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는 미친개, 또 싸워야지요" 분노의 미얀마 [인터뷰]
‘아웅산 수치 여사 구금.’ 지난 1일 새벽 전해진 속보는 세계를 다시금 충격에 빠뜨렸다. 미얀마 군부는 이날 쿠데타를 일으켜 실질적 국가 지도자인 수치 고문을 가두고, 1년간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미얀마군은 자체 TV를 통해 낸 성명에서 “선거 부정에 대응해 구금 조치들을 실행했다”며 “권력이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에게 이양됐다”고 밝혔다. 지난해 11월 총선으로 ‘문민정부 2기’가 들어선 지 채 석 달도 안 돼 벌어진 일이다<수치 고문이 이끄는 집권당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은 2015년 총선에서 압승하며 53년간의 군부 지배를 끝냈다. NLD는 지난해 11월 총선에서도 전체 선출 의석의 83.2%를 석권하며 압승했다>.
순조롭게 민주화의 길을 걷는 것처럼 보이던 미얀마에서는 어떻게 군부 쿠데타라는 퇴행이 벌어졌을까. 왜 군부는 부정선거 의혹을 꺼내들었을까. 국민일보는 이날 미얀마 출신 인권운동가 소모뚜(46)씨와 전화 인터뷰를 갖고 그 이유를 들어봤다. 1995년부터 한국에서 활동해 온 소모뚜씨는 자국 민주화운동을 측면 지원하며 국내 미얀마인들을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하고 있다. “또 싸워나가야지요.” 그의 마지막 말에 비장함이 서렸다.
-미얀마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켰다. 어떻게 바라보나.
“이미 어느 정도 예견됐던 일이다. 2008년 군부가 만든 미얀마 신헌법은 군부가 언제든 다시 권력을 잡을 수 있도록 해 놓았다. 헌법 조항을 살펴보면 ‘국방안보평의회’라는 게 있다. 군부가 장악한 조직이다. 이곳에서 국가 상황이 혼란스럽다며 ‘비상사태’ 결정을 내리면 그 시간부로 모든 정권은 해체되고, 대통령에서 군 총사령관으로 최고권력이 넘어간다. 지난해 선거에서 수치 여사가 이끄는 NLD가 압승했지만 군부는 정권을 넘길 마음이 애초부터 없었던 것이다.”
-가족, 친구들에게 전해 들은 현지 분위기는 어떤가.
“연락이 쉽지 않다. 통화도 안 된다. 군부가 운영하는 방송국을 빼곤 모든 게 멈춰 있다. 올스톱이다. 다만 미얀마 쪽에서 올라오는 SNS 글들을 보면 인터넷은 아직 쓸 수 있는 것 같다. 활동가들끼리는 인터넷이 끊길 경우를 대비해 연락 방법을 공유한 상황이라 다행이다. 특히 알고 지내던 정치인들은 이미 구속된 상태다. 자택에 구금된 활동가들과는 SNS로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그들의 호소는 미얀마 내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국제사회가 나서 달라는 것이다.”
-군부는 부정 선거를 주장한다.
“군부는 지난해 11월 총선 당시 유권자명부에 사람들의 이름이 겹쳐 있다고 얘기한다. 860만명가량 실제와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다시 선거관리위원회를 결성하자고 한다. 지금의 선관위는 믿을 수 없기 때문에 군부가 임명하는 이들로 다시 만들자는 주장이다. 하지만 말이 안 되는 얘기다. 만약 정말 부정선거가 있었다고 하면 법에 정해진 절차대로 조사를 거쳐 진짜인지, 허위 주장인지 보면 된다. 부정선거는 쿠데타를 위해 내세운 명목이고 다른 이유가 있다.”
-다른 이유가 있다?
