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행사 사찰한거냐" 탈원전 반대 단체 반발

손해용 2021. 2. 1.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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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수출 행동' 동향·집회 등 파악
산업부 직원이 삭제한 파일서 확인
문 정부 민간 사찰했나 논란 확산
산업부 "사찰 아닌 통상 동향 보고"

“문재인 정부의 유전자(DNA)에는 민간인 사찰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2018년 12월 18일 김의겸 당시 청와대 대변인은 이렇게 단언했다. 특별감찰반원이었던 김태우 수사관이 은행장 비위 등을 조사했다고 폭로한 것이 민간인 사찰 논란으로 번지자 관련 의혹을 부인하면서다.

하지만 최근 복원된 산업통상자원부의 월성 원전 1호기 관련 문건들 속에서 시민단체 등 동향조사보고서가 대거 발견되면서 문재인 정부의 민간인 사찰 논란이 재차 확산하고 있다. 관련 단체들은 법적 대응까지 고려하며 반발하고 있다.

31일 산업부와 검찰 등에 따르면 산업부는 2017년 12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비판적이었던 시민단체 등의 동향보고서 10여 건을 작성한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이 감사원 감사 직전 산업부가 폐기했던 문건 530건을 복원한 결과 ▶에너지 전환 관련 지역 및 이해관계자 동향 ▶원자력정책연대 출범 및 동향 보고 ▶원전 수출 국민통합대회 동향 ▶에너지 전환 관련 단체 동향 보고 등 제목의 문건들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탈원전 정책에 반대 목소리를 높였던 시민단체 ‘원전수출 국민행동’(원국행)의 경우 2018년 3월 이 단체가 출범하기 전부터 산업부가 관련 동향보고서를 만든 것으로 밝혀졌다. 이 단체가 작성한 ‘광화문 행사 신청서’라는 제목의 문건도 나왔다. 이 문건은 2018년 4월 21일 원국행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주관한 ‘원전수출 국민통합대회’ 관련 문건으로 추정된다. 이 단체는 행사 한 달여 전 서울시청과 서울 종로경찰서에 각각 ‘광화문광장 사용신청서’와 ‘집회신고서’를 제출했다. 원국행 부본부장인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우리 단체가 문제되는 행동을 할까 봐 미리 확인하려고 (산업부가 서울시나 경찰에서) 받은 것 아니냐”며 “우리 행사를 사찰하기 위해 공공기관끼리 업무협조를 한 것인데, 이것이 정상적인 업무협조의 범위에 들어가는지 아리송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와 경찰은 모두 문건 유출 의혹을 부인했다.

월성 원전 1호기를 포함해 국내 원전과 수력발전소를 관할하는 한국수력원자력의 노동조합 움직임도 관찰 대상이었다.

한수원 노조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엄정히 수사해야”

월성 원전 삭제 파일 목록에는 탈원전 정책에 반대했던 시민단체의 집회 관련 문건, 한수원 노조 동향 문건 등이 들어있다. [일람표 캡처]

‘한수원 신임 사장 관련 노조 동향’이라는 제목의 파일은 사장 임명을 한 달 앞둔 2018년 3월 9일 작성된 것으로 밝혀졌다. ▶한수원 노조 탈원전 인사 고소 동향 ▶한수원 노조 관련 동향 보고 등 제목의 파일도 삭제됐다가 복원됐다. ‘한수원 부사장(김OO) 이력서’ 같은 개인 신상 관련 문건도 있었다. 당시 한수원 노조는 원전 수출 차질 등 원전 산업에 미칠 파장을 우려하면서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동향 조사 대상이 된 단체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주한규 교수는 “정부와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단체 이름을 ‘원전 수출’로 정하는 등 매우 조심스럽게 행동했다”며 “무조건적 반대가 아니라 발전적인 대안을 논의하자는 게 우리의 주장인데, 그런 우리의 발언·행동이 감시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게 두렵고도 황당하다”고 말했다. 노희철 한수원 노조위원장은 “사태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일단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에 대해 엄정한 수사를 촉구한다”고 말했다.

김병기 원자력국민연대 공동의장은 “구체적인 내용을 파악하고 있는 중”이라며 “만일 사찰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엄정하게 법적으로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한 나경원 국민의힘 전 의원은 이날 원자력국민연대 등 탈원전 반대 단체들과 함께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탈원전 반대 시민단체 사찰은 충격적이다. 제1 야당 대표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는 정권인데 민간인쯤이야 얼마나 쉽게 찍어누르려 했겠는가”라고 비판했다.

산업부는 관련 문건을 작성했다는 사실은 인정했지만, 사찰은 아니었다고 선을 그었다. 신희동 산업부 대변인은 “사찰이 아니라 통상의 동향 보고 수준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세종=손해용 기자, 위문희·최은경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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