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생각할 권리를 가지는가?" 19세기 노동자들의 질문
[김홍규 기자]
사무금융노조 우분투비정규센터와 사단법인 직장갑질119가 지난해 12월 콜센터 상담사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는 참담하다(<노동과 세계>, 2021년 1월 13일). 응답한 상담사의 85.5%가 '휴가 사용에 어려움이 있다'고 대답했다. 가장 큰 고통으로 '화장실 사용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것'을 꼽았다. 휴식 시간과 휴가 사용 보장이 가장 시급한 해결 과제라고 응답했다.
▲ 『프롤레타리아의 밤』 책 표지 랑시에르의 『프롤레타리아의 밤』(안준범 옮김, 문학동네)이 올해 번역 출간되었다. 이 책은 꿈꾸고 사유하는 19세기 노동자들의 이야기다. |
ⓒ 문학동네 |
얼마 전 번역된 랑시에르의 <프롤레타리아의 밤>(안준범 옮김, 문학동네) 은 '시간을 도둑맞은 슬픔'을 더는 견디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실천한 19세기 노동자들의 이야기다. 그는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프랑스 철학자이다. 공저까지 포함하면 20권이 넘는 책이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있다. 강연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 적도 있다. 박사학위 논문을 정리하여 1981년에 출간한 책이 이제야 번역된 것은 의외라고 할 수 있다.
"1830년경 스물이었던 그들. 이 무렵에, 저마다의 계산으로, 견딜 수 없는 것을 더 이상 견디지 않겠노라 결단했던 그들. 빈곤, 저임, 불편한 거처, 언제나 지척에 있는 기아만이 아니라, 더 근본적으로는, 예속의 힘을 지배의 힘에 무한정 연계시키는 것 이외의 다른 목표 없이 목수 일을 하고 철공 일을 하며 예복 재봉질을 하고 구두를 깁느라 매일매일 시간을 도둑맞는 슬픔을 더 이상 견디지 않겠노라는." (<프롤레타리아의 밤>, 9쪽)
랑시에르는 한 대담에서 "이전과 같지 않은 사회"를 꿈꾼다는 점에서 '68년의 학생들'과 '1830년 혁명 이후 노동자들' 사이에는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자크 랑시에르와의 대화-피곤한 사람들은 어쩔 수 없지!>, 859쪽). 이 꿈은 19세기 노동자들에게 생계를 위해 낮 시간을 빼앗기고 밤마저 다음 날 노동을 위해 "잠만 처 자게" 되는 "진짜 지옥"에서 벗어나려는, 도둑맞은 시간과 자유와 존엄을 찾으려는 분투와 관련이 있다.
"불행한 숭고! 당신들은 슬픔 중의 슬픔인 통속적 슬픔을, 함정에 빠진 사자의 슬픔을, 작업장의 끔찍한 주기의 먹이가 된 평민의 슬픔을, 장시간 노동의 권태와 광기에 의해 정신과 신체를 부식하는 이 징벌의 원천을 알지 못했다. 아! 늙은 단체여, 진짜 지옥을, 시가 없는 지옥을 여행해보지 못한 너에게 작별 인사를!"(<프롤레타리아의 밤>, 38쪽)
랑시에르는 노동자들에 대한 이미지 왜곡과 부당한 위치 정하기는 플라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주장한다. 랑시에르가 보기에 '사유할 수 있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이데올로기가 다양한 형태로 오늘날까지 내려오며 평등한 '평범한 데모스'의 통치를 전제하는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왕-철학자와 전사와 수공업 노동자가 각자의 자리에 운명적으로 처하게 되는 것은 각자의 영혼에 섞인 금과 은과 철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국가』의 낡은 신화의 외양과 모순 … 신이 사유할 운명을 부여할 이들과 구두 만들 운명을 부여한 이들을 분리하는 …"(<프롤레타리아의 밤>, 43-44쪽).
랑시에르는 평등한 세상을 꿈꾸며 사유로 밤을 보내는 19세기 노동자들이 "누가 생각할 권리를 가지는가?"라는 '철학을 여는 질문'을 제기한다고 본다. '누구나 시를 쓰고 철학을 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은 지적으로 평등하다'는 것이 글쓴이가 노동자 문서고의 오래된 자료들에서 찾은 결론이다. 그의 결론은 "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것을 가르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무지한 스승>의 주인공 자코토에게 닿는다.
