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형석 (34) 내가 가르친 철학과 현실 사이 큰 간극에 회의

양민경 2021. 2. 1. 03:07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철학 교수로서 내가 가진 고민은 '철학이 과연 우리 사회에 무슨 도움을 줄 수 있는가'였다.

철학이라는 상아탑 주변에 공원을 만들고 그 안에서 우리끼리 즐기며 정신적 자족감을 채우려는 과오를 범하는 건 아닌지 회의가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아버지의 현실감각으로는 '선진국 철학계에서 인식론은 학자 간 주요 과제지만, 우리 사회에서 무슨 도움이 되며 또 누가 공감해주는가'란 고민스러운 자기반성이 있었던 것이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철학이 사회에 어떤 도움이 되나' 늘 자문
정신적·윤리적 빈곤서 오는 사회문제 많아
철학 비롯한 인문학적 소양 무엇보다 절실
김형석 교수가 펴낸 철학책 초판이 강원도 양구군 양구인문학박물관의 ‘김형석·안병욱 철학의 집’에 전시돼 있다. 양구인문학박물관 제공


철학 교수로서 내가 가진 고민은 ‘철학이 과연 우리 사회에 무슨 도움을 줄 수 있는가’였다. 철학이라는 상아탑 주변에 공원을 만들고 그 안에서 우리끼리 즐기며 정신적 자족감을 채우려는 과오를 범하는 건 아닌지 회의가 들 때도 있다.

언젠가 신문에서 접한 이야기다. 친구 김태길 서울대 교수가 철학을 전공한 아들이 해외에서 학업을 마치고 귀국했을 때 “학위논문이 무엇이었다고”라며 물었다. 인식론이라고 답하자 아버지는 “그게 우리 사회에 무슨 필요가 있나”라고 반문했다고 한다. 아버지가 전공한 윤리학에 비하면 아들이 전공한 인식론은 철학계에서 훨씬 더 전통적인 과제다. 철학계에서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아버지의 현실감각으로는 ‘선진국 철학계에서 인식론은 학자 간 주요 과제지만, 우리 사회에서 무슨 도움이 되며 또 누가 공감해주는가’란 고민스러운 자기반성이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철학계 대표적 학술지인 ‘철학’을 받아본다. 관심 있는 부분은 살펴보며 후배 학자의 노고에 고마움을 금치 못한다. 하지만 ‘이런 논문이 고뇌를 거듭하는 젊은 학생과 지성사회에 무슨 도움을 주고 있을까’ 자문할 때는 아쉬운 마음이 든다. 한마디로 말하면 내가 가르친 철학과 사회적 현실 사이에는 큰 정신적 간극이 있는 것 같다. 마치 한강 이북에 있는 기관차가 한강 이남의 객차에 “여기 우리가 있는 곳까지 오라”고 말하는 것 같은 거리감을 느낄 때가 있다.

기관차가 직접 객차가 있는 곳에 가야 한다. 건너올 다리가 없으면 인문학 등 다른 학문의 협조를 얻어 다리를 건설하는 책임까지 감당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기관차인 철학자 자신이 달라져야 한다. 임마누엘 칸트가 독일 철학을 개척했듯이, 우리는 우리의 철학 문제를 제시하고 해답을 주려고 노력해야 한다. 철학도는 주변 지성인이 공감하고 접근할 수 있는 우리의 문제에 대한 철학적 해답을 줘야 한다.

요즘 들어서는 대학보다 기업이 철학을 비롯한 인문학의 필요성을 더 강조하는 것 같다. 기업체 지도급 인사들이 회사 운영에서 정신적 가치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우리 사회의 문제가 정신 및 윤리의식의 빈곤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서일 것이다. 비슷한 예는 다른 데서도 보게 된다. 지성적 국민의 안목에서 보면, 국회의원에게 가장 결핍된 건 ‘인문학적 소양’이다. 사회에서 가장 버림받아야 할 집단이기주의적 사고와 가치관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어떤 사회든 이기적인 목적으로 편 가르기가 성행하면 사회악이 증대될 뿐이다.

인문학적 사유는 온갖 편견과 고정관념 등 사회의 암적 요소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는 역할도 한다. 열린 사회로의 가치관 확립에 기여하는 것이다. 철학은 언제나 형이상학적 사유를 견지해왔다. 모든 사물과 현실의 근원적 과제를 탐구하려는 의도에서다. 모든 문제를 더 넓게, 멀리까지 관찰하려는 세계관도 수립해왔다. 인문학적 사유를 실천하려는 노력이 우리 사회에 있다면, 창조적 가능성과 자유로운 희망의 역사를 언제든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다.

정리=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