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쿠데타, 75세 아웅산 수지 구금
수지 "쿠데타에 항의 시위 하라"
군부 "총선 부정선거" 들며 쿠데타
대통령도 구금, 인터넷·통신 먹통
미국·유엔 "민주주의 방해" 비판
수지, 2015년 민주화 이끌었지만
로힝야 추방 침묵해 비난 받아
미얀마에서 1일 군사 쿠데타가 발생해 군이 민주화 지도자 출신의 실권자 아웅산 수지(75) 국가고문을 구금하고 국정을 장악했다고 BBC방송이 보도했다. AP통신의 미얀마 수도 네피도발 기사에 따르면 미얀마군 TV는 이날 성명을 내고 “선거부정에 대응해 구금 조치를 실행했다”며 “군은 1년간 비상사태를 선포했다”고 발표했다. 미얀마군 TV는 “민 아웅 흘라잉 군 최고사령관에게 국가권력이 넘어갔다”고 선언했다. 수지 고문은 이날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을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나는 국민에게 군사 쿠데타를 받아들이지 말고 이에 대항해 항의 시위를 벌일 것을 촉구한다”고 호소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AFP통신에 따르면 미얀마 집권 NLD의 묘 뉜 대변인이 “수지 고문과 윈 민 대통령이 수도 네피도에서 군에 의해 구금됐다”고 전했다. 미얀마 최대 도시인 양곤의 시청 외부엔 군인들이 배치됐으며 이동통신과 인터넷·유선전화 등 통신기기가 먹통이 되거나 장애가 발생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지난해 11월 8일 치른 총선의 결과를 놓고 군부가 부정 의혹을 제기하며 쿠데타를 시사한 뒤 발생했다. 수지 고문이 이끄는 NLD는 2015년 총선에서 승리해 1962년 네 윈의 군사 쿠데타 이후 53년간 이어졌던 군부 지배를 끝낸 데 이어 지난해 11월 총선에서도 압승했다.
6년 만에 짓밟힌 ‘미얀마의 봄’ … 장갑차가 국회 통제
NLD는 하원에서 전체 의석 440석 가운데 315석, 상원에선 224석 중 161석을 차지했다. 미얀마에서 군부는 군사정권 당시 제정한 헌법에 따라 상·하원 의석의 25%를 할당받고 내무·국방·국경경비 등 3개 안보·치안 부처의 수장도 군부 몫이다. 이런 상황에서 수지는 군부를 견제할 수 있는 의석을 재차 확보했다.
하지만 군부는 선거 직후 유권자 명부(유권자 수 3700만 명)가 실제와 860만 명 차이가 난다며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했다. 지난달 26일 군 대변인이 기자회견에서 “군부가 정권을 잡을 것이라고 말하지도 않지만, 잡지 않을 것이라고도 말하지 않는다”며 쿠데타 가능성을 언급했다. 다음 날엔 흘라잉 군 사령관이 “특정 상황에선 헌법이 폐지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는 쿠데타로 인한 헌정 중단 사태를 시사한 것으로 해석됐다. AP통신은 그 직후 일부 대도시에 장갑차가 배치됐다고 보도했다. 그 뒤 유엔과 외교사절단이 잇달아 우려를 표명하자 군부는 지난달 30일 “헌법을 준수하겠다”며 한발 물러서다가 이틀 만에 전격적으로 쿠데타를 일으켰다.
수지 고문의 구금 소식에 미국·호주 등 서방국가들은 군부에 법치주의를 존중할 것을 촉구했다. 미국의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성명을 내고 “미국은 미얀마의 최근 선거 결과를 바꾸거나 민주화를 방해하려는 어떤 시도에도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사키 대변인은 “미국은 미얀마군이 국가 고문을 비롯한 관리를 체포하는 등 미얀마의 민주주의를 저해했다는 보도에 경각심을 갖고 있다”며 군부를 압박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수지 고문 구금을 비난하고 “국민 의사를 존중하고 평화로운 대화를 통해 견해차를 해소해야 한다”고 군부에 촉구했다.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소속 필리핀·캄보디아·태국은 같은 회원국인 미얀마의 쿠데타에 “내부 문제”라며 즉각적인 언급을 회피했다.