"이러한 민주주의의 모습은 사상의 힘을 사용하는 데에 익숙한 자들에게 충분히 공포감과 증오심을 자극할 만한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어느 누구와도 공평하게 권력을 나눠 가질 수 있는 사람들에게 민주주의는 용기와 기쁨을 선사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민주주의는 왜 증오의 대상인가>, 197쪽)
19세기 일하는 사람들이 만들고자 했던 다음과 같은 유토피아가 실현되지 못했다고 해서 그들의 꿈과 투쟁이 부질없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
"협동조합적인 푸줏간과 빵가게, 채소 재배 정원, 아동 보육 교사, 아동교육과 더불어 부모들의 품행과 언어를 감시할 책임을 지는 9인 위원회. 이러한 교육적 배려가, 보르도 출신 재단사 들뤼크가 5명의 장인, 100명 이상의 연합체 회원과 함께 1837년부터 구상하고 1848년 5월에 조정한 프로젝트를 특징짓는다. 노동조직화에 접목되어야만 하는 것은 공동 주거의 조직화인데, 여기서는 식당이 "노동을 끝낸 저녁에는 각자가 저렴하게 과학과 인문학 기초 강좌를 들을 수 있을 교실로 전환될 수 있을 것이다." 아동은 그곳에서 무상으로 교육받을 것이고, "인간 삶의 풍경"이 더 이상 "분리와 고립의 사실"이 아닌 공동의 수립임이 가능하도록 모든 것이 채택될 것이다."(<프롤레타리아의 밤>, 426쪽)
목수 노동자 고니, 철물 노동자 질랑, 오물 수거 노동자 퐁티, 미장일과 구두닦이 노동자 제누... 그들은 자유와 해방을 꿈꾸는 밤의 시간을 만들기 위해 싸운 사람들이다. 매일매일 자유와 해방을 만드는 프롤레타리아다.
신자유주의 자본은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지금의 시간을 내놓으라고 사람들에게 요구한다. 취업을 위해 잠자는 시간과 생각하는 시간을 포기하라고 속삭이고, 천정부지로 치솟는 아파트를 미끼로 더 많은 시간을 일하라고 몰아세운다. 생계와 물질을 인질로 삼아 사유를 멈추라고 강요하는 괴물에 맞선 해방의 시간은 19세기에도 지금도 '언제나' 필요하다. 사유와 자유의 시간, 여가는 '지금 당장'을 포함해 항상 어디에나 있어야 한다.
<프롤레타리아의 밤>은 우리에게 절망과 위안을 동시에 줄 수 있다. 화장실 가는 시간, 밥 먹는 시간도 보장하지 않으면서 노동자들의 시간을 뺏으려는 기업의 이윤 추구와 착취가 200년 가까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하다는 현실이 우리를 절망하게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19세기에도 인간다운 삶을 위해 고민하고 투쟁하며 시간의 전복을 꿈꾸고 실현하는 노동자들이 이렇게 많이 있었다는 위안을 얻을 수 있다. 책 속에 담겨 있는 19세기 노동자들의 이야기와 생활 모습을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다.
요즘 4차 산업혁명, 인공 지능, 플랫폼 노동, 프로토콜 경제, 에듀테크 등을 내세우면서 '기술 변화로 인한 세계의 변화'를 이유로 적응을 압박하는 '지식인들'이 많다. 랑시에르는 2018년 4월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인터뷰에서 "중요한 것은 변화 그 자체가 아니라, 무엇을 위한 변화인지가 문제"라고 했다. 변화의 속도가 아니라 변화의 목적이 중요하다는 말이며, 누구를 위한 변화인지에 관한 질문이다. 자신들의 시간과 존엄을 찾으려고 분투하는 19세기 노동자들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같은 질문을 찾을 수 있다.
"삶에는 충족해야 할 물질적 욕구 말고도 다른 것이 있다고. 신체가 노동할 때, 정신에도 그렇듯이, 신체에는 휴식과 오락이 필요하다."(<프롤레타리아의 밤>, 434쪽)
"누가 생각할 권리를 가지는가?", "누가 지혜와 지성을 가졌는가?" 19세기 목수 노동자 시인 고니가 쓴 시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프롤레타리아의 밤>, 181-182쪽). 고니는 우리에게 묻는다. 사유와 지성의 평등에 대한 21세기 사람들의 생각은 과연 그의 시에서 얼마나 앞으로 나아갔는가?
형제여, 일어나게, 힘과 용기를 다시 내게나.
상처 입었으되 여전히 자존감을 지닌 병사여, 다시 전투에 나서게.
어떤 노동도 천하지 않으니, 이것이 우리에겐 지혜로움.
노동하지 않는 자들을 멸시하는 것.
그대가 그대의 심장에서 사유가 들끓는 걸 느낄 때
사유는 성스러운 선물이니 억누르지 말게나.
…
신이 그대의 이마에 새겨준 이 기호: 지성.
그대에게 할당된 것은 틀림없이 영광스러운 운명.
열망하던 목표를 향해, 전진하게나, 그대의 날이 다가오리니.
전진하게나, 샛별이 보이잖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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