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금 통장까지 올인.. '기본소득' 불안한 실험
지역개발·안정화기금 등 활용.. 향후 재정에 상당한 부담
경기도가 설 연휴 이전 지급키로 한 2차 재난기본소득 재원은 약 1조4000억여원에 달한다. 비결은 칸막이가 높은 지방재정 여윳돈을 ‘재난기본소득’이라는 단일 목표에 쏟아부은 운용 방식에 있었다.
경기도 곳간에 쌓아두지 않고 적립된 자금을 총동원해서라도 코로나19 위기에 대응해야 한다는 이 지사의 의지가 반영됐다. 내년 봄 치러지는 대선을 1년 앞둔 시점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우려에도 이 지사가 정치적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다만 이는 미래에 써야 할 자원을 상당 부분 끌어다 쓴 것으로, 앞으로 경기도 재정 운용에 상당한 부담을 줄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31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경기도의 2차 재난기본소득 재원 1조4035억원은 경기도 본예산이 아니라 과거부터 적립된 기금이라는 일종의 ‘비상금 통장’으로 구성됐다. 재원은 지역개발기금 8255억원, 재난관리기금 및 재해구호기금 400억원에 통합재정안정화기금 5380억원이 더해졌다. 앞서 경기도는 재난기본소득을 “지방채 발행 없이 여유 자금으로 지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자금은 어디서 나왔을까. 덩치가 가장 큰 지역개발기금은 경기도민들이 차량 구매 시 사는 지역개발채권(5년 만기 일시 상환)이 재원이다. 연간 1조원 규모다. 5년간 기금으로 활용할 수 있지만 만기가 끝나면 도민들에게 돌려주는 돈이어서 여유자금으로만 보기엔 무리가 있다. 1차와 2차 재난기본소득에 활용된 지역개발기금은 1조5000억원에 달한다.
2차 재난기본소득 재원으로 처음 포함된 통합재정안정화기금은 여러 통장의 쓰고 남은 자금을 한 곳에 모아 재난지원금 등에 활용할 수 있도록 효율성을 높인 것이다. 정부가 지난해 여름 코로나19 지원 목적으로 지방재정 자금 계정을 통합할 수 있게 하면서 새로 도입됐다.
이번에 총 5380억원이 투입되는데 대다수는 학교용지부담금(학교용지 확보 및 학교 증축용) 특별회계, 판교테크노밸리 특별회계 등 특정 목적 수행을 위해 편성된 특별회계 7개의 여유 자금 90%가량을 활용했다. 쓸 수 있는 돈을 모두 ‘기본소득 사업 통장’에 끌어모은 셈이다.
2차 재난기본소득 재원은 이재명식 효율성과 추진력을 보여주는 사례지만 대규모 긴급 자금을 투입하는 재정 운용에는 부담을 줄 가능성이 높다. 특히 기본소득 지급에 집중된 목표 달성을 위해 다른 친서민 정책을 줄이는 결과도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올해부터 경기도 내 차량 구매자들이 자동차 공채를 다시 사도록 한 것이다. 경기도는 2016년부터 2000㏄ 미만 차량 구매자에게는 채권 구입 면제, 2000㏄ 초과 5000만원 미만 차량 구매자에게는 공채 구입비 50% 할인 등의 혜택을 줬다.
하지만 경기도는 재난기본소득 지급으로 지역개발기금 재원이 부족해지자 올해부터는 이런 혜택을 없애기로 했다. 도의회 관계자는 “2000㏄ 미만 차량을 사는 분들이 상위계층이 아닌데 공채 면제를 취소하면서 부담을 준 것”이라며 “재원 때문에 어쩔 수 없긴 하지만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향후 코로나19 이외 대규모 재정지원 사업이 필요할 때 경기도의 재정 운용상 부담이 커질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경기 하락세를 고려하면 지난해 같은 부동산 거래 활황으로 지방세가 많이 늘지 않는 한 단기간에 통장 잔고가 늘어날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도 관계자는 “올해부터 자동차 공채 매입감면 제도가 종료되기 때문에 지역개발기금 수입은 늘어날 것”이라면서도 “기금 운용에는 문제가 없지만 앞으로 이번과 같은 규모의 재난기본소득 사업을 하긴 어렵다”고 털어놨다.
17개 시·도 중 인구가 가장 많고 재정 상황 역시 상대적으로 좋은 경기도와 달리 다른 시·도에서는 중앙정부와 별도로 지원금을 일괄 지급하는 것은 주머니 사정상 쉽지 않다. 한마디로 경기도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경기도니까 가능하지 다른 지자체는 예비비 모아봐야 200억~300억원 출연도 어렵다”며 “다른 지자체장들은 스트레스가 심하다. 못 주는 이유를 일일이 설명하는 것도 큰일”이라고 말했다.
당내에서는 이 지사의 일괄 지급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는 반응도 나온다. 수도권의 민주당 의원은 “경기도민 입장에서 10만원을 받는 게 기분은 좋을 수 있지만 무슨 효과가 있겠느냐”며 “전 국민적 입장에서 보면 과반 이상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재난기본소득 일괄 지급 방식은 이 지사의 선명한 색깔, 즉 ‘사이다’ 이미지와 맞아떨어지며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고 본다.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의 월간 차기 대권 주자 지지율 조사에서도 이런 흐름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지사는 2차 재난기본소득 지급이 가시화된 올해 1월(12~14일) 조사에서도 23%를 얻어 이낙연 민주당 대표(10%)와의 격차를 더욱 벌렸다(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윤태곤 더모아 정치연구실장은 “경기도민에게 10만원씩 나눠주는 정책이 어떤 경제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본인 이미지와는 일치한다”며 “유권자들 눈에는 말과 행동이 다르지 않고 같아 보인다는 점에서 눈에 띄는 부분이 있다”고 평가했다.
백상진 김판 이현우 기자 shark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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