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부 '北원전 시나리오' 셋..文정부 기조 뒤집는 자가당착
산업통상자원부는 북한에 원전을 건설하는 방안에 대해 “아이디어 차원”이라고 해명했지만 감사원 감사를 앞두고 삭제한 문건엔 원전 건설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까지 거론된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부 공무원들이 삭제한 17개의 북한 원전 관련 문건 중 ‘180514_북한지역 원전건설 추진 방안’에는 ▲경수로 부지 활용 ▲DMZ 활용 ▲신한울 3·4호기를 활용한 송전(送電) 등 3가지 구상이 담겨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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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중단된 '신포 경수로' 부지 재활용
산업부의 첫 번째 아이디어는 2001~2006년 한국·미국·일본 등이 참여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경수로 2기를 지으려다 중단한 북한 함경남도 신포시 금호지구에 원전을 짓는 방안이었다. 당시 KEDO는 북한이 영변의 핵연료를 해체하는 대가로 경수로 지원을 약속했고 1995년 12월 북한과 경수로 공급 협정을 체결했다. 하지만 2001년부터 시작된 건설 공사는 6년만인 2006년 전격 중단됐다.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감시를 무시하고 핵 물질인 고농축우라늄(HEU) 개발을 시도하다 적발된 데 따른 조치였다.
산업부에서 원전 문건을 작성한 2018년 5월 당시는 1차 남북 정상회담이 진행된 직후였고, 5월 22일 한·미 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이었다. 한반도 평화에 대한 기대가 커짐에 따라 북한 비핵화 이후의 상황을 감안해 아이디어 차원에서 원전 건설을 구상했다는 게 산업부의 공식 입장이다.
하지만 당시 비핵화와 관련한 구체적 합의가 도출되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에 원전을 지어준다는 구상은 그 자체만으로도 국제 비확산 체제 측면에서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아이디어였다. 북한이 수차례에 걸쳐 ‘핵무력 완성’을 목표로 내건 상황에서 자칫 원전 건설이 핵연료를 제공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어서다. 무엇보다 원전 건설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는 물론 원자력 발전에 사용될 수 있는 물질이나 부품의 대북 반입은 금지하는 미국의 독자 제재에도 위배될 소지가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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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에 북한 원전 건설
산업부가 원전 건설 부지로 꼽은 두 번째 장소는 DMZ(비무장지대)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공약을 통해 남북이 공동으로 ‘DMZ세계생태평화공원’을 조성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2019년 9월엔 유엔 총회 연설에서 DMZ를 ‘국제평화지대’로 만들어가자는 제안도 했다.
문제는 DMZ의 환경적 가치를 감안했을 때 원전 건설을 추진하는 것이 사실상 비현실적 구상에 가깝다는 점이다. 실제 2019년 12월 경기연구원이 남북교류 활성화와 관련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DMZ 개발·활용시 우선시해야 할 핵심 가치로 환경(82%)을 꼽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문 대통령 역시 2019년 DMZ 관광 활성화와 관련 “미래 세대가 깨끗하고 아름다운 환경을 누리도록 평화관광·환경생태관광을 적극 지원하겠다”며 DMZ 보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DMZ 곳곳에 매설된 지뢰도 문제다. 2016년 합동참모본부 발표 자료에 따르면 DMZ 전역에 매설된 지뢰는 총 52만발에 달한다. 국방부는 2008년부터 10여년간 56억원을 투입해 지뢰 제거 작업을 벌였으나 총 6만2000발을 제거하는 데 그쳤다. 원전엔 물이 대량으로 필요한데 이를 어디서 확보할지에 대한 현실성도 의문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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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 중단된 신한울 3·4호 활용
산업부의 마지막 구상인 신한울 3·4호기를 활용한 송전은 노무현 정부 시절이던 2005년 7월 정동영 당시 통일부 장관이 제안한 ‘대북 송전’ 아이디어를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정 장관은 “북한이 핵 폐기에 합의하면 경수로사업을 종료하는 대신 남한이 단독으로 북한에 연간 200만kW의 전기를 직접 송전하겠다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제안했다”고 밝혔다.
대북 송전을 위해선 우선 신한울 3·4호기의 건설을 재개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10월 24일 정부가 에너지전환 로드맵을 발표하며 ‘신규 원전 건설 전면 백지화’를 선언했다. 이에 따라 신한울3·4호기 역시 건설이 중단된 상태다. 남북 협력의 일환으로 신한울 3·4호기를 통한 대북 송전을 문건에 언급했다고는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핵심 정책 기조인 탈(脫)원전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구상인 셈이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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