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판사들 "왜 지금 탄핵이냐가 더 정치적"

박소희 2021. 1. 31.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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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가 부정적? 보도에 의구심.. "민주당은 면피용 추진하는 것 같아 마음 복잡"

[박소희 기자]

 
 최근 법관 탄핵과 관련하여 법조계 반응을 부정적으로 전하는 보도가 적지 않다. 하지만 <오마이뉴스>와 통화한 법관들은 "왜 지금 탄핵이냐고 하는 것이 매우 정치적"이라고 지적했다. 사진은 2017년 9월 양승태 전 대법원장 퇴임 당시 모습.
ⓒ 이희훈
 
사법농단 사태가 드러난 지 4년 만에 국회가 '세월호 7시간 재판'에 개입한 임성근 판사의 탄핵 소추를 본격 추진하고 있다. 일부 언론은 이 상황을 지켜보는 법조계 분위기를 전하며 '너무 늦었다', '각하 가능성이 크다' 등 부정적 반응이 다수라고 전했다. 그러나 현직 판사들의 생각은 결이 달랐다.

A판사는 31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법원의 시간이 있고, 국회의 시간이 있다"며 '왜 지금이냐'는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그는 "2018년 대구지법 안동지원의 젊은 판사들이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는 문제 의식을 내면서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법관 탄핵 소추 절차까지 함께 검토되어야 할 중대한 헌법위반행위'라는 의결사항이 나왔다"며 "그때 (탄핵 소추가) 됐으면 바람직하지만 안 된 것을 저희가 어떻게 얘기하겠냐"고 했다. 

또 "법원이 사법농단 연루 법관들 퇴직하게 해주고, 징계 안하고 해서 탄핵 이야기까지 나오게 만들었다"며 자조섞인 말을 남겼다. A판사는 "정치권의 부당한 법관 공격과 지금의 법관 탄핵 논의는 아무 관계가 없다"며 "오히려 이 시점에 '왜 법관 탄핵이냐'고 하는 것이 매우 정치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법원은 '왜 이제 와서 그러냐'가 아니라 왜 아직까지 탄핵이 안 됐고, 법원조직법은 변한 것 하나 없는지를 부끄러워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법관 탄핵은 사법농단의 책임 규명을 위한 단계 중 하나이지 전부가 아니다. 모든 일은 잘못된 게 있으면 잘못한 사람의 책임을 묻고, 그 다음 제도 개선으로 나가야 한다. 그게 2017년 (각급법원의) 판사회에서 남겼던 기록이다. 그런데 제대로 책임 규명은 안 하고 제도 개선을 하자니까 사람들 기억에 '뭐가 잘못됐지'가 안 남았다."

"제대로 책임 규명 안 했더니... 기억에 안 남는다"
 
▲ '사법농단 법관탄핵' 한목소리...이탄희·류호정·강민정·용혜인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2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강민정 열린민주당, 류호정 정의당,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과 함께 '사법농단 법관탄핵'을 제안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남소연
 
B판사 역시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탄핵 소추가 가능하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국회가 의결하더라도 헌법재판소가) 2월 안에 결론 내리진 못할 것이라고 하는데 틀린 말은 아니다"라면서도 "헌재는 헌법소원 심판의 이익이 없더라도 일정 요건을 갖추면 (해당 사건의) 위헌 여부를 판단한 적이 있다"고 했다. 또 "법관이 탄핵 소추된 전례가 없다"며 "유태흥 대법원장, 신영철 대법관과 달리 헌재 심판 대상이 되는 것까지만 해도 의미가 있다"고 봤다.

'임성근 판사가 2월 28일이면 임기만료로 퇴직하니 실익이 없다'는 의견과도 생각이 달랐다. B판사는 "헌재가 각하할지, 본안에 들어가서 심판할지를 예단하면 안 된다"며 "물리적 한계가 있는 건 맞지만, '헌재가 각하할 거니까 소추할 필요 없잖아'는 논리도 잘못됐다. 다른 헌법기관의 권한을 침해할 필요는 없지 않냐"고 했다. 그는 "탄핵 논의는 법관사회의 자성에서 출발했다"며 "그럼에도 그걸 법원 길들이기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도 지적했다.

'임성근 판사가 1심 무죄 판결을 받았는데 왜 탄핵을 추진하냐'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사법농단 사태 초기부터 꾸준히 목소리를 내온 류영재 판사는 31일 <한겨레> 인터넷판에 실린 칼럼에서 "탄핵은 형사처벌과 다른 성격을 가진다"며 "형사재판과 별개로 진행될 수 있고, 범죄가 아닌 위헌적 행위에 대해서도 탄핵은 가능하다"고 반박했다.

임성근 판사는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수석부장판사 시절, 박근혜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법정에 세워진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사건 재판장 이동근 판사에게 판결 방향을 제시하고, 판결문까지 고쳤다. 그는 법정에서 '조언'이라고 변명했다. 하지만 류영재 판사는 이런 조언은 "재판개입"이고, "심각한 위헌임이 명백히 선언되어야 한다"며 탄핵심판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임성근, 사법시스템 무너뜨렸지만..." 어떤 판사의 착잡함
 
 '자유 평등 정의'가 새겨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 권우성
 
그런데 C판사는 착잡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시기와 무관하게 (위헌·위법행위가) 걸리면 (사법적) 판단을 받아야 한다"며 "주변을 둘러싼 정치공학을 배제하고, 사건 자체만 보자면 임성근 판사의 행위는 사법시스템의 근간을 무너뜨렸다"고 말했다. 다만 "이것을 국회가 정치적 계산 아래 이용하려는 의지와 목적을 갖고 활용하면 안 된다"고 덧붙였다.

C판사는 "사실 탄핵이 애초에 제기됐을 때와 현재 상황이 좀 다르다"며 "민주당에서 계속 이걸 쥐고 있다가 이제서야 만지작 거리는 모습을 보고, '불리한 판결이 나오니 편승하는 것 아니냐'고 말을 안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너무 속상하다. 예전에는 법관 탄핵에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며 "민주당은 재판거래에 연루된 의원들도 결국 지난 총선 때 공천했다. 지금도 면피용으로 (사법농단 법관 탄핵을 추진)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복잡하다"고 털어놨다.

그럼에도 C판사는 "국회가 어떻게 하든 상관 없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은 명백하다"며 "임성근 판사든 누구든 명백히 헌법을 위반한 행위는 판단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책임져야 될 분들이 징계도, 형사처벌도 안 되고, 오히려 (사법행정 담당자로) 중용되거나 더 큰 목소리를 내는 모습을 보면 법원 내부의 개혁은 실패한 것 같다"며 "자세히 들여다보고, 시스템을 아는 사람이라면 재판개입이 천인공노할 일이라는 것을 안다"고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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