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은 없고 매력은 있다..관광객은 모르는 전주의 '찐맛집'

백종현 2021. 2. 1.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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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전주는 트렌디한 도시다. 서울 못지않게 유행이 빠르게 바뀐다. 관광객 몰리는 한옥마을과 ‘객리단길’로 통하는 객사 주변으로 무수한 먹거리가 있지만, 어디를 가야 할지 늘 고민스럽다. 그래서 찾아봤다. 전주 청춘들에게 물어물어 찾아간 디저트 가게와 식당 그리고 술집. 로컬이 인정한 ‘찐 맛집’이자, 전주 힙스터의 아지트다.


‘가맥’ 말고 ‘수맥’ - 노매딕 브루잉 컴퍼니

한옥마을 크레프트 맥줏집 '노매딕'. 양조장에서 직접 빚은 신선한 맥주를 맛볼 수 있다.

전주는 술꾼의 터전이다. 삼천동과 서신동은 이름난 막걸리 촌이고, 가성비 좋은 가맥집이 동네마다 터를 잡고 있다. 전주에서 로컬 수제 맥주를 맛보고 싶다면 ‘노매딕’을 찾으면 된다. 전주의 젊은 ‘맥덕(맥주 덕후)’이 꼽는 크래프트 맥주 집이다. 직접 빚은 신선한 맥주를 낸다. 가게 한편에 당화조·발효조 등의 양조 시설이 있다.

미국인 남편 존 개럿은 맥주를 빚고, 한국인 아내 이한나씨는 피자를 만든다. [사진 노매딕브루잉컴퍼니]

가게 이름 ‘노메딕’은 유목민(nomadic)을 뜻하는데, 국제 커플이 맥줏집을 꾸려 나간다. 미국인 남편 존 개럿은 맥주를 빚고, 한국인 아내 이한나씨는 피자를 굽는다. 존은 2009년 원어민 교사로 한국에 왔다. 한국 맥주가 입에 맞지 않아, 직접 맥주를 만들어 마시던 것이 어느 순간 직업이 됐단다. 독일 뮌헨에서 맥주 유학을 하고 돌아온 뒤 이곳 전주에 터를 잡았다. 부드러운 쓴맛이 인상적인 ‘노매디카(1만원)’. 홉 향이 가득한 에일 맥주 ‘합기도(1만3000원)’가 베스트셀러다. 합기도는 국내산 유기농 조청으로 맛을 냈다. 중앙동 웨딩 거리에 양조장이 있다. 한옥마을에도 분점이 있다.


간판은 없어요, 매력은 있어요 – 평화와평화

디저트 카페이자, 전시 공간인 '평화와평화'. 여백의 미가 큰 공간이다.

카페이자, 독립 서점이요, 전시 공간. 전주 객사 맞은편 웨딩 거리에서 가장 힙한 집으로 통한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가는 좁은 골목의 낡은 상가 3층에 간판도 없이 손님을 맞는다. 여백이 많은 가게다. 사방을 하얀색으로 칠한 실내는 커다란 창과 네모반듯한 테이블과 책장이 전부다. 가게를 꾸민 소품은 스테이플러·박스테이프·펀치·클립 같은 익숙한 사무용품이다. 요즘은 사무용품 브랜드 피스코리아의 각종 사무집기를 팝업스토어 형태로 전시하고 있다. 피스코리아가 60주년 기념으로 냈던 한정판 사무용품도 만날 수 있다.

휘낭시에가 이렇게 화려하고 예쁠 수도 있구나, 평화와평화에서 알게 된 사실이다.

디저트로 파는 휘낭시에(2700원)는 꼭 먹어봐야 한다. 추천 메뉴는 달고 짠 맛이 조화를 이룬 ‘소금 캐러멜 피낭시에’와 화이트 초콜릿을 겉에 바른 ‘화이트 말차 휘낭시에’. 두 메뉴 모두 ‘겉바속촉’의 매력이 제대로 살아 있다.


이태리 집밥 - 치노식당

웨딩 거리의 파스타집 '치노식당'. 감자수제비를 곁들인 감베리 크레마가 맛있는 집이다.

