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지지율은 왜 추락하나
[엄경영, 봉주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 사진은 지난 27일 오전 국회에서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하며 회의자료를 보고 있는 모습. |
ⓒ 남소연 |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초기 지지율 상승은 '구도 이점' 탓이 컸다. 2019년 중반 이낙연 국무총리는 지지율 1위에 올랐다. 민주당 대선주자들에 고루 분산됐던 여권 지지층이 이 총리 쪽으로 쏠린 것이다. 1위를 달리던 황교안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대표는 2위로 내려앉았다. 황 대표는 2019년 취임 이후 한동안 1위를 기록했다.
민주당 지지율이 상당히 앞선 가운데 황 대표가 선두였던 이유는 보수 지지층이 결집했기 때문이다. 대선주자 여론조사는 각 여론조사기관에서 거의 매주 발표됐다. 여권 지지층 입장에서도 대항마가 필요했다. 이 총리는 안정적으로 국정운영을 뒷받침했고, 당내 대선주자 중 노출 빈도가 가장 높았다. 풍부함 정치경험과 호남이란 지역기반도 갖추고 있었다. 이런 조건이 맞아떨어지면서 이 총리는 1년 이상 유력한 차기주자로 대접받았다.
대한민국 리셋의 위기
이낙연 대표 위기는 국정 위기와 함께 시작됐다. 2020년은 온갖 사건사고가 집중되면서 국정 위기가 한껏 고조됐다. 이 대표 취임 무렵인 늦여름엔 역대급 장마로 온 나라가 물에 잠겼다. 윤석열 검찰총장을 둘러싼 논란도 여권을 괴롭혔다. 2020년 11월부터 코로나19 확진자수가 크게 늘었다. 여기에 백신 확보 늑장 대처 비판여론이 더해졌다. 민주당 주요법안 단독 처리도 여권 위기를 재촉했다.
이 대표 지지율은 지난해 늦가을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 대표는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빅2'를 형성하고 있었지만 일부 여론조사에서 역전을 허용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엔 문 대통령과 민주당 지지율 흐름도 좋지 않았다. 국정운영 실망이 확산하면서 30, 40대와 민주당 지지층 등 여권 핵심 기반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여권 위기는 이 대표 지지율 하락을 더욱 부추겼다.
2016년과 이듬해 촛불은 겉으론 국정농단 책임을 묻는 것이지만 근본적으론 '대한민국 리셋'에 대한 요구였다. 문 대통령 대선공약 골자도 종종 재조산하(再造山河)로 요약된다. 재조산하는 임진왜란 당시 실의에 빠져 있던 류성룡에게 이순신 장군이 적어 준 글귀로 '나라를 다시 만들다'라는 뜻이다.
지난해 문 대통령과 민주당의 위기는 곧 '대한민국 리셋'의 위기였던 셈이다. 여권 핵심기반에서 적폐청산과 각종 개혁과제 퇴행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이 대표는 연말 문 대통령과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영수회담과 연초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을 제안했다. 이는 '이낙연 리더십'에 대한 의문을 한껏 부채질했다.
40대는 여권의 가장 핵심적인 지지층이다. 40대는 1970년대에 태어났다. 대부분 가난한 부모를 두고 있다. 이들은 사회에 막 진입한 지 얼마 안 돼 IMF 위기를 겪었다. 1970년대 후반에 태어난 이들은 '88만원 세대'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기도 했다. 40대는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시기 진보정권 10년과 그 이후 보수정권 10년을 동시에 경험했다.
40대는 네 번의 대규모 촛불에 참여하기도 했다. 2002년 의정부 여중생 압사사건, 2004년 노 전 대통령 탄핵, 2008년 광우병, 2016년 국정농단 등이 그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40대는 보수정당 비토 정서를 공유하고 개혁성향을 강화한 것이다. 40대의 이낙연 대표 지지철회는 예견돼 있었던 셈이다. 뒤이어 30대가 동조하고 나섰다. 우호적(또는 소극적) 지지층인 20대와 50대도 30∼40대 영향을 받아 이 지사 쪽으로 쏠리고 있다.
과거 민주당 계열 대선후보 결정은 호남이 선택하면 수도권과 영남 젊은층이 뒤따르는 식이었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2012년 문재인 후보가 이에 해당한다. 그런데 지역구도가 완화되고 세대역할이 커지면서 새로운 공식이 성립됐다. 세대(특히 30∼40대)가 선택하면 호남이 따라가는 식으로 변한 것이다. 2017년 문 대통령이 여기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이 대표 지지율 하락과 함께 이재명 지사 지지율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상승과정은 새로운 공식을 따르고 있다. 지난해 가을 '빅2' 균형에 금이 가기 시작했고 40대가 이를 주도했다. 지난해 겨울엔 그 흐름이 30대로 옮겨 붙었다. 그리고 20대․50대, 진보성향과 민주당 지지층이 움직였다. 올 1월엔 최종적으로 호남이 이 지사 쪽에 힘을 싣기 시작했다.
▲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다음날이었던 2016년 12월 10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정권 끝장내는 날'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 |
ⓒ 사진공동취재단 |
대의제 민주주의는 대표와 책임 원리가 작동한다. 선출된 대표에겐 응분의 책임이 요구된다. 국민들은 보수→진보→보수 등의 순으로 책임을 물었다. 선거로 미흡하다고 생각할 때는 강제력도 동원한다. 촛불이 그런 경우라고 해석할 수 있다. 대표와 책임 원리는 같은 정당이나 정권에서도 해당된다.
민주당 대선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시대가 요구하는 여러 가지 대표성을 확보해야 한다. 대표성은 민심이기도 하다. 지금 가장 중요한 민심은 진보·개혁이다. 여권 지지층이 이낙연 대표에서 이재명 지사로 옮겨갔다는 것은 진보·개혁의 대표가 이 대표에서 이 지사로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또 이 지사는 약자·서민·비기득권을 대표하기도 한다. 굳이 말을 안 해도 이 지사 자체가 곧 메시지로 비친다. 더욱이 이 지사는 반 국민의힘을 대표하기도 한다. 지난해 국정감사 '국민의짐' 논란은 이를 방증한다.
시대와 불화. 이낙연 대표 리더십을 간단하게 요약할 수 있다. 이 대표 별명은 '영국신사'다. 이 대표는 점잖고 인품이 훌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략 20년 전이라면 이 대표 리더십은 빛날 수 있다. 여권 지지층이 볼 때 지금은 '전쟁 중'이다. 과거로 후퇴하느냐, 새롭게 나아갈 수 있느냐, 절체절명의 기로다. 영국신사보단 싸움꾼이 필요하다고 느낄 수 있다. 이낙연 대표가 그랬듯 이재명 지사도 언젠가 책임을 요구받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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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필자는 시대정신연구소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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