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통합론 '법관 탄핵'에 주춤한 날, 호남 파고든 이재명

김효성 2021. 2. 1.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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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이재명 경기지사(왼쪽)를 찾아가 만난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상당히 매력있다. 인기를 얻을만하다"고 말했다. 임현동 기자

지난달 28일은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통합론’의 부상과 침몰이 이어진 날이었다.
오전에 열린 ‘사회적경제 활성화 및 입법 추진’ 당·정·청 협의회는 이 대표의 통합론에 청와대와 정부가 힘을 싣는 자리였다. “국민연금이 투자기업을 결정할 때 ESG평가를 반영하는 것처럼 다른 연기금 투자에서도 그것을 도입하거나 공공 조달에서 ESG평가를 반영하자”는 이 대표의 말에 이호승 청와대 경제수석과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도 맞장구를 쳤다.

지난달 초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 필요성과 이익공유제를 공론화하는 과정에서 “청와대와 조율이 안 된 채 급하게 질렀다”(수도권 재선 의원)는 평가가 나오던 것과는 영 다른 방향이었다. 한 핵심당직자는 “이익공유 참여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에 관한 논의는 이 대표 측에서 수개월 연구한 결과”라며 “큰 틀에서 이 대표가 밝힌 코로나19 이익공유제의 한 맥락”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통합’의 의의는 당·정·청 직후 열린 의원총회에서 무색해졌다. “찬반토론 와중에 제동이 걸리기를 기대했다”(이 대표와 가까운 초선 의원)지만 차기 당권 주자인 홍영표·송영길 의원마저 이탄희 의원의 법관 탄핵 주장에 동조하면서 ‘탄핵 강행’이 사실상 당론이나 다름없게 됐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이 “사법부 길들이기”(배준영 대변인)라고 크게 반발하면서 이 대표의 ‘통합론’에 대한 기대는 급히 꺾였다. 검찰이 복구한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의 삭제 파일목록에 문재인 정부의 북한 원전 추진 의혹이 담긴 문건이 포함되자 야당은 특검·국정조사를 주장하며 2월 임시국회는 난항에 빠지게 됐다.

경기도가 지난달 29일 주최한 토론회에선 서울시장 후보들도 참석했다.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왼쪽)은 "이 지사가 경기도를 이끄는 데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고 우상호 의원(오른쪽)은 "토론회를 이례적으로 수십 명(실제는 50명)이 공동주최하는 건 처음 본다"고 밝혔다. 오종택 기자

이 대표에게 위안이 되는 건 정치적 명운이 걸린 4·7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민주당 지지율이 회복세라는 점이다. YTN 의뢰로 리얼미터가 실시한 1월 넷째주 여론조사(1월 25~27일)에서 서울 지역 정당 지지율은 민주당 32.4%, 국민의힘 28.5%로 1월 첫째주 조사(민주당 27.2%, 국민의힘 30.3%)에 비해 크게 회복했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이낙연 텃밭 호남 파고드는 이재명

그러는 새 이 대표와 여권 차기 대선 후보 선호도 1,2위를 다투는 이재명 경기지사는 이 대표의 홈그라운드인 호남을 파고들었다. 의총에서 법관 탄핵 주장이 우세를 점한 지난달 28일 이 지사는 1박2일 일정으로 광주를 찾았다. 지난해 5월 이후 8개월 만이자, 차기 대선 후보 지지율 1위 달성 이후엔 첫 광주행이었다. 세계일보 의뢰로 리서치앤리서치가 지난달 31일 발표한 여론조사(1월 26~28일)에서 이 지사는 호남에서 47.8%의 지지율을 기록해 이 대표(22.2%)를 멀찍이 따돌렸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이재명 경기지사가 지난달 28일 오후 광주5·18국립민주묘지에서 참배하고 있는 모습. 관리사무소에서 포착돼 언론에 제공했다고 한다. 연합뉴스

그러나 이 지사는 일정 대부분을 비공개로 소화할 만큼 조심스러웠다. 지난달 29일 광주시청에서 열린 ‘초연결 AI 헬스케어서비스 플랫폼 구축 업무 협약식’을 제외한 대부분은 비공개 일정이었지만 광주 시민이 제보했다는 이 지사의 지난달 28일 5·18 국립민주묘지 참배 모습은 공개됐다. 눈발 속에 홀로 참배하는 이 지사의 뒷모습과 더불어 “나의 사회적 어머니 광주, 언제나 가슴 속에 있습니다”고 쓴 방명록의 문구는 민주당 안팎에서 크게 회자했다.

이 지사는 협약식 후 기자들과 만나 “이번 방문은 업무에 관한 것”이라면서도 “민주개혁 진영에선 광주 또는 호남이 엄청난 정치적인 결정권을 가진 게 역사적인 사실이고 현실”이라고 말했다. 비공개 일정엔 5·18 유가족모임인 ‘오월어머니집’ 방문과 김희중 천주교 광주대교구 대주교와의 면담이 포함됐다는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당내 호남 인사들에게선 “신선함을 느꼈다”는 평가도 나왔다.


“물들어 올 때 노젓는 것”

최근 페이스북과 토론회를 통해 정책 메시지를 쏟아내 온 이 지사의 광주행에 대해 민주당 내에선 “대세론 굳히기”(충청권 의원)라거나 “물들어 올 때 노 젓는 것”(수도권 재선 의원)이라는 등의 말이 나왔다. 경기도가 지난달 26일 서울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 연 ‘경기도 기본주택’ 토론회에는 여야 국회의원 20여 명과 서울시장 보궐선거 예비후보인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우상호 의원 등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이 지사와 가까운 한 민주당 인사는 “이재명계로 분류할 수 있는 의원이 20명을 넘어섰다”며 “호감을 보이는 의원은 50명 안팎”이라고 말했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지난달 28일 5·18 국립묘지 방명록에 남긴 글. 이 지사는 지난달 29일엔 강기정 전 청와대 정무수석도 만났다고 한다. 국립5·18 민주묘지 관리사무소

그러나 이 지사의 광폭 행보가 여전히 탐탁지 않은 의원들이 적지 않다. 서울 지역구의 친문 성향 재선 의원은 “이 지사 지지율의 상승은 되레 ‘이 지사는 절대 안 된다’는 친문진영의 반발을 사고 있다”며 “반발 여론이 제3주자를 촉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이 지사가 너무 빨리 정점을 찍은 것 같다”며 “유력한 제3주자가 등장하면 급격히 추락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이 지사의 메시지와 행보의 폭은 더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중앙 정치에서 한 발 벗어나 있어 자신에게 유리한 현안을 선택할 수 있다는 건 이 지사의 위치가 주는 이점이다. 이 지사는 지난달 30일에도 페이스북에 “과감한 확장재정정책으로 충분한 재원을 확보해 보편·선별·보상 등 필요한 정책을 모두 시행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글을 올렸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재차 압박하는 한편 본인이 주도하는 정책방향인 전 국민 재난지원금에 무게를 둔 발언이다.

하지만 최근 당의 현안으로 떠오른 법관탄핵에 관해선 아직 말을 아끼고 있다. 정한울 한국리서치 전문위원은 “정치적 갈등으로 중도층 이반 가능성이 큰 법관 탄핵 문제에 개입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정책 브랜드를 키우는 데 집중하는 영리한 전략을 펴고 있다”고 말했다.

김효성 기자 kim.hyos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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