“2015년 총선에서 NLD의 압승으로 지루한 군부독재가 끝났다. 권력이 민간정부로 이양되자 군인들은 설 자리를 잃기 시작했다. 미얀마 상·하원을 보면 전체 664석 가운데 25%가 군 인사들에게 자동 할당돼 있다. 군부가 2008년 신헌법을 제정할 때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넣은 것이다. 군부는 선거에 참여하지 않아도 이렇게 의석을 가져가지만, 지난 5년간 국회에서 힘을 쓰지 못했다.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난해 총선에서는 군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도시에서마저 NLD가 승리했다. 2015년 총선 당시에는 NLD가 졌던 곳이다. 군인들조차 수치 여사가 이끄는 정부를 지지했다는 뜻이다. 그 정도로 NLD가 더욱더 많은 미얀마 국민의 지지를 받았다. 결국 군부독재자들은 자기들의 앞날이 더욱 깜깜했을 것이다. 군부 입장에서 택할 수 있는 건 쿠데타밖에 없었을 테다.”
-아무리 헌법상 근거가 있더라도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버젓이 쿠데타가 일어나는 상황이 믿기지 않는다고들 한다.
“군부는 헌법을 ‘개법’처럼 생각한다. 애초 헌법을 군부 마음대로 자기네 뜻을 따르는 사람들과 만들었다. 이 안에 말도 안 되는 내용이 들어있기 때문에 수치 여사도 개헌을 하기 위해 5년간 노력해 왔던 것이다(미얀마 헌법 개정은 국회의원 75% 이상이 동의해야 한다. 상·하원 의석의 25%를 자동 할당받은 군부 동의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게다가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은 지난달에는 특정 상황에서 헌법이 폐지될 수도 있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그들에게 헌법은 필요할 때는 쓰고, 필요 없으면 없애 버릴 수 있는 그 정도 존재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군부는 이번에도 헌법상 조항에 따라 쿠데타를 한다며 헌법을 존중하는 것처럼 얘기했는데 실제로는 본인들이 정권을 잡기 위한 수단으로 여길 뿐이다.”
-세계가 미얀마 군부를 규탄하고 있다. 한국에서 어떤 행동을 해나갈 예정인가.
“군부를 용납할 수 없다. 힘껏 싸울 것이다. 한국에는 2만5000명의 미얀마인이 있다. 이들과 함께 방법을 논의 중이다. 문제는 당장 거리로 뛰쳐나가 집회라도 열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는 점이다. 한국인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요청하면 미얀마인들은 금방 모인다. 그런데 우리가 거리에 뛰쳐나온다 해도 한국 국민들이 과연 이해해줄 것인가. 또 코로나 때문에 다들 불안한 상황에서 또 다른 우려를 심어주고 싶지 않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복잡한 상황이지만, 현재로선 차례로 1인 시위라도 열자는 얘기를 하고 있다.”
-한국 등 세계에 전하고 싶은 말은.
“민주주의는 100% 국민의 힘이 아니면 언제든 뺏길 수 있다는 사실을 느꼈다. 그간 아마도 수치 여사한테나 한국에서 민주화운동을 했던 저희에게나 답답한 부분이 있었을 것이다. 그 점을 모르는 게 아니다. 왜 수치 여사가 피 묻는 군부의 손을 잡았겠나. 민주화라는 국가의 미래를 위해 일정 기간 군부와 함께 갈 수밖에 없었고, 이들의 권력 비율을 점점 줄여가는 식의 방향을 잡았던 것이다. 국민들 또한 결국 군부가 나라를 지키는 본연의 일에 충실한 채 정치에 간섭하지 못하게 천천히 달래면서 가겠다는 수치 여사의 마음을 충분히 지지하면서 참아왔다. 하지만 이번 군부 쿠데타를 통해 정부는 군부라는 ‘미친개’와 함께 걸어왔다는 결론이 나왔다. 언제든 물 수 있고, 제정신이 아니고, 자신들의 욕심밖에 모르고, 국민의 희망은 저버리는 모습을 모두가 봤다. 우리는 다시 싸워나갈 것이다. 전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이 예전처럼 미얀마에 많은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
박장군 기자 genera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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