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 이원종을 보낸 김덕룡의 추모시 "혈죽이 그립다"
“서슬 퍼런 독재의 바람에는 그리도 독하게 맞서던 사람이, 세월의 바람엔 쉽게 몸을 던진 게요”
김덕룡(80) 김영삼 민주센터 이사장이 31일 숙환으로 별세한 이원종(82) 전 청와대 정무수석을 기리며 쓴 추모 시의 한 대목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YS)의 최측근으로 동고동락한 두 사람을 세간에선 ‘영원한 동지’라고 부르기도 한다.
김 전 대통령의 곁을 24년간 지킨 ‘YS의 복심’ 이 전 수석을 처음 김 전 대통령에게 이끈 것이 김 이사장이었다. 이 전 수석은 서울 경복고 2년 후배인 김 이사장의 권유로 1974년 당시 신민당 총재 였던 김 전 대통령의 공보비서로 발탁돼 상도동계와 본격적인 연을 맺었다. 상도동계는 김 전 대통령을 따르던 정치 계파를 가리키는 말로, 김 전 대통령 자택이 서울 상도동인 데서 유래한 말이다.
두 사람은 김 전 대통령과 함께 1970년대 유신 체제와 맞섰고, 1987년 전두환 대통령이 직선제 개헌을 거부하며 ‘4.13 호헌 조치’를 내렸을 땐 호헌 철폐 구호를 함께 외쳤다.
하지만 이들의 정치 경로는 사뭇 달랐다. 김 전 대통령을 가까이서 보좌하다가 문민정부가 끝나자 정계를 떠난 이 전 수석과 달리, 김 이사장은 5선 국회의원을 지내며 현실 정치에 쭉 몸을 담았다. 그랬던 두 사람은 김 전 대통령이 2015년 11월 22일 서거하자 함께 빈소를 지켰다. 김 이사장은 당시를 회고하며 “차가운 눈발을 맞으며 함께 배웅했던 거산(YS)의 곁이 그리도 그리웠단 말이냐”고 추모 시에 적었다.
김 이사장은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이 전 수석은 ‘혈죽(血竹) 선생’이라 불린 기개 있는 정치인이자 영원한 동지였다”며 “고인이 생전에 남긴 족적을 잊지 않겠다”고 전했다. 혈죽은 YS를 비판하면 핏대를 세우곤 했던 이 전 수석에게 기자들이 붙인 별명이다.
다음은 김 이사장이 1일 중앙일보에 보내온 추모시 전문이다.
■
「 故이원종 수석 조시(弔詩)
이원종 수석 아니
원종 선배
이렇게 훌훌 털고
먼저 일어서도 되는 거요
서슬 퍼런 독재의 바람에는
그리도 독하게 맞서던 사람이
별것도 아닌 세월의 강물엔
그냥 쉽게 몸 던지는 게요
유신의 벽에 함께 부딪혀가자는 제안
서슴없이 덥석 잡아주던 온기 아직이고
아직은 병풍 노릇 기대는 이들 적지 않건만
뭐가 그리 바쁘시오
군사독재에 부서져라 온 몸을 던지던
혈죽의 기개는 이제 어디서 찾으란 것이오
원종 선배
그래도 돌이켜보면
우린 참 그럴 듯했었지요.
민주주의에의 목마름을
멋진 대장 앞세우고
서로의 땀과 눈물로 나누며
싸늘한 거리에서 어깨 걸고 내달리던
그 열정과 기개도 대견했지요
건국에 버금가는 문민정부를 이 땅에 세워
이 땅에 다시는 정치적 밤이 없게 하고
이 나라 민주화의 큰길에는 당신이 늘 함께했었지요.
치열하게 일하면서도 넘치지 않고
파격적인 일에도 순리와 함께한 자세
야속했던 기자들에게조차
핏대 세우고도 혈죽으로 존경받던
그 기품 그리워집니다
원종 선배, 그만하면 잘 살았소,
그렇지만, 그렇지만
5년 전 차가운 눈발을 맞으며 함께 배웅했던
거산의 곁이 그렇게도 그리웠단 말입니까
그 길고 험난했던 길 인도한 나쁜 동생
속 시원히 원망 한번 나무람도 없이
이렇게 가십니까
사랑했다 존경했다 소리는
그곳에서 어쩌다 마주치면 합시다.
이제 모든 것 내려놓고
훨훨
안녕히 안녕히 가시오.
2021년 2월 1일 김덕룡
」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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