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최씨일가 가옥 불태우는 등 만행
[김삼웅 기자]
▲ 봉오동반일전적지 기념비(2004. 6. 1. 제3차 항일유적답사 때 촬영). |
ⓒ 박도 |
일제는 이참에 대규모 군대를 파견하여 봉오동 패전의 설욕을 하고 한국독립군의 온상이 된 교민사회를 뿌리 뽑고자 들었다. 종국적으로는 만주를 점령하려는 야심이다. 일제는 이미 1920년 8월 「간도지방불령선인초토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훈춘사건을 조작하여 출병의 명분으로 삼았다.
일본정부와 일본군은 중국 중앙정부의 거부로 합법적인 간도출병이 불가능하게 되자, 만주군벌 장작림의 묵인하에 제국주의자들의 본색을 드러내어 중국정부의 거부에 관계없이 일본군을 간도에 출병시켜서 군사작전을 단행할 것을 10월 14일 일방적으로 선언하였다. 이것은 중국의 주권을 완전히 무시하고 자행된 일본군의 간도침입이었다.
▲ 연병장과 본부가 있던 상촌 연병장과 본부가 있던 상촌 |
ⓒ 최운산장군기념사업회 |
일제가 주권국가인 중국에 대규모 군대를 투입한 것은 명분이야 무엇이든 엄연한 침략행위였다. 장작림은 한때 반일의 기치를 내걸었으나 차츰 친일화되었다가 1928년 일제에 의해 그가 탄 기차가 폭파되면서 사망하였다.
일제의 만주 독립군과 그 근거지에 대한 초멸 작전은 봉오동전투 이전부터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다가 봉오동 참패 후 대규모 병력을 동원하여 본격적인 초멸작전에 나섰다.
1920년 5월부터는 일제의 조선 총독부 경찰국장이 몇 차례나 서울과 봉천을 왕래하며 직접 동삼성 순열사 장작림(張作霖)에게 중일합동(中日合同) 수색이란 명목 하에 일 군경에 의한 독립군 제거를 시도하였다. 1920년 5월 상순에서 그 해 8월까지 사이의 3회에 걸친 봉천 회담(奉天會談)이란 것은 그 같은 계략 하에서 개최되었던 것이다.
▲ 봉오동 초모정자산, 이 산 아래 봉오동 상동, 중동 하동 마을이 있었다(2004. 6. 1. 제3차 항일유적지답사 때 촬영). |
ⓒ 박도 |
일제가 가장 먼저 정예부대를 투입한 지역은 자신들의 수모가 깃든 봉오동이었다. 특히 독립군사령부가 자리 잡은 최운산 형제들의 가옥이다. 가족은 물론 대다수 주민들이 피신한 터라 일본군은 애먼 가옥을 불태웠다.
간도로 출병한 일본군은 먼저 독립군 본부가 있던 봉오동과 서대파 방향으로 쳐들어왔다. 하지만 우리 독립군은 이미 봉오동을 떠난 뒤였다. 최운산 장군의 가족과 친지 중 남자는 모두 독립군이었다. 그들은 이미 마을을 떠나고 없었고, 독립군 가족인 마을 사람들 또한 일본군을 피해 산으로 들어가 숨었다. 마을에는 고령의 청주 한 씨 할머니를 비롯한 몇 사람과 중국인 가족들만 남아 있었다.
독립군을 발견하지 못한 일본군은 분통을 터뜨리며 봉오동 본부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최운산 장군의 저택은 전소되었고, 최진동ㆍ최운산 장군의 가족들은 모두 현상금이 걸렸다. 여자와 아이들까지 대인 500원, 소인 300원의 거금이었다. 그러나 조선사람, 중국사람 할 것 없이 모두 최운산 장군 가족을 아끼고 존중했다.
일제의 협박과 유혹에 넘어가서 가족들을 위험에 처하게 하거나 고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무사히 살아남은 김성녀 여사는 가족들과 함께 불타버린 봉오동을 떠나 월정사로 피신했다. (주석 7)
주석
5> 신용하, 앞의 책, 211쪽.
6> 윤병석, 『의병과 독립군』, 184쪽, 세종대왕기념사업회, 2000.
7> 최성주, 앞의 책, 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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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무장독립투사 최운산 장군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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