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 유천리 백자가 교토국립박물관에 온 까닭

박현국 2021. 2. 1.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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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부안 유천리 가마터에서 대량으로 가져가

[박현국 기자]

지난달 26일 오후 교토국립박물관에 다녀왔습니다. 3층 도자 전시실 한가운데 부안 유천리 백자음각목란연꽃무늬 병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하얀 색깔, 안정감 있는 모습이 사람들의 눈을 끌어들입니다. 가까이 다가가서 눈 여겨 보자 겉에는 정교하고, 대담하게 무늬가 음각으로 보일듯 말듯 새겨져 있습니다.
 
 교토국립박물관 도자 전시실 한 가운데 단독으로 전시된 백자음각모란연꽃무늬병입니다.(높이:36.8, 바닥지름:12.8, 입지름:6.6cm, 가사카와, 笠川正誠 기증) 왼쪽 사진은 전시실 사진이고, 오른쪽 사진은 교토국립박물관 홈피 캡처 사진, 긴목과 삼각형의 안정감있는 모습에서 무한한 아름다움을 느낍니다.
ⓒ 박현국
 
부안 유천리와 진서리 부근 고려 청자 가마터는 사적 69호, 70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11세기에서 13세기에 걸쳐서 고려 왕실이나 귀족들이 사용하는 청자를 주로 만들었습니다. 전라남도 강진과 더불어 우리나라 대표적인 고려 청자 가마터입니다.

번성기에는 가마터가 100기를 넘었다고 합니다. 부안군과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 공동으로 조사한 가마터는 77곳입니다. 지금도 유천리나 진서리 부근 야산이나 밭고랑에서는 깨진 사금파리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부안 유천리 가마터는 부근에 도자기를 만들 수 있는 좋은 태토가 많고, 변산반도 부근의 울창한 숲에서 가마에 사용할 땔감이 풍부하고, 곰소만 바다를 끼고 운반이 편리해서 가마터로 번성했었습니다. 고려 때 몽골 원나라와 전쟁으로 생활이나 경제가 지치고 쇠약해지면서 점차 사라졌습니다. 
  
유천리에서 만든 백자음각모란연화무늬 병은 일본 오사카 동양도자미술관과 교토국립박물관 두 곳에 비슷한 유물 두 점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형태나 겉모습이 비슷해서 한눈에 같은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겉 색깔은 약간 다릅니다. 오사카 동양도자미술관 작품은 겉에 부분적으로 차색으로 바뀐 곳이 두드러집니다.

목이 길고 몸통이 둥근 병은 일찍이 중국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중국에서는 옥호춘병(玉壺春甁)이라고 합니다. 쓰임새나 멋진 모습이 사람들을 매혹시켰고 많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때 한반도에서도 이것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고려 사람들은 중국의 옥호춘병보다 매혹적인 병을 만들고, 겉에는 중국 사람들이 따라올 수 없는 꽃무늬를 음각으로 새겨놓기도 했습니다. 

옥호춘병은 높이가 대략 30cm  전후 크기입니다. 백자가 많지만 흑유자도 있고, 겉에 색깔 두 가지 이상을 사용하여 그림이나 무늬를 새겨놓은 것들도 많습니다. 중국에서 만든 옥호춘병이 비교적 둥근 몸통을 띠고 있는 것에 비해서 부안 유천리에서 만든 병은 목이 길고, 어깨가 아래로 비스듬히 기울어 몸통이 삼각형에 가깝습니다. 
 
  유천리 가마터에서 나온 병과 중국에서 만든 것을 한 곳에 모아보았습니다. (1) 부안 유천리 백자, 교토국립박물관 홈피 사진 캡처, (2,3) 부안 유천리 백자, 오사카 시립동양도자미술관 사진 캡처, (4) 중국 송(960-1279년) 나라 백자, 개성 출토, 한국 중앙국립박물관 사진 캡처, (5) 중국 진(265-420년) 나라 백자, 소더비 경매사이트 작품소개 캡처
ⓒ 박현국
유천리 가마터는 1930년대 일본 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집중적으로 발굴하여 대부분 일본으로 가져갔습니다. 후카다 야스토시(深田泰寿,1886-09-08-??돗토리출신, 정읍 거주)는 깨진 청자 조각만 다섯 가마니를 가져갔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 중 한 가마니를 이화여자대학에서 구입했습니다. 대략 5천 점으로 그 중 천 여 점을 조사하기도 했습니다.
유천리 가마터에서 발굴된 병 가운데 백자음각 모란연꽃무늬 병과 비슷한 것들이 많습니다. 형태는 말할 것도 없고, 겉 무늬와 그것을 음각으로 새기는 방법이 모두 비슷합니다. 그리고 병을 가마에 넣고 구울 때 굽다리 바닥에 놓는 고임돌 흔적도 비슷합니다. 
 