웨딩 거리에 자리한 아담한 파스타 집. 이탈리아 가정집 식사 자리에 초대받은 느낌을 들게 하는 장소다. 식기와 가구는 물론, 소품 하나하나에 유럽 감성이 배어 있다. 젊은 요리사 부부가 운영하는데, ‘치노’는 부부가 키우는 검은 고양이의 이름에서 따왔단다. 그래서인지 내부에 고양이 관련한 소품이 많다.

시그니처 메뉴는 ‘감베리 크레마(1만2500원)’. ‘감베’는 이탈리아어로 새우를 가리킨다. 크림소스와 치즈가 어우러진 새우 요리인데, 치노식당은 일반적인 파스타면 대신 감자수제비를 사용한다. 꾸덕꾸덕 고소한 크림소스와 쫄깃한 감자수제비가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손님상에 올리기 전에 조리용 가스 토치를 사용해 음식을 지지는데, 덕분에 연기 향이 그윽하다.


수다 떨기 좋은 술집 - 차가운 새벽

풍남문 남무시장 2층 청년몰에 자리한 칵테일 바 '차가운 새벽'. 메뉴판 없이 손님 취향에 맞춤한 칵테일을 내놓는다.

풍남문 옆 남부시장 2층 청년몰에 자리한 칵테일 집. 열 명이 앉으면 자리가 꽉 찰 정도로 작은 가게다. 메뉴판이 따로 없이, 손님 취향에 맞춤한 칵테일을 내놓는다. 잘 몰라도 괜찮다. “커피 좋아해요” “너무 단 건 싫어요” “독한 거로 주세요” 따위 말로 주문을 대신한다. 취향이 확실하고, 주문이 정교할수록 내 입맛에 맞는 칵테일을 받을 수 있다. '좀 마셔 본' 손님이라면, 평소 좋아하는 칵테일을 주문해도 괜찮다. 주인장 강나위씨는 “바텐더로서 새로운 곳으로 이끄는 안내자 역할을 즐긴다. 이것저것 물어보며 잘 써먹으시라"고 말한다.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유명해진 칵테일은 일명 ‘어른의 아이스크림’과 ‘술푸딩’이다. 술을 첨가한 수제 아이스크림 위에 말차 리큐르, 위스키 등을 부어 먹는다. 술푸딩은 이름 그대로 술로 만든 푸딩이다. 딸기·캐러멜커스터드·밤·말차·초콜릿 등을 재료로 매일 다른 맛, 다른 빛깔의 술푸딩을 낸다. 무엇보다 수다 떠는 재미가 쏠쏠한 집이다. 술과 미식, 책과 음악을 사랑하는 주인장이 이따금 말을 걸어온다. 전주에 대해 잘 모른다면 필히 들러야 할 집. 생생한 동네 이야기와 여행 정보를 얻어갈 수 있다.


사진 잘 나오는 빵집 - 나잇 나잇

객리단 길 초입의 베이커리 카페 나잇나잇. 디저트는 자고로 비주얼이 중요하다고 믿는다면 필수 방문 코스다.

‘객리단길’ 초입의 베이커리 카페. ‘평화와평화’와 마찬가지로 간판을 두고 있지 않지만, 현지 젊은 연인의 아지트가 된 지 오래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빵 굽는 냄새가 먼저 손님을 맞는다. 20여 가지 빵을 내는데, 펌킨 파이(6500원), 커스터드 크림 크루아상(5000원), 당근 피칸 케이크(6500원) 등이 인기 메뉴로 꼽힌다. 맛도 훌륭하지만, 비주얼 덕분에 더 사랑받는 메뉴다. 케이크와 디저트는 자고로 예뻐야 한다고 믿는 이들의 취향을 저격할 만하다. 낡은 외관과 달리 실내는 우드 톤으로 따뜻하고 아늑한 분위기다. 사방으로 큰 창이 나 있다. 쏟아져 들어오는 햇볕을 맞으며 커피 한잔과 디저트를 즐기기 좋다.

전주=글·사진 백종현 기자 baek.jo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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