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남의 영화몽상] 소울 22호의 '불꽃'은 무엇
미국의 애니메이션 제작사 픽사는 창의력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집단이다. 주인의 사랑을 받고 싶은 장난감들의 모험담 ‘토이 스토리’를 시작으로 작품마다 현실에 없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상상력, 그런데도 현실의 관객이 충분히 공감할만한 이야기 솜씨로 감탄을 자아내곤 했다. 이런 조직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일에 대한 열정도, 몰입도 대단할 터. 이와 관련해 픽사의 공동 창립자이자 오랜 경영자였던 에드 캣멀이 몇 해 전 펴낸 저서 『창의력을 지휘하라』에는 퍽 인상적인 이야기가 나온다.
때는 픽사의 초창기이자 ‘토이 스토리 2’의 제작이 난항을 겪고 있던 1999년이다. 급기야 신인 감독을 하차시키고 1편의 명장 감독 존 라세터가 다시 연출을 맡았지만, 배급사 디즈니와 약속한 제작 기한은 몇 달밖에 남지 않았다. 제때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픽사 직원들은 밤낮없이, 휴일 없이 작업에 몰두했다. 그렇게 과로에 지친 애니메이터 한 사람이 출근길에 아기를 탁아소에 맡기려다 깜박하는 일이 벌어진다. 아기는 몇 시간 뒤 땡볕에 주차된 자동차 뒷좌석에서 의식 없이 발견됐다. 다행히 아기가 괜찮아졌기에 망정이지, 자칫 큰일이 날뻔했다.
에드 캣멀은 그 충격을 이렇게 적었다. “근로 의욕이 높고 일에 중독된 직원들이 마감 기한을 맞추고자 불철주야 일하는 모습을 흐뭇하게 보는 경영자가 많지만, ‘토이 스토리 2’ 제작 과정을 지켜본 나는 직원들이 한계를 넘어 과로하다 보면 기업이 파멸할 수도 있겠다고 느꼈다.”
그의 말이 다시 생각난 것은 새로 개봉한 픽사 애니메이션 ‘소울’(Soul)에서 열정 넘치는 주인공 조 가드너(목소리 제이미 폭스)를 보면서다. 중학교 음악 교사로 일하는 조의 머릿속은 재즈 생각뿐. 평생 꿈꿔온 연주 기회가 생겼는데 그만 사고를 당해 저승길에 오른다. 어떻게든 지구로 돌아가려던 조는 뜻밖에도 ‘태어나기 전 세상’에 떨어지고, 문제적 영혼 22호(목소리 티나 페이)를 만난다. ‘태어나기 전 세상’의 다른 영혼들이 각양각색의 성격에 이어 저마다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관심사, 이른바 불꽃(spark)을 부여받아 지구로 내려가는 것과 달리 22호는 불꽃이 결핍된 상태, 쉽게 말해 매사에 의욕과 관심이 없는 영혼이다.
대조적인 조와 22호가 함께 겪는 모험은 인생에서 소중한 게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만든다. 인생을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채 막연한 두려움을 무관심으로 포장하고 있던 22호가 뜻밖의 것들에서 그만의 불꽃을 얻는 과정은 조에게도 깨달음을 안겨준다. 좋아하는 일에 빠져, 실은 좋아하는 일에만 빠져 주변에 무심했던 조가 평범하고 사소한 일상에 눈을 돌리게 되는 모습이야말로 픽사 애니메이션의 성숙한 시선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이후남 문화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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