  유천리에서 나온 비슷한 병들입니다. 부안청자박물관 홈피, 소개 자료, 천년부안고려청자의발자취(2012년개관1주년기념특별전시도록), pp.72-74
ⓒ 박현국
 
유천리에서 발굴된 도자기 겉 무늬는 학이나 소나무잎, 구름, 국화, 나리 덩굴, 동자, 물고기, 등등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그러나 음각 무늬 병 겉 무늬는 어깨에 염주문을 두르고, 몸통은 넷으로 나누어 연꽃, 모란, 추규(접시꽃) 등을 새겨놓았습니다. 겉무늬나 장식은 모두 정교한듯 자유분망하고, 정확하면서 형식을 넘어서서 창조성을 한껏 발휘했습니다. 
백자음각모락연화무늬 병의 어깨에 두른 염주 당초무늬의 엉클어져 있는 모습은 자연 그대로 사실적이면서 몸통 네 곳에 새겨진 꽃 무늬 사이에 역삼각형 형태로 드리워져 있습니다. 긴 몸과 둥근 몸통이 주는 안정감, 겉에 화려하게 음각으로 새겨진 꽃 무늬를 보노라면 도자기 작품이 아니라 새로운 선경 세계로 이끌어가는 마술 도구처럼 보입니다.
 
  유천리에서 나온 병들로 오사카와 교토에 있는 병과 똑같이 그려져 있지는 않지만 비슷한 형태로 그려져 있습니다. 부안청자박물관 홈피, 소개 자료,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유천리고려도자,2006, p.97.109,110,161
ⓒ 박현국
 
작품을 만들거나 꾸밀때 몸과 몸통을 구분하는 곳에 염주무늬를 두르거나 장식으로 구분하는 무늬는 일찍이 소그디아나 페르시아, 박트리아 미술품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중앙아시아 비단길과 바다 교역을 통해서 중국에 전해지고, 이어서 다시 한반도에 전했습니다.

이것을 받아들인 초기에는 그들의 방식을 그대로 따라서 비슷한 무늬를 새겼지만 점차 자신들의 독창적인 안목과 혜안으로 새로운 무늬를 만들어냈습니다. 유천리 백자 음각모란연화무늬 병에서는 목 염주 장식이 몸통을 구분하는 곳까지 역삼각형으로 드리워져있습니다.  

고려 때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유천리 백자모란연꽃무늬 병은 중국 옥호춘병에 비해서 몸통의 무게 중심이 아래로 내려가면서 안정감을 주고, 보는 사람이 편안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고려 사람들이 차원 놓은 미의식과 예술성을 발휘했습니다. 몸통이 비스듬해지면서 목선이 더욱 강조되고, 목선의 부드러움과 여유로움이 작품의 자태를 한껏 드러내고 있습니다.
  
  부안 유천리 가마터에서 만든 것으로 보이는 백자음각모란연화무늬병 몸통 사진입니다. 위쪽은 교토국립박물관에 전시된 작품을 직접 찍은 것이고, 아래쪽 사진은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홈피에서 공개된 사진을 캡처해서 모았습니다. 음각으로 사진이라 구분하기 쉽지 않지만 이미지 분위기가 비슷합니다.
ⓒ 박현국
   
참고누리집> 부안청자박물관,https://www.buan.go.kr/index.buan,2021.1.26
교토국립박물관, https://www.kyohaku.go.jp, 2021.1.26 
국립중앙박물관,  museum.go.kr, 2021.1.31
소더비, https://www.sothebys.com/yuhuchunping, 2021.1.31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白磁陰刻牡丹蓮花文瓶:作品情報,収蔵品検索,大阪市立東洋陶磁美術館 (jmapps.ne.jp), 2021.1.31
이화여대자대학교 박물관, 부안 유천리 가마터 수습 고려 청자, 백자 도편,(ewha.ac.kr), 2021.1.31
참고문헌> 김종운, 한성욱, 한성천, (흙으로 빚은 보물) 부안 청자, 학연문화사,2008., 윤용이, 아름다운 우리 도자기, 학고재,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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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박현국 시민기자는 교토에 있는 류코쿠대학 국제학부에서 우리말과 민속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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