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B 내용은? 정상 간 비공개 합의 있었나? 왜 삭제?
국민의힘이 제기한 대북 원자력발전소 건설 지원 논란의 실체를 밝히려면 몇 가지 쟁점들이 정리돼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4월 판문점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건넨 USB 속 ‘한반도 신경제 구상’의 내용, 정상 간 비공개 합의 여부, 산업통상자원부의 문건 삭제 경위 및 청와대의 지시 여부다.
국민의힘은 검찰 수사 단계에서 밝혀진 삭제 문건의 목록을 기반으로 의혹을 제기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근거는 없는 상태다. 청와대와 여권도 “근거 없는 신 북풍몰이”라고 비판하고 나섰지만 USB 공개 등엔 미온적인 상황이다.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건넨 USB 속 자료는 2018년 당시 통일부가 작성한 것이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원안을 청와대에 보고했고, 이를 USB에 담아 김 위원장에게 건넸다.
당시 청와대에 근무했던 한 관계자는 1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정상회담 프로토콜상 주무 부처에서 만들다보니 남북 경제협력 방안을 담았던 문 대통령의 ‘한반도 신경제 지도’ 공약보다도 훨씬 후퇴한 내용일 수밖에 없었다”며 “공약에도 없던 원전 문제를 야권 동의도 없이 통일부 차원에서 만들어 김 위원장에게 건넨다는 건 난센스”라고 말했다.
통일부도 이 자료를 생산했다고 밝힌 상태다. 통일부 관계자는 “그 내용은 각 부처에서 보낸 정상회담 관련 구상을 통일부가 받아 작성해 청와대에 보고한 것”이라며 “다만 자료 내용을 공개할 순 없다”고 말했다.
복수의 전현직 청와대 관계자 발언을 종합하면 신경제협력 구상은 남북 간 철도·도로 연결을 통한 인적·물적 교류 확대가 핵심 사안이었다. 실제 남북 정상은 4·27 판문점선언에서 동해선·경의선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에 합의했다. 여권 관계자는 “핵심 의제도 아닌 에너지 협력 분야에서, 비핵화 없이는 추진하지도 못할 원전 문제를 제안할 상황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당시 정상회담에서 논의된 에너지 협력 분야는 남북 동해안에 집중된 수력·화력·풍력 등 재래식 발전을 연계하는 방안 정도가 주 내용이라는 게 이들의 전언이다. 2018년 말 국토연구원의 ‘한반도 신경제 구상 구현을 위한 국토 분야 전략방안 연구’를 보면 남한 전체 발전설비 중 약 37%, 북한 수력발전 설비용량의 34%와 화력발전 설비용량의 12%가 동해안에 분포하고 있다. 이를 연결하는 게 신경제 지도 구상 중 동해권 에너지벨트 사업이다. USB 외에 다른 자료를 청와대가 북한에 건넸을 거란 추측도 정치권에서 나오지만 근거가 없는 상태다.
남북 정상 간 구두로 이뤄진 비공개 합의가 있었을 수도 있다. 두 정상은 2018년 4월 27일과 5월 26일 한 달 새 두 차례나 만나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눈 바 있다.
그러나 비공개 합의가 있었다 한들 정상회담 관례상 확인이 어렵고, 역시 합의를 추정할 만한 근거가 없다. 당시 상황에 비춰 원전 지원을 언급할 만한 상황도, 이유도 없다는 게 청와대 관계자들의 공통된 입장이다.
전직 청와대 관계자는 “판문점선언 직후 1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놓고 상황이 삐끗하자 두 정상이 한 달 만에 비공개 2차 정상회담을 가졌다”며 “대전제인 북·미 정상회담 성사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청와대 또는 범정부 차원에서 원전 지원 구상을 검토할 만한 여지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의혹의 근거도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정상 간 대화를 공개하라고 하는 것도 외교적으로 무리다. 여권 관계자는 “정상 간 대화를 함부로 공개하는 건 상대국에 대한 심각한 외교적 결례”라며 “2018년 5월 상황에서 원전 지원에 대한 정상 간 비공개 합의를 의심하는 건 당시 흐름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제일 미심쩍은 부분은 산자부 공무원이 문서를 삭제한 배경이다. 국민의힘은 청와대 지시를 받은 게 아니냐고 의심한다.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은 한 라디오 방송에서 “핀란드어까지 동원해 꼭꼭 숨겨놓고, 왜 일요일 야밤에 (삭제를 위해) 관리자 허가를 안 받고 들어갔느냐”고 지적했다. 김은혜 대변인도 “배후로 의심받는 청와대는 당혹감의 반영인지 ‘법적 조치 하겠다’는 말 외에는 그날의 진실에 대해 답하지 않고 있다”며 “이 모든 사태의 의문을 풀어줄 사람은 이제 문 대통령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윤영찬 민주당 의원은 한 라디오 방송에서 “아무래도 감사원 감사가 예정되면 공무원들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며 “(삭제된) 530건 중 북한 원전 관련 문건은 30건밖에 없다는데, 이를 삭제하기 위해 530건을 모두 삭제할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천영우 전 이명박정부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페이스북에 “북한 원전 건설을 추진한 비밀이 탄로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기보다는 탈원전 정책의 명분과 정당성을 부정하는 증거를 인멸하려는 시도였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강준구 손재호 기자 eye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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