수지 고문은 미얀마에서 특별한 위치에 있다. BBC는 “수지는 외국 국적의 자녀(영국의 두 아들)가 있어 미얀마 헌법상 대통령을 맡을 수 없다”면서 “그동안 실질적인 최고지도자 역할을 해왔다”고 보도했다. 헌법에 없는 국가고문 자리를 만들어 이를 맡은 것을 가리킨 말이다.
수지는 영국에 대항해 독립운동을 이끈 ‘미얀마의 국부’ 아웅산 장군의 딸이다. 아웅산은 일본에서 군사훈련을 받고 42년 일본이 미얀마를 침공할 때 함께 귀국했지만 나중에는 일본에도 대항했다. 전후 영국에서 클레멘트 애틀리 당시 영국 총리를 만나 독립을 약속받았다. 하지만 독립을 6개월 앞둔 47년 7월 32세의 나이로 회의 중 폭탄이 터지면서 암살당했다. 범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숨질 당시 32세였으며 딸 수지는 2살이었다.
수지는 그 뒤 해외에서 거주했으며 영국 옥스퍼드대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근무했다. 72년 옥스퍼드대 아시아 역사학 교수인 영국인 마이클 에어리스(99년 작고)와 결혼해 두 아들을 얻었다. 88년 4월 모친의 위독 소식에 귀국했다가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그해 8월 8일 미얀마의 당시 수도 양곤 등지에서 대학생·승려·시민이 100만 명 이상 참가해 군부 독재와 버마(미얀마의 옛 이름)식 사회주의 실패, 부패, 경찰 폭력 등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자 군부가 무력 진압하는 8888 사건이 벌어졌다. 사망자는 300~1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런 상황에서 국부의 딸인 수지는 자연스럽게 민주화운동의 구심점이 됐다.
수지는 89년 군사정권에 가택연금을 당했지만, 비폭력 저항을 이끌어 91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결정됐다. 상을 받으러 출국하면 군사정권이 귀국을 막을까봐 남편과 두 아들이 대리 수상을 했다. 95년 가택연금은 해제됐지만, 군사정권에 의해 구금과 석방을 반복하며 민주화운동을 펼쳤다. 2010년 말 미얀마에서 20년 만에 총선이 실시되면서 석방됐으며 2012년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당선해 정치에 진출했다. 같은 해 노르웨이에서 노벨 평화상 수상 21년 만에 수락 연설을 했다.
하지만 수지는 민주화 운동가에 노벨평화상 수상자임에도 자국 서부에 거주하는 무슬림(이슬람 신자) 소수민족 로힝야인(미얀마에선 라카인 이주민으로 부름)에 대한 정부와 군부의 인권유린과 ‘인종청소’를 묵인·방치했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미얀마는 135개로 이뤄진 다민족 국가지만 68%를 차지하는 버마족, 9%의 산족, 7%의 카렌족, 2%의 몬족은 모두 동남아시아 계열로 불교도다. 로힝야인은 인도유럽계 무슬림인데, 군부는 이들이 영국의 식민지배 당시 지금의 방글라데시에서 불법 이주했다고 주장하며 박해를 해왔다.
국제사회의 반발에도 로힝야 추방에 침묵하면서 영국 옥스퍼드시와 아일랜드 더블린시는 수지의 명예시민 자격을 철회했다. 노벨평화상 반납 요구도 빗발쳤다. 수지는 2019년 네덜란드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ICJ)에 피소되자 법정에 출두해 자국 정부의 로힝야인 추방 조치를 옹호해 국제사회의 비난을 샀다.
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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