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우리도 독자예요?"라고 묻던 소년원 아이들과 함께 한 1년

김현길 2021. 2. 1.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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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교사인 서현숙씨는 2019년 일주일에 두 시간씩 소년원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었다. 서씨는 그 1년에 대해 "소년의 성장기록이라 부르기는 어렵지만 나의 성장 기록이라 부를 만은 했다"라고 말했다. 최현규 기자

“선생님 저희도 독자예요? 독자는 특별한 사람들 같은데….”

알퐁스 도데의 ‘별’을 읽던 찬현이(가명)의 갑작스런 질문에 서현숙(49)씨는 가슴이 먹먹해진다. 독자를 ‘특별한 사람들’로 여길 정도로, 아이와 세상의 거리가 멀어보였기 때문이다. 독자를 특별한 사람들로 여기는 아이와 서씨는 소년원에서 처음 만났다. 서씨는 2019년 찬현이를 비롯한 소년원 아이들과 함께 매주 금요일 두 시간씩 책을 읽었다. 그 1년의 독서 경험을 묶어 최근 책 ‘소년을 읽다’(사계절)를 펴냈다. “인생의 절반을 국어교사로 살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한 서씨를 1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에서 만났다.

서씨가 처음 마주한 소년원은 학교와 비슷했지만, 특유의 냉기가 있었다. 무거운 철창 소리를 반복해 들은 후에야 수업을 할 수 있었다. 처음 제안 받았을 때 ‘수업이 가능하겠어?’란 생각이 들었지만 아이들이 학업을 이어갈 수 있다는 취지에 끌렸다. 그간의 독서 교육 경험을 소년원에 적용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후 돌이켜봤을 때 서씨의 관심은 어느새 책에서 아이들에게로 옮겨가 있었다. “책보다 거기서 만난 아이들에게로 초점이 자연스럽게 흐르게 된 거 같아요. 책 자체가 하나의 목적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다리처럼 이어주는 매개체의 역할을 책이 한 거구나. 궁극적 목적은 사람이구나.”

아이들이 제대로 읽지 않고, 시늉만 했던 첫 수업의 실패 이후 서씨는 소리 내 같이 읽어나간다. 함께 페이지를 넘기면서 아이들은 차츰 ‘이야기’가 주는 재미에 빠져든다. 등장인물에 이입하고, 수업에 참여하지 않은 다른 아이들까지 책을 돌려가며 읽기도 한다. 택배 일을 소재로 한 만화 ‘까대기’를 읽을 때는 다 읽기 아까워 더 읽지 않고 책을 덮는 모습도 보인다. 책을 쓴 저자와의 만남을 통해 책을 읽는 또 다른 재미도 알게 된다. 서씨는 “독서 경험이 적고 책 읽는 힘이 약했던 아이들도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에는 예외가 없구나 하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책은 아이들에게 재미를 줬지만 아이들 “마음의 맨살”을 드러내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아이들이 책을 읽고 고른 문장들엔 그들의 마음과 처지가 묻어난다. “자동차는 고장 나면 고칠 수 있잖아. 나도 내 인생을 고쳐보고 싶어.” “15점짜리 부모 밑에서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아이도 있어.” “부모는 되는 것이 아니라 되어 가는 것이다.” 서씨는 책에서 이와 관련해 “아이의 마음 한복판에 별안간 서게 된 듯하다”며 “몇 글자 안 되는 문장에 가슴이 뻐근하다”고 적었다.

아이들과의 시간을 담은 책이지만 아이들에게 치우치지만은 않는다. 죄를 지어 누군가를 괴롭히고, 고통을 준 이들이라는 것을 서씨는 잊지 않는다. “적당한 정도의 친절함과 세심함, 딱 그 정도”라는 스스로의 평가처럼 아이들을 위해 크게 희생했다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이 “타인에게 고통을 가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면서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삶의 맥락을 지닌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서씨는 “일주일에 한 번 가서 책을 읽고 마음을 나누는데 아이들을 쉽게 평가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며 “글로 옮길 때는 내가 느낀 것을 충실하게 보여주자는 생각을 여러 번 했었다”고 말했다.

이는 책을 쓰게 된 계기와도 연결된다. 서씨는 ‘소년원 생활관 환경을 개선하겠다’는 법무부 계획에 관한 기사에 달린 부정적인 댓글을 본 후 아이들 이야기를 들려줘야겠다고 용기를 냈다고 한다. 그러면서 소년들을 영원히 가둘 수 없고, 구성원으로 함께 살아가야 하는 상황에선 가두는 것 ‘너머’를 생각해봐야 하는 것 아닐까라는 데까지 생각이 이어졌다. 서씨가 상상하는 것은 아이들이 죗값을 치르면서 ‘좋은 삶’을 경험하도록 하는 것이다. “책을 통해 아이들은 인물들의 고민과 좌절을 간접 체험하잖아요. 그런 경험이 반복해서 쌓이면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에게 물음표를 던지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시련이 다가왔을 때 어떻게 살아야 할지, 참고 견디는 게 인생에서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책을 읽으면서 그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보는 시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씨는 평소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자신에 대해 두 가지만 기억해줬으면 한다고 이야기한다. ‘여름에 아이스크림 사준 선생님’ ‘재미있는 책 많이 권해준 선생님’ 이는 소년원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지난해 코로나19로 아이들과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수업을 끝냈다. 마지막 수업 시간엔 아이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었을까. “가장 해주고 싶었던 이야기는 너의 몸과 마음을 잘 돌보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것이에요. 자기 몸과 마음을 잘 돌본다는 건 자기를 귀하게 여긴다는 것이고, 자기를 귀하게 여기는 사람은 적어도 함부로 살지 않을 거 같습니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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