려든 개인투자자 수백만명의 주식 매집으로 최근 몇 주간 1625%나 올랐다. 블랙베리, AMC엔터테인먼트 등 사양길을 걷고 있는 회사의 종목들도 몇 배씩 뛰어올랐다.
빌린 주식을 내다판 뒤 차익을 챙기는 헤지펀드의 공매도에 대한 반감으로 시작된 개미들의 봉기는 수수료 무료를 내건 주식투자 앱 로빈후드가 밑바탕을 제공했다. 이 회사는 앱에 가입하면 애플 등 우량주 일부를 경품으로 내거는 등 파격적인 혜택으로 가입자를 모집했다. 이에 영향을 받은 다른 온라인 증권회사들도 덩달아 수수료를 파격적으로 내리는 등 개미투자자 모집에 나섰다. 그 결과 지난해 미국에 증권 계좌를 개설한 신참 개미들이 1000만명이나 늘어났다.
로빈후드가 주린이(주식 초보자를 어린이에 빗댄 표현)들을 증시로 이끌었다면, 코로나19 사태는 이들을 투자에 몰두하게 하는 환경을 제공했다. 지난해 두 차례 미국 정부에서 지급한 1인당 600달러의 소득지원금은 주식투자 계좌로 흘러들어갔다. 코로나19 봉쇄조치로 집에 갇혀 카우치 포테이토(소파에 앉아 감자튀김을 먹으며 TV를 시청하는 사람) 신세가 된 사람들은 미 프로농구, 미식축구를 시청할 기회가 줄어들자 주식 투자를 통해 욕구를 대신 충족하게 됐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 같은 주식투자 게임에 대해 허리띠를 풀어놓고 맥주와 나초를 먹으며 프로농구팀 LA레이커스의 경기에 빠져드는 것과 유사하다고 비유했다.
하지만 단순히 소파에서 시작된 주식 투자가 월가의 소수 엘리트들에 대한 가공할 대항마로 등장한 모멘텀은 레딧, 디스코드, 틱톡 등 소셜미디어 사이트가 제공했다. 개인투자자 한 명의 종잣돈은 소액에 불과하지만 수백만명이 모이면 소수 프로투자자들을 압도하게 된다. 헤지펀드 같은 기관투자가들은 기업 데이터 분석에 기반한 과학적 투자를 하는 반면 이들 레디터 군단은 먹잇감이 발견되기만 하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적을 궤멸시킨다. 이들의 게임스톱 매집 공격으로 헤지펀드 멜민캐피털은 지난달 53%의 손실을 기록했다.
무엇보다 소수 월가 엘리트의 탐욕에 대한 반감이 이번에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뉴욕타임스는 이를 10년 전 수포로 돌아갔던 월가점령(Occupy Wallstreet) 시위의 후속편이라고 평가한다. 토론방 ‘wallstreetbets’에는 대형은행을 살리는 대신 1000만명이 넘는 중산층 서민들이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내앉게 됐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구제금융 정책의 불합리를 토로하는 젊은이들의 글이 많이 올라온다.
게임스톱 이사진에 행동주의 투자자로 유명한 라이언 코언이 합류하게 된 것도 이들을 정신적으로 결집시키는 힘이 됐다는 평가다.
게임스톡발 공매도 전쟁이 증시 버블의 징조일까. 이은택 KB증권 연구원은 이 종목의 공매도 비중도 전체 시총의 0.001%로 극히 미미하다는 점을 들어 이번 사건은 펀더멘털과 무관하다고 선을 긋는다. 월스트리트저널도 지난 27일 기준 공매도가 현저한 종목 비중이 S&P500 시가총액의 0.17%에 불과해 시장 전체를 전염시킬 파급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봤다.
또 미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레디터들의 집단 매집 행위에 대해 조사할 예정이지만 이들의 행동이 주가조작으로 처벌받기는 어렵다는 의견이 더 많다. 주가조작이 성립하려면 해당 회사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흘려 주식 매집을 권유해야 하지만 레디터들은 단순히 토론방에 주식을 사자는 글과 인증샷을 올렸을 뿐이다. 해당 회사에 대한 실적이나 오너, 잘못된 의견을 개진하는 등 속임수가 개입돼야 주가조작 혐의가 인정된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이 레디터들의 주장처럼 월가의 1%에게 유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될지 주목된다. 미국 의회의 일부 의원들이 이번 사태와 관련해 준비 중인 청문회가 그 시발점이 될 수도 있다. 의원들은 로빈후드가 지난주 한때 게임스톱 등의 주식거래를 제한한 것이 헤지펀드를 두둔하고 개인투자자들의 주식 매수권리를 침해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결집한 개미들이 월가 소수엘리트의 대항마로 자리잡을 수 있느냐, 아니면 한때의 유행에 그치고 말지는 공매도 전쟁을 넘어 금융산업의 민주화운동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느냐에 달려 있다.
공정한 금융 및 투자교육 프로젝트 창립자 앰버 페트로비치는 최근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에서 “여기서 몇 개의 주식을 (매집)하는 데서 경제양극화의 해결책이 나올 수 없다”면서 “이제는 그런 집단의 힘을 사회적 공공 선을 위해 사용할 때”라고 조언했다. 이를테면 기업의 상품과 서비스, 경영관행 등을 바꾸기 위한 방편으로 집단적 권력을 십분 활용해야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이동훈 금융전문기자 d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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