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교실수업.. "100개의 학교에 100개의 다른 교육과정"
올해 고교에 진학한 아란이의 장래 희망은 과학자다. 고교 3년 동안 이 꿈을 어떻게 구체화할지 고민하고 있다. 비슷한 꿈을 가진 친구들과 사귀고, 선생님들과도 만나고 싶었지만 고교 생활은 태블릿PC 속 화상회의 프로그램으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실시간 쌍방향 수업으로 이뤄진 첫 국어 수업에서 인생의 방향타가 되는 책을 만났다. 여성 지구생물학자 호프 자런의 자전적 에세이 ‘랩걸(Lab Girl)’이었다. 남성 중심의 과학계에서 역경을 딛고 연구자로 인정받는 내용이 큰 울림을 줬다. 아란이를 이 책으로 유도한 수업은 ‘나의 진로 나침반 독서’라고 이름 붙은 고교 첫 국어 수업이었다.
이 학교 국어 교사들은 온·오프라인 수업을 병행해야 하는 상황에 맞춰 수업을 설계했다. 기존 국가교육과정에서 제시하는 성취 기준(학생이 수업을 통해 도달해야 하는 지식이나 기능)들을 온·오프라인 수업에 맞춰 통합했다. ‘읽기 목적을 고려해 자신의 읽기 방법을 점검하고 조정하며 읽는다’ ‘자신의 진로나 관심사와 관련된 글을 자발적으로 찾아 읽는 태도를 지닌다’ ‘쓰기 맥락을 고려해 쓰기 과정을 점검·조정하며 글을 고쳐 쓴다’란 기존 성취 기준은 ‘자신의 진로나 관심사와 관련된 글을 찾아 읽기 목적을 고려해 읽고 쓰는 과정을 점검·조정하며 글을 쓴다’로 합쳐졌다.
기존 성취 기준들에 도달하려면 14~15회 수업이 필요했지만 새 성취 기준으로는 7회 수업으로 충분했다. 아란이는 실시간 쌍방향으로 이뤄진 첫 수업에서 소개받은 진로 적성검사 사이트에서 과학자로서 소질·적성을 인정받은 뒤 온라인으로 교사와 수시로 대화하며 과학 관련 도서를 훑어나갔다. ‘랩걸’을 고른 이후 집에서 매일 독서일지를 작성하고 교사로부터 피드백을 받으며 읽어나갔다.
5, 6번째 수업은 등교해 독서일지를 공유하고 비슷한 꿈을 가진 친구들과 조를 짜 발표 준비를 했다. 마지막 7번째 수업에선 원격수업으로 돌아가 독서 내용을 발표했다. 아란이는 자신의 고교 3년을 위한 다짐으로도 보이는 서평을 작성해 교사에게 제출하며 고교 첫 국어 수업을 마무리했다.
교육부가 조만간 학교 현장에 배포할 ‘교육과정 재구성 예시 자료집’과 이 자료집의 국어 파트에 참여한 대전과학고 국어 담당 황인정 교사의 지난해 온·오프라인 수업 경험을 토대로 구성해본 가상 사례다.
자료집은 일종의 교사 참고서다. 등교수업 상황만을 고려해 만들어진 국가교육과정을 온·오프라인 수업 상황에 적합하게 학교 현장에서 어떻게 통합할지 그리고 수업은 어떻게 설계할지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제시하고 있다. 교육부가 지난해 11월부터 올 1월까지 대학교수와 현장 교사 214명의 협조를 받아 만들었다.
자료집을 보면 올해 등교와 원격수업 상황에서 수업이 어떻게 진행될지 엿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중2 도덕에서 가르치는 북한과 통일 파트의 경우 ‘우리가 꿈꾸는 통일 국가’란 이름으로 제시됐다. 이 부분을 작성한 용인 한숲중학교 차승한 도덕 교사에 따르면 이 수업은 북한과 통일을 다루던 8~9회 수업을 5회 수업으로 통폐합했다. 1~4회 수업은 원격수업으로 실시간 쌍방향과 과제 제출형 수업을 조합하고, 마지막 5회 수업은 등교해 조별 발표와 교사 피드백을 하게 된다(표 참조).
과거엔 북한 주민의 실상과 탈북자 등을 공부한 이후 통일 관련 수업을 이어가며 북한과 통일을 분절적으로 접근했다면 새로 설계된 수업에선 이를 합쳐 가르치게 된다. 5회로 축약하고 남는 시간은 학교나 지역별로 혹은 학생 특성에 맞는 교육을 진행할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교사들이 나름의 교육과정을 설계해 실행할 경우 100개 학교에 100개의 교육과정, 1000개 교실에서 1000개의 교육과정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황 교사는 “등교수업 확대만이 답이 아니다. 온·오프라인 수업이 적절히 융합하면 등교수업보다 학습 격차를 줄이고 소통도 강화될 수 있다. 교사 자율로 교육과정을 재구성하면 잘하는 학생에게는 심화학습을, 뒤처진 아이에겐 보충학습 기회가 가능하다”며 “각종 행정 업무를 줄여주고 원격수업 인프라를 확충해 교사들이 수업 설계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줄 경우 등교수업만 할 때보다 수업의 질이 높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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