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균 칼럼] 과속할 땐 표지판이 안 보인다
“ ‘남들은 50% 올랐다, 따블 수익이 났다’고 하는데 고작 15%짜리를 추천하냐”고 하는 게 친구의 불만이었다. 그 증권사 임원은 다음 날 보유하고 있는 종목 대부분을 정리했다고 한다.
“뒤늦게 광분하는 투자자가 많이 늘었어요. 조심해야 합니다.” 주변에 ‘인간지표’ 역할을 하는 초보 투자자들을 보며 조정의 시그널을 발견한 사례다.
역대급 코스피 상승이 펼쳐지자 처음 주식을 접하는 이른바 ‘주린이’도 급증했다. 그러다 보니 평소 볼 수 없었던 비정상적 현상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1월 13일 애플이 중대 발표를 한다는 예고가 나오자 각종 주식 커뮤니티에서는 현대차와 관련된 것이라는 미확인 정보가 퍼졌다. 이에 개인들이 현대차 주식을 대거 사들였지만 정작 발표는 인종차별 해소를 위해 1억달러를 투자한다는 내용이었다.
조정을 예시하는 주변 정황들이었다. 경제지표에서도 경고 사인이 여러 차례 나왔다.
미국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지난 1월 6일 10개월 만에 1%대로 복귀했다. 코로나19 이후 글로벌 증시의 급등은 막대하게 풀린 유동성 덕분이었다. 금리 상승은 유동성 축소 가능성에 대한 경계감이 확산되고 있다는 신호였다.
지난해 3월 19일 달러당 1280원까지 급락했던 원화가치는 이후 꾸준히 상승해 올 1월 4일 1082원까지 올라왔다. 외국인에게는 한국 증시에서 환차익과 주식 시세차익을 동시에 거두는 기회가 발생했다. 지난해 11월 이후 상승장은 그런 외국인의 매수세가 큰 힘이 됐다.
하지만 연초 상황이 역전됐다. 미국 금리 상승이 달러화 강세로 이어졌다. 외국인은 1월 들어 3조원 이상 순매도를 하며 조정을 주도하고 있다.
한국 코스피의 주가수익비율(PER)은 전통적으로 10~12배 수준이었다. 그러던 것이 코로나19 이후 본격 상승하며 1월 26일 기준 15.2배까지 치솟았다. 글로벌 시장서 인정하는 한국 증시의 평가보다 과열됐다는 의미다.
투자할 곳을 찾지 못했던 개인 자금이 지난해에 이어 연초에도 무서운 기세로 주식 시장에 몰려들었다. 지난해 3월 19일 1458을 기록한 지 10개월 남짓 만에 코스피가 2배 이상 급등하는 장면을 지켜봤다. “더 이상 머뭇거렸다가는 나만 뒤처진다”는 절박감에 곳곳에서 켜진 경고등도 무시한 채 달려들었다.
얼마 전 집으로 과속 딱지가 한 장 날아왔다. 지방으로 상가에 다녀오다가 초행길인데도 급하게 운전하다 과속 카메라 경고 표지판을 보지 못한 것 같다. 주식이나 운전이나 이치는 마찬가지다.
코스피 조정 양상이 완연하다. 폭과 기간은 알 수 없지만 주린이들에게는 소중한 시기가 될 것이 분명하다. 겁 없이 덤빌 경우 주식이 얼마나 위험한지 경험한다면 큰 자산이 될 듯싶다.
[주간국장 sky221@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95호 (2021.02.03~2021.02.1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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