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석의 Mr. 밀리터리] 대북 강경일색 바이든 행정부..북, 옥쇄전략으로 버티나
불리하면 판 깨고, 핵능력 강화
핵잠수함 건조에 5년 이상 소요
보복 핵전력 보유땐 핵우산 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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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을 명분으로 한 북한의 기만전략
북한이 전례 없이 조용하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안보팀이 대북 강경 일색으로 짜이고 있는데 북한에선 일언반구도 없다. 특수·참수작전이 전문인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요구하는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커트 켐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인도태평양조정관, 김정은 분석가 정박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 등이 포진했다. 북한 김정은 총비서에게 점점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황이 구축되고 있다. 북한은 새로운 전략에 절치부심하는 것 같다.
북한의 핵개발 전략은 시간이 필요할 땐 협상 테이블로, 속셈이 드러나면 판을 깼다. 북한은 제네바 기본합의(1994년), 6자 회담(2007년 ‘2·13합의’), 트럼프 행정부까지 3번의 비핵화 협상을 했지만, 막판엔 모두 포기했다. 그러는 사이 북한 핵능력은 ‘핵물질 확보→핵실험·핵무기 생산→핵무장 강화’로 향상됐다. 선의로 핵협상을 시작한 마음씨 좋은(?) 한·미는 번번이 낭패를 봤다. 이런 과정은 30년 가까이 반복됐다. 지난 3년 동안 트럼프 대통령과의 협상도 마찬가지다. 북·미 핵협상 실패 원인이 김정은 총비서의 약한 비핵화 의지였는지, 아니면 기만전략인지 확인하긴 어렵다. 그러나 북한은 과거처럼 협상기간을 활용해 추가 제재를 피하면서 핵무장 완성단계에 온 것은 틀림없다. 결과적으로 북한은 협상을 명분으로 기만전략에 성공한 셈이다.
미 합참 교범에 딱 맞는 북한 기만술
북한 기만전략의 방법과 절차는 어쩌면 전형적인 수법이다. 미 합참이 2012년 발행한 기만술 교범(JP 3-13.4 『Military Deception(군사 기만)』)에 정의한 그대로다. 기만은 옳지 못한 방법으로 다른 사람을 속여 넘기는 짓이다.(위키백과) 허위 또는 왜곡된 내용을 상대방이 수용하도록 유도하고, 결과적으로 상대방의 행동을 조종한다.
미 합참 기만술 교범이 정의한 기만 방법은 4단계다. 기만함으로써 얻는 목표(Goals and Objectives), 기만할 표적(Targets), 기만을 위한 정보유통 통로(Conduits to Targets), 상대방을 속일 그럴싸한 스토리(Deception Story)다. 국민대 정치대학원 박휘락 교수(‘북한 비핵화 협상에서의 전략적 기만 분석’ 『국제정치연구』)에 따르면 북한의 ‘기만 목표’는 핵무기 증강을 위한 시간 확보다. 미국이 북한에 군사옵션을 사용하기 어렵게 북한이 핵능력을 확충하는 것이다. 30∼60개(미 CIA 추정)의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이 100개 수준까지 갖는 것이다. 한국을 언제라도 타격할 전술핵무기, 미국 본토에 닿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2격 핵전력인 잠수함용 미사일(SLBM) 등을 확보하는 게 북한의 최종 목표다. 북한이 2격 핵전력을 가지면 한·미군의 응징을 받고도 다시 핵무기로 보복할 수 있다. 북한 도발에 대한 응징 자체가 어려워진다.
북한의 ‘기만 표적’은 한·미 대통령이다. 미 합참 교범도 기만 표적은 상대방의 최고 의사결정자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래서 “김 총비서는 핵협상을 실무회담에서 합의할 여지를 주지 않고, 정상회담을 통해 일괄타결을 고집했다”고 박 교수는 말했다. 특히 김정은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Your Exellency’라는 극존칭을 쓴 친서를 27번이나 보냈다. 그 영향으로 트럼프는 북한에 강경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 북한이 단거리 미사일을 쏴도 내버려 뒀다. 북한은 기만전략의 ‘통로’로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과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을 택했다. 그런데 정의용 실장과 달리 폼페이오 장관의 통로 역할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폼페이오는 2018년 3∼10월 사이에 4차례나 방북했지만, 북한의 문제를 계속 제기했다. 그래서 북한은 폼페이오 장관의 교체를 요구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북한의 ‘기만 스토리’는 “핵무기를 폐기할 용의가 있다”는 의미 전달이다. 그러면서 북한은 ‘조선반도 비핵화’라는 애매한 용어를 사용했다. ‘조선반도 비핵화’는 북한이 1991년부터 써온 ‘조선반도 비핵지대화’를 줄인 말이다. 북한군 총참모부는 이 용어를 “남한과 주변지역에서 북한에 가해지는 핵위협을 근원적으로 제거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북한을 비핵화하는 대신 미국의 핵우산은 물론 핵무기를 운영할 수 있는 전략폭격기와 항공모함 등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 심지어 주한미군까지 제거한다는 내용이다.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동맹의 사실상 와해로 이어질 수도 있다. 북한은 핵무기를 폐기하겠는 말을 명시적으로 하지 않았다.
