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인 100만명 탈출?..英 이민 문호 열자 中 "후안무치" 발끈

신경진 2021. 2. 1.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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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어제부터 홍콩인 대상 장기 비자
체류 5년으로 늘리고 시민권 획득 기회
"당국 보복 우려에 앱출시 기다려..
청년 29%, 32만~100만 명 이민 관측"
홍콩특별행정구 여권(왼쪽)과 영국해외시민(BNO) 여권(오른쪽). [AP=연합뉴스]

“침략의 역사와 식민 통치를 미화하는 후안무치한 강도의 논리다.”

중국 국무원 홍콩·마카오판공실이 지난달 31일 영국에 막말에 가까운 비난을 쏟아냈다. 영국 정부가 홍콩인들이 영국 시민권을 받을 기회를 확대하자 나온 항의 성명에서다. 영국은 지난해 중국이 홍콩 국가보안법을 시행하자 홍콩인의 자유가 침해받았다며 이민 확대 정책을 예고했다.

영국 정부는 31일 오후 5시(한국시간 6시)부터 홍콩의 영국 해외시민(British National Overseas·BNO) 여권 소지자와 가족이 장기 체류 비자를 신청할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를 개설하고 접수를 시작했다. 홍콩의 BNO 소지자는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1997년 이전에 태어난 시민으로, 홍콩 인구 750만 명 중 72%인 540만 명으로 추산된다. 사이트 개설 직후 프리티 파텔 영국 내무부 장관은 트위터를 통해 “영국이 홍콩인에게 약속한 역사적인 관계를 빛낸 오늘은 자랑스러운 하루”라며 새로운 BNO 정책을 알렸다.

프리티 파텔 영국 내무부 장관이 지난달 31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영국이 홍콩인에게 약속한 역사적인 관계를 빛낸 오늘은 자랑스러운 하루”라며 새로운 BNO 정책을 자랑했다. [트위터 캡처]
지난달 31일 중국 국무원 홍콩·마카오판공실이 홈페이지에 게재한 영국 비난 성명. “침략의 역사와 식민 통치를 공연히 미화하는 후안무치한 강도의 논리”라며 강하게 영국을 비난했다.

홍콩 시민은 일단 관망 중이다. 홍콩 명보는 1일 인터넷 접수에 신청자가 한꺼번에 몰리는 병목 현상은 없었다고 전했다. 원스톱 스마트폰 앱이 출시되는 이달 23일 이전까지는 홍콩 내 영국 비자센터를 방문해 지문을 남겨야 하는 것도 영향을 줬다. 홍콩 투자은행가 샘 라우는 “3월에 홍콩을 떠날 계획이자만 모바일 앱이 출시되면 신청할 계획”이라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말했다. 또 다른 홍콩 시민은 “비자센터 바깥에 감시 카메라가 없다고 확신할 수 없다”며 당국의 보복을 두려워했다.

BNO 비자 신청을 위해서는 영국 해외시민(BNO) 소지자 및 가족으로 최소 6개월간 영국에서 생활할 수 있는 경제력을 갖추고, 심각한 형사 범죄 기록이 없어야 한다. BNO 비자 신청을 시연한 명보 기자에 따르면 전쟁·반인륜·인종학살 관련 범죄에 연루됐거나 민주주의와 법치 반대 여부를 묻는 말에 통과해야 신청이 접수된다고 전했다. 신청자에게 묻는 100여개 문항에는 테러 및 극단주의 지지 여부와 영국의 국가안보와 이익에 위해를 가하는 일에 종사했는지도 포함됐다. 신청비 2656 홍콩달러(38만3000원)와 3만3000 홍콩달러(476만원)의 보건부가비를 납부해야 접수가 완료된다.

중국은 즉각 반발했다. 중롄판(中聯辦·중앙인민정부 홍콩 주재 연락판공실)과 홍콩·마카오판공실은 각각 성명을 내고 영국을 규탄했다. 성명은 “중국과 영국은 홍콩 반환 이전에 영국 해외시민(BNO) 여권 문제에 대한 비망록을 교환하고, 영국은 BNO를 소지한 홍콩인에게 영국 거주권을 부여하지 않기로 분명히 약속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난해부터 영국이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과 시행을 극력 저지하며 BNO의 의미를 왜곡했다”면서 “홍콩인을 ‘2등 국민’으로 만들려는 중국 주권 침범 행위”라고 주장했다.

중국은 31일부터 BNO의 신분증명 효력을 중단시키면서 “진일보한 보복 조처를 할 권리를 보류한다”고 덧붙였다. 이날부터 홍콩에서 BNO 여권은 효력을 잃었다. 홍콩인들은 홍콩 신분증으로 홍콩을 출국한 뒤 BNO 여권으로 영국에 입국하는 우회로를 찾고 있다고 빈과일보가 전날 보도했다.

향후 5년간 홍콩인 32만명에서 최대 100만 명이 BNO를 이용해 영국으로 탈출할 것으로 SCMP는 전망했다. 한 홍콩인은 “BNO는 홍콩인의 구명보트”라며 “많은 홍콩인은 중국이 홍콩인들의 이민을 아예 막아버릴까 봐 걱정하고 있다. 그러니 가능한 한 빨리 떠나는 게 좋다”고 말했다.

특히 홍콩 청년 29%가 이민을 계획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홍콩 청년협회가 지난해 12월 8일부터 13일까지 18~34세 청년 52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다. 청년들은 홍콩 국가보안법(51%), 정부에 대한 실망(49%), 심각한 사회 분열(31%)을 이민을 계획하는 3대 이유로 꼽았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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