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 좀 읽어라" '동조 압력' 일본사회서의 혐한

김광욱 2021. 2. 1. 11:5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혐한의 세계 ⑩ 한국어로는 '눈치 챙겨'?.. '공기를 읽다'는 일본어에 숨겨진 속내

[김광욱 기자]

 
 일본의 독특한 현상인 '동조압력'에 대해 대화 형식으로 꾸며진 서적 (2020년8월 출판)
ⓒ 김광욱
 
일본 사회를 분석하는 개념 중에 동조화(同調化) 또는 동조압력(同調壓力)이라는 용어가 있다.

동조압력이란 소수의 의견이 주류가 되어, 다른 견해를 갖고 있는 사람에 대해 암묵적으로 같은 의견에 따르도록 종용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소수의견을 가진 사람에게 암묵 중에 다수 의견에 맞추는 것을 강제하는 것을 가리킨다. 한국이나 다른 나라에서도 종종 보이는 현상이지만, 일본 사회와는 그 정도가 심하다는 차이로 비교된다.

학교나 회사와 같은 조직사회에서 상사나 선배에게서 나온 말은 어떤 이유나 토를 달지 않고 순순하게 그대로 따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대한민국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일본 사회에서는 이를 참으면서 조용하게 처리해 간다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는 차이점이 있다.

일본에서는 다수가 선택한 것과 다른 것을 취하면서 이른바 '튀는 행동'을 할 경우, 이를 곱게 보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일반적으로 선진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소신 있는 소수의 의견은 여러 채널을 통해 외부로도 알려지고, 때로는 다투면서 시간이 지나간 다음 숙고돼 새롭게 제도에 반영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차이가 있다. 일본에서는, 이른바 소수자에 대한 배려가 막혀있다고도 할 수 있겠다.

"공기 좀 읽으라"는 일본어의 뜻 

일본어로 '공기를 읽는다'는 말은 이럴 때 개인이 어떠한 선택을 해야 할지를 알려주는 기준이 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의 기원은 전시상황과 관련이 깊다. 전시라는 비상사태에서는 모든 국민이 한목소리가 되어 위기상황을 극복해 나가야 하는데, 이때 다른 목소리를 내면 위기를 벗어나기가 힘들다는 인식이다.

네마와시(根回し)는 숨 막히는 동조압력사회의 무언의 압력에서 나타나는 부작용을 줄이려는 편법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원래 정원 가꾸기에 쓰이는 용어인데, 나무를 다른 곳에 옮겨심기 전에 새로운 땅에 적응할 수 있도록 뿌리를 다듬는 작업을 의미한다. 결정하기 전에 분위기를 알아차리라는 기회를 주고, 설득을 통해 반발을 무마하려는 차원으로 지금도 조직사회에서 쓰이고 있다.

또한 일본어로 세상(世間)이란 "사람이 살아가는 장소"라는 말이지만, "사람들과 어울리는 사회"라는 뜻으로도 사용된다. 이러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몇 가지 특징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배타성이라 할 수 있다. 그 사회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서는 사회에서 추구하는 가치관과 규범에 익숙할 때까지 외부로부터 참여한 자에 대해 긴장 관계를 가지면서, 배격하고, 왕따를 통해 결집력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다양성을 배격하고 모두 한목소리를 내자는 것인데, 이는 전시기간, 특히 빠른 기간 내에 위기상황에서 벗어나야 할 때는 효과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평시로 돌아온 후에도 타성에 젖어 이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오히려 이러한 습관이 족쇄가 되어 참신한 발상을 방해하고 도약을 저지하는 수가 있다.

일본에 스가 정권이 새롭게 들어서면서 디지털청이 출발했다. 세계에서도 주목받는 첨단 전자제품을 생산해온 일본이지만, 되레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정보화에는 뒤처진 것에 대한 반성이 행정부 조직으로 탄생하게 되었다. 디지털청에 대한 관심은, 민간인 대상으로 한 '33명 모집'에 40배가 넘는 응모자가 지원하는 등 큰 주목을 끌었다.

디지털청이 구상된 배경에는 '동조압력'이란 습관이 작용하고 있었다. 행정부에서 도장, 서류와 팩스를 통한 전달체계는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관행이었기에 이를 고치려고 하는 것은 거의 모험에 가까웠다. 결국 위로부터의 동의 없이는 불가능한 제도개선이었다. 일본 사회의 고령화도 한몫하고 있었다. 컴퓨터를 이용한 새로운 전달체계를 만들려고 해도 고령자들에게는 어려운 과제였다.

혐한이 방치되는 것도 '외부세계에 대한 통제와 단절'이라는 일종의 습관에서 시작했다. 여러 가지 경제지표, 생활통계 등이 나빠지면서, 저소득자들의 삶이 피폐해지는 가운데, 혐한이라는 동조압력을 통해 응집력을 키워야 한다는 위기감이 일상생활에 찾아온 것이다.

일본에서는 2014년에 헤이트스피치와 배외주의에 가담하지 않겠다는 출판관계자의 자율적인 자정 모임이 결성되었지만, 아직 서점마다 혐한서 코너는 버젓이 설치되어 개선되지 않고 있다. 2016년에는 헤이트스피치 해소법이 마련되어, 동해소법 2조에는 외국인(본방외출신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적 언동을 제한하는 규정이 제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거리에서 자주 보이는 혐한 시위행진에서 볼 수 있듯 이동 해소법이 엄격하게 적용받고 있느냐에는 의문이 간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