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의 정치 읽기] '칼춤' 추듯..권력에 취한 그들
인간은 본성상 하고 싶은 것을 하고자 하지 타인에 의한 구속을 즐기지 않는다. 때문에 권력적 현상에는 언제나 반발하는 측과 권력을 유지하거나 자신의 권력 범위를 확장하려는 측이 존재한다. 흔히 권력은 부모 자식 간에도 나눌 수 없다고 한다. 이 말 속에는 권력은 집중되는 속성을 갖고 있다는 의미가 포함돼 있다. 권력이란 그만큼 한번 가지면 내놓기 싫어진다.
권력에 취하면 자신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존재라는 착각에 빠진다. 타인을 마음대로 움직이게 할 수 있다는 착각에도 빠진다. 이런 착각에 빠지면 판단력이 흐려진다. 말과 행동이 따로 놀기 십상이다.
이는 과거에는 한나라당에 성 관련 범죄가 집중되더니, 이제는 그런 사건이 진보 진영에 집중되는 것과 무관치 않다.
김종철 정의당 전 대표 성추행 문제가 세간 주목을 받았다. 과거 안희정 전 충남지사 성폭력 문제에 이어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 관련 의혹으로 정치권이 흔들리더니, 이제는 정의당 대표가 사건의 중심에 섰다.
과거 진보 진영은 도덕성이 존재의 근본이었다. 진보 진영에 도덕성이 중요했던 이유가 있다. 이를 통해 당시 기득권 세력이었던 보수와 대비될 수 있었고, 또한 이를 통해 정통성을 인정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사이 이런 사건이 진보 진영에 집중되고 있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점을 시사한다.
우선 이들 진보 진영이 이미 기득권이 됐다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진보 진영, 특히 정치권에 몸담고 있는 ‘진보 세력’은 지금이 ‘진보의 전성시대’라고 생각하며 권력에 취한 상태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이들이 권력에 취한 것이라면, 이들은 이념적으로는 좌파지만 이미 기득권이다. ‘좌파 기득권 세력’이다. 좌파가 기득권이 됐다는 사실은 이들이 기득권을 지키려고 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보수가 됐음을 의미한다.
이는 과거 사회주의 체제 동유럽을 상기하면 금방알 수 있다. 사회주의 체제 동유럽 국가에서 보수는 좌파 기득권 세력이었다. 진보는 그 기득권을 부수려는, 자유시장 경제를 신봉하는 우파 세력이었다.
물론 정치 집단이 권력을 획득하거나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다. 권력 획득과 유지는 정당의 존재 이유기 때문이다. 그런데 권력을 추구하거나 유지하려는 방식은 헌법의 기본을 존중하며 국가 미래를 책임진다는 생각 아래 이뤄져야 한다. 권력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비상 상황을 명분으로 들며 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운용한다든지, 아니면 전문적 관료 집단 의견을 무시한다면, 이는 상당한 후유증을 남길 수밖에 없다. 이는 권력에 대한 집착이 도를 넘고 있음을 보여준다. 비상 상황일수록 헌법의 기본 정신에 충실하고 동시에 전문성을 가진 관료 집단 의견을 경청하고 따르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익공유제나 손실보상제 등을 주장하는 현재 여권의 모습은 그렇지 못하다. 상황이 이러니 4월 보궐선거와 여권 움직임을 연관해 해석하는 시선이 나온다. 이런 해석이 맞다면, 여권이 권력 유지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이익공유제부터 생각해보자. 취지에는 공감한다. 당연히 현재 막심한 손해를 보고 있는 자영업자를 도와야 한다. 하지만 국가의 미래와 현재 능력을 고려하면서 도와야 한다. 이익공유제라는 것이 과연 자본주의 시장 경제 원리에 맞는 것인지도 충분히 검토를 해야 한다. 현재 여권에서 논의되는 이익공유제를 간단히 표현하면, 코로나19 상황에서 이득을 본 기업은 피해를 본 업종과 ‘상생을 위해 이익을 공유하라’는 것이다. 현재로서만 본다면, 정부가 공적자금을 일부 출연하고 나머지를 기업이 ‘자발적’으로 충당하는 방식일 것 같다. 고통 분담 차원에서 취지를 이해한다 해도, 코로나19 특수를 누린 기업들이 진정으로 이익을 보고 있는가, 즉 기업의 이익을 어떤 시점을 기준으로 평가하느냐 하는 것과, 진짜 이들 기업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만큼 참여 기업에 이익공유에 버금가는 이득을 제공할 수 있는가 하는 점, 그리고 코로나19로 피해를 봤다는 자영업자를 어느 정도 수준에서, 무슨 기준으로 보상할 것인가 하는 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하나씩 따져보자.
쿠팡은 코로나19 동안 이익을 창출한 대표적인 기업으로 꼽히지만, 지난 수년 동안 수조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이런 기업에 코로나19 동안 이익을 봤으니 이익공유에 동참하라고 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타당한가. 또 이들 기업이 이익을 봤다 해도, ‘이익의 사용처’에 대한 판단은 기업 자율에 맡겨야 한다. 기업이 자발적으로 동참할 수 있을 정도의 인센티브를 정부가 제공할 수 있는가도 의문이다. 지금까지 기업의 움직임을 보면 큰 매력을 느끼고 있지 않은 것 같다.
마찬가지로 손실보상제 역시 급하게 추진할 문제가 아니다. 정부 방역 지침을 충실하게 따르느라 손해를 본 업종에 어느 정도 보상을 해줘야 한다는 취지에는 동의한다. 그런데 언제를 기준으로 혹은 어느 정도 기간을 기준으로 손해를 산정해야 하는가는 어려운 숙제다. 이뿐 아니라 이들 업종에 어느 정도 수준으로 손실을 보상할 것인가, 어떤 업종에 보상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 프리랜서나 특수고용직과의 형평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말이다. 또한 이를 제도화할 경우, 코로나 지속 기간 내내 손실을 보상할 것인지, 재원은 어디서 충당할 것인지 등도 심각하게 고민할 문제다.
때문에 취지에 공감한다 해도 3월 늦어도 4월 초까지 손실을 보상하겠다고 나서는 여권 모습에 공감하기는 어렵다. 이렇게 서두르려면 전문가 판단에라도 귀를 기울여야 하는데, 기재부가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여권으로부터 호된 비판을 받았다. 한마디로 전문성이 있는 관료 의견이 정치 논리에 의해 무시받는 양상이다. 법치가 제대로 작동되면 정부 각 부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고 조율되면서 합리적 방안이 도출될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은 여권은 밀어붙이고, 전문성을 가진 관료 목소리는 사라지는 판국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이나 정권을 초월한 정책의 연속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한마디로 공무원 조직이 권력 눈치나 보는 존재로 전락하고 있다.
결국 결론은 ‘다시 법치’다. 법치에 입각해 정부 각 분야의 자율성과 전문성이 충분히 발휘될 수 있도록, 정치권은 뒷받침만 해주면 된다. 그런데 지금은 반대 현상이 자주 눈에 띈다. 말이 앞에서 마차를 끄는 것이 아니라, 뒤에서 마차를 미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이래 갖고는 마차가 제대로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비상 상황일수록 기본과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95호 (2021.02.03~2021.02.1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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