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저격 한옥 오피스 탐방

2021. 2. 1.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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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리어 디자인 스튜디오 라이크라이크홈 대표 손명희의 새 한옥 오피스 탐방기
조지 넬슨의 빈티지 데스크와 피에르 귀아리슈의 튤립 체어가 놓인 작은 서재.

조지 넬슨의 빈티지 데스크를 바라보며 손명희는 가구와의 운명론을 설파했다. “공간에 어울리는 가구는 정말 운명처럼 나타나요. 빈티지 가구는 더하죠.” 손명희가 작은 한옥을 갈고닦아 사무실로 완성하던 마지막 순간까지 조지 넬슨의 책상이 놓인 자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로 오래 비어 있었다. “거대한 6인용 식탁과 가까이 붙은 공간이기에 다이닝 테이블의 또 다른 버전 같은 평평한 책상을 두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러다 우연히 한 가구점에서 수납공간은 물론, 볼륨감 있는 이 책상을 발견하고는 망설임 없이 인연을 맺었다. “물론 물건을 구매할 땐 신중해야 하죠. 하지만 가격에 합의하지 않는 과감함도 때로는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무엇이든 대안으로 사면 꼭 몇 년 안에 처분하게 되더라고요. 그런 경험을 통해 물건과의 운명을 더욱 믿게 됐죠.” 조지 넬슨의 데스크를 제외한 이곳의 모든 물건은 손명희의 오래된 소장품이다. 피에르 귀아리슈의 은색 튤립 체어와 딥 블루 컬러의 빈티지 소파, 티크 소재의 다이닝 테이블과 에곤 아이어만의 검은색 SE68 체어까지. 그녀가 긴 시간 곁에 두고 사랑해 온 유럽과 미국의 디자인 가구들 사이로 박홍구의 소반과 고지영의 무채색 정물화, 정진화의 그림 등이 존재감을 드러낸다. “물건이든 소재든 공장에서 찍어낸 듯 깨끗한 것보다 직접 손으로 빚어 만든 듯한 느낌이나 텍스처가 있는 것을 아름답게 여겨요.” 선이 가느다란 가구를 좋아하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투박한 외형을 가진 것에 마음이 간다는 그녀처럼 취향은 변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아름다움을 정의하는 고유의 시선은 존재하는 법. 반질반질한 새것보다 오래된 물건들을 흠모해 온 손명희의 취향이 한옥으로 흘러온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 아니었을까.

아르네 야콥슨이 디자인한 다리가 3개뿐인 빈티지 앤트 체어.
탄화로 만든 박홍구 작가의 소반.
출입문 앞에 둔 블랙 컬러의 세븐 체어.

“유럽 가구에 심취한 이후 오히려 한국적인 공간에 대해 고민하게 됐어요. 어느 날 집에 두었던 흰색의 유럽산 빈티지 디자인 테이블에 짙은 먹색의 도자기 그릇을 올려봤는데 너무 아름다운 거예요.” 부유하던 취향의 조각들이 맞는 짝을 찾은 듯 서로 다른 두 오브제가 자아내는 황홀한 조화를 목격한 그날부터 손명희는 한국적인 아름다움과 서양의 빈티지 오브제가 어우러진 자신만의 공간을 꿈꾸기 시작했다. “꼬박 2년 동안 제게 맞는 한옥 공간을 찾아 헤맸어요. 막판엔 거의 지칠 대로 지쳐 있었죠.“ 기다림 끝에 큰 기대 없이 마주한 집이 이 한옥이었다. 경복궁역 근처, 서촌 먹자골목의 깊숙한 곳에 자리한 이곳은 당시 작은 침실로 칸칸이 나뉜 채 외국인 여행자를 맞이하던 게스트하우스였다. “천장이 막혀 있었는데 뜯어보니 서까래가 어마어마하게 엉망이었어요.” 문화재 복원 전문가와 함께 방치되다시피 한 서까래의 복원 작업에 매달리는 등 한옥의 본래 모습을 되살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들여야 했다. 한옥 곳곳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손명희만의 실험적인 스타일링이 구현된 흥미로운 구석이 빼곡하다. 독특한 스타일의 주방 가구를 직접 디자인해 시공하면서 ‘주방 천재’라는 별명으로 알려지기도 한 그녀가 고객의 주방에는 미처 추진하지 못했던 시도들이 발견된다. 벽에 크림색 타일을 붙일 땐 줄눈을 아예 넣지 않았고, 상부장에 으레 넣는 간접조명 대신 천장형 램프를 노출시켜 달았다. “벽수전도 고정형으로 달았어요. 주방의 사용성이나 일반적인 라이프스타일과 거리가 멀지만 예쁘다는 이유로 그냥 시도해 본 것이죠. 저와 라이크라이크홈만의 공간이니까요.” 지난 10년간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공간적 미감과 철학을 쌓아온 손명희가 가장 오래된 취향과 전에 없던 시도를 가득 풀어놓은 이곳은 앞으로 계속 변모할 예정이다. “오피스라고 부르지만 편하게 차 한잔하고 사색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길 바라요. 또 하나의 집 혹은 연인의 품처럼 치열한 현장을 뒤로하고 돌아와 한숨 돌릴 수 있는 곳 말이에요.”

미팅과 티타임을 위한 6인용 다이닝 테이블.
내밀한 무드의 초소형 화장실. 도기로 된 선반을 달았다.
직접 디자인한 유니크한 부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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