확증편향적 집단사고가 낳은 낭패
그런데도 한국 정부는 북한의 ‘조선반도 비핵화’에 대한 의미를 북한에 명확하게 묻지 않았다. 문 대통령을 비롯한 우리 정부는 ‘한반도 비핵화’라는 애매한 용어를 썼다. 반대로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 비핵화’라고 썼다. 비핵화 대상이 북한이라는 것이다. 북한의 기만을 의심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비핵화를 위해선 북한의 핵무기 반출이 선행돼야 하고, 생화학무기와 장거리 미사일까지 폐기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내용을 정리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이 내용은 2018년 하노이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전달했다.(존 볼턴 『The Room Where It Happened』) 결과적으로 한국 정부만 북한의 기만 스토리에 끝까지 속은 셈이다.
문재인 정부가 북한의 기만적 용어를 수용한 것은 잘못된 인식과 확증편향적인 집단사고 때문으로 보인다. 미 버클리대 어빙 제니스 교수에 따르면 확증편향적 집단사고는 힘과 도덕성이 우월한 응집력이 높은 집단에서 발생한다. 촛불정권으로 초기 높은 지지율로 도덕성을 내세운 현 정부는 외부의 비판을 듣지 않는다. 비판적인 전문가는 아예 배제했고, 언론과 야당의 지적엔 귀를 닫았다. ‘악마의 변호인’이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반대로 미국은 야당과 언론이 악마의 변호인 역할을 했다. 트럼프의 국가안보보좌관인 맥 매스트와 존 볼턴은 직을 걸고 바른말을 했다. 그래서 2018년 하노이 회담을 중단했다.
이제 북한은 핵무장의 마지막 단계인 2격 핵전력 확보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북한이 2격 핵전력을 구축하면 미국은 뉴욕·워싱턴의 희생을 감수해야 한국에 핵우산을 제공할 수 있다. 미국의 부담은 크고, 핵우산의 신뢰는 떨어진다. 북한의 2격 핵전력의 핵심은 지난달 열병식에서 공개한 ‘SLBM 북극성-5ㅅ’이다. 하지만 북한이 북극성-5ㅅ을 실을 핵추진 잠수함을 건조하려면 최소한 5년이 필요하다고 방산업계는 본다. 북한은 그때까지 버터야 한다. 그래서 북한이 최종병기를 갖기 위해 선택한 새 전략은 8차 당대회의 핵심내용인 국민 총력전에 의한 옥쇄전략으로 판단된다. 그 방안이 자력갱생이다. 경제가 최악인 상태에서 장기간 버티면서 미국도 어쩌지 못할 핵무장을 완성하는 것이다.
북, 핵·미사일에 의한 무력통일로 바꿔
대남 통일노선도 결전전략으로 바꿨다. 북한 헌법보다 우선하는 노동당 규약 서문에서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노선’을 삭제했다. 대신 핵과 미사일을 기반으로 한 ‘강력한 국방력’으로 한반도를 무력통일한다는 문구를 넣었다.(한국군사문제연구원 김열수 안보전략실장) 삭제된 통일노선은 남한에서 미국을 쫓아내고 남조선혁명을 지원해 혁명에 성공한 남한 정부와 연방제 통일을 실현하는 방식이다.(세종연구소 정성장 북한연구센터장) 하지만 이젠 곧바로 대남 무력통일하겠다는 것이다. 북한은 무력통일을 위해 미국을 견제할 다탄두 SLBM, 남한을 타격할 극초음속 미사일과 전술핵무기를 만들겠다고 한다.
북한의 핵폐기 가능성은 거의 없고, 대남 무력통일노선도 굳어졌다. 정부는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 아직도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를 언급한 문 대통령의 말은 국민의 안전조차 무시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정부는 북핵 위협 실상을 국민에게 설명해야 하지만, 이 지경이 된 책임도 져야 한다. 그 책임의 중심에 섰던 정의용 전 안보실장을 외교부 장관 후보에 지명한 것은 심각하다. 북한에 기만을 또 당할 수 있다. 이젠 한·미동맹 차원에서 미 핵우산이 포함된 확장억제력의 신뢰성을 높여야 한다. 한·일·동해 등에 미군 전술핵 배치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최악을 대비해 핵무장 사전준비도 고민할 때다. 준비가 안 된 전시작전통제권 조기전환은 중단해야 하고, 한·미 연합훈련은 복원해야 한다.
■ 키워드
「 악마의 변호인 (devil’s advocate)
카톨릭 교회에서 성인을 임명할 때 후보자의 결점을 최대한 폭로하도록 강제로 임무를 부여 받은 사람.
」
김민석 군사안보연구소 선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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