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진의 '후궁 발언' 사과, 형사법적으로 의미없는 까닭

김광민 2021. 2. 1.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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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훼손은 고의성 여부가 중요하지만, 모욕은 고의성 여부가 큰 쟁점 아냐

[김광민 기자]

 국민의힘 조수진 의원. 사진은 지난 1월 27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에서 ‘허위재산신고 의혹’에 대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벌금 80만원 형을 선고 받고 법원을 빠져 나가고 있는 모습.
ⓒ 이희훈
 
고민정 민주당 의원(서울 광진을)이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비례대표)를 고소했다고 한다. 혐의는 '모욕'이다. 조 의원이 고 의원을 겨냥해 한 '후궁 발언'이 문제였다. 조 의원은 '지난 4월 총선 당시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 등 정권 차원의 지원을 받았다'는 주장을 펴면서 "조선시대 후궁이 왕자를 낳았어도 이런 대우는 받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모욕과 명예훼손의 차이

모욕은 명예훼손과 함께 대표적인 "사람의 가치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의미하는 외부적 명예를 보호법익으로 하는 범죄"다. 다만 모욕이 명예훼손과 구분되는 지점은 '사실적시' 여부다. 명예훼손은 사실이든 허위이든 사실을 적시해 상대의 명예를 훼손해야 한다. 반면 모욕은 사실적시가 필요 없다.

이에 더해 법원은 명예훼손을 판단할 때 '고의성'을 중요하게 고려한다. 명예훼손의 고의가 있었냐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모욕에 대해선 고의성을 중시하지 않는다. 이는 모욕과 명예훼손의 중요한 특성에서 기인한다. 모욕과 명예훼손 모두 사람의 사회적 지위를 훼손하는 범죄지만 그 방식에서 모욕은 '경멸'적 언행, 명예훼손은 '사실적시'를 통해 이뤄진다.

욕설은 경멸적 언행의 대표적 사례다. 다른 사람에게 욕설을 할 때, 그 행동 자체에 이미 상대방을 경멸하겠다는 의도가 있게 된다. 그렇기에 모욕에는 고의성이 요구되지 않는다. 반면 어떠한 사실을 말했는데 그것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게 됐다면, 사실적시 행위 자체로 고의성이 입증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별도로 고의성에 대한 판단이 있어야 한다.

쟁점은 
  
 더불어민주당 고민정 의원. 사진은 2020년 10월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실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부 국정감사에서 성윤모 산자부 장관에게 질의하고 있는 모습.
ⓒ 공동취재사진
 
조수진 의원의 '후궁 발언' 중 문제되는 부분은 크게 '정권 차원의 지원'과 '후궁' 두 가지로 보인다. '정권 차원의 지원'은 '사실적시'에 해당한다. 정권 차원의 지원이 있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사실적시, 그렇지 않다면 허위사실적시가 된다. 다만 국회의원 후보가 정권 차원의 지원을 받았다는 주장이 고민정 의원의 명예를 훼손시킬 사안인지에 대해선 고려해 봐야 할 부분이 많겠지만 명예훼손의 결론으로 이어지기는 어려울 것이라 판단된다. 고 의원이 정권의 지지를 받는다는 것이 그의 명예를 높여줄 수는 있어도 훼손시키기는 어려워 보이기 때문이다.

반면 '왕자를 낳은 후궁'이라는 표현은 사실적시가 아니다. 문재인 정부가 왕조도 아니며 조 의원의 발언을 듣고 고 의원을 후궁이라 생각할 사람도 없다. 그렇기에 조 의원의 '후궁' 발언이 명예훼손에 해당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그렇지만 '후궁'이 고 의원에 대한 경멸적 표현이라고 한다면 모욕에는 해당할 수 있다. 고 의원은 이러한 법리 검토를 통해 조 의원을 명예훼손이 아닌 모욕으로 고소한 것으로 보인다.

고민정 의원이 고소하자 조수진 의원은 "저의 비판 글 가운데 비유적 표현이 본래 취지와 달리 모욕이나 여성 비하로 논란이 되고, 정치적 논쟁의 대상이 됐다는 사실이 안타깝다"라면서 고 의원에게 "미안하다"라고 사과했다. 하지만 조 의원의 사과는 정치적 행위로서는 어떨지 몰라도 형사법적으로는 큰 의미를 가지기 어렵다.

조 의원이 언급한 "본래 취지와는 달리"라는 표현은 모욕에 고의가 없었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모욕죄에는 고의성이 중요하지 않다. 경멸적 표현 자체에 이미 고의성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결과는?

그렇다고 해서 조수진 의원의 모욕 혐의가 인정될 것이라는 뜻은 아니다. 고민정 의원을 '후궁' 아니, '왕자를 낳은 후궁'에 빗댄 것이 경멸적 표현에 해당돼야 하기 때문이다. '왕자를 낳은 후궁'이라는 표현은 왕조시대 후궁을 '왕자의 출산'만을 위한 존재로 폄하한 것이다. 그리고 이를 민주공화제인 현재에 비유한 것은 그 자체로 여성에 대한 비하다. 하지만 '왕자를 낳은 후궁'이라는 발언 자체가 고민정 의원 개인에 대한 모욕에 해당할지는 좀 더 정밀하게 분석해 볼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대한민국 여성 전체를 대표하여 모욕 혐의로 고소할 수도 없다. 피해자를 대한민국 여성 전체로 넓힐 경우, 개개인에 대한 모욕의 정도는 무한대로 희석돼 거의 0에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모욕죄는 유럽의 중세 기사문화에서 시작된 형벌이다. 당시 기사들은 명예를 매우 중하게 여겼고, 자신의 명예가 훼손됐다고 생각하면 목숨을 걸고 결투를 벌였다. 하지만 법치국가에서 '사적복수'는 허용되지 않는다. 누군가 자신의 명예를 훼손시켰다면 스스로 응징하는 것이 아닌 수사기관을 통해 응징해야 한다.

그래서 고민정 의원은 자신이 모욕을 당했다고 생각했고 수사기관에 조수진 의원을 응징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수사기관이 고민정 의원이 모욕당한 것이라 판단한다면 조수진 의원을 기소할 것이고, 최종 판단은 법원이 할 것이다. 이젠 수사기관과 법원의 판단을 기다릴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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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김광민씨는 변호사이며 부천시청소년법률지원